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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Jul 28. 2024

포기한 꿈이라도 언젠간 새어 나오니까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고 살 순 없다


 인생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객관적으로 거짓이다.

 가수, 배우, 연예인, 운동선수, 영화감독, 만화가, 소설가, 음악가, 과학자, 예술가. 어릴 적 강렬한 열망으로 위대한 무언가가 되기를 꿈꿨던 사람들이라면, 하지만 그 무언가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순 없고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고 살 수는 없다. 세상에 성공에 대한 여러 개인적 정의가 있겠지만 어릴 적 품은 꿈을 이루는 것을 성공이라 정의한다면, 그건 재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재능과 노력 둘 다 있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다. 재능과 노력, 운의 밸런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무수히 많은 실패의 확률을 뚫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성공 근처에라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원대한 꿈을 꾸던 사람들이 하나둘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꿈을 포기하게 된다. 나는 대다수의 실패자들과 달리 예외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주관적 열망과, 어차피 그중 극소수만 성공한다는 객관적 현실의 간극을 깨달은 자들은 꿈의 대열에서 하나씩 이탈한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될 낮은 확률에 배팅할 수 있는 현실적 판돈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시간과 돈이 결국 판돈이다. 그렇게 꿈은 점차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의 한도 내로 축소된다.



하지만 포기한 꿈은 언젠가 새어 나온다


 세상은 그렇게 꿈을 포기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꿈을 이룬 극소수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내가 세상에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꿈이야말로 나의 가장 근원적인 자아이자 정체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좌절과 절망이 닥치더라도 나의 꿈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부정하는 순간 자아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판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러 왔던 꿈이 다시 불쑥 솟아나곤 한다. 그들은 평범한 직업을 갖거나 프리랜서와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며 현실에 짓눌려 살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다시금 오디션에 나가고 공모전에 지원하며 원래 꿈꿨던 삶을 되찾기 위해 도전한다. 꿈에 도전하는 순간이야말로 그들을 살아있다고 느끼고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찾기 때문이다.

 현실의 풍파를 겪고 다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선 도전자들이 “한번 포기했던 꿈이 도저히 포기가 안 돼서”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포기했던 꿈은 아무리 무거운 현실이 억누르더라도 언젠간 다시 새어 나오는 법이다.


다시 시작하는 힘


 나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다. 어릴 적 내 꿈은 판타지 소설가였다. 모험과 마법이 있는 환상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다. 막연히 언젠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드래곤 라자처럼 세상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 몇 번이나 웹소설 플랫폼에 익명의 연재를 하기도 했고 군대에 가서는 병영문학상 따위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며 취직해 버렸고 그렇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며 생업이라는 현실에 치여 어느새 소설가는 오래전 포기해 버린 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고 나이라는 숫자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포기했던 꿈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죽어도 되겠냐고. 이대로 포기해 버려도 정말 삶에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겠냐고.

 내 안에 살던 무수한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나를 부추겼다. 정말 영원히 우릴 여기서 꺼내지 않을 거냐고.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반성이 되어 나를 찔렀다. 정말 목숨 걸고 전력을 다해 소설을 써보겠다고 달려든 적이 있긴 했냐고.

 질문은 작은 불꽃이 되어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때 깨달았다. 다 타버려 재만 남은 줄 알았던 내 마음에는 아직 어떤 불씨가 있었다. 그래. 이대로 내 인생이 회사원으로 끝나는 시시한 결말은 아직 보류야. 다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 거야!


시작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틈틈이 가능한 규칙적으로. 대개 아이가 잠들고 나면 씻고 나와서 10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목표는 소설을 쓰는 것 그 자체에 있었다. 그러니까 성공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소설을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행복감이  더 컸다. 이야기를 상상하고 문장으로 구현하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수익이 발생하는 플랫폼에 연재한 것도 아닌데 마감이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열심히 썼다. 소설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회사원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창조주였고, 그 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게 좋았다. 회사원이 아닌 다른 내가 된 느낌. 그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렇게 1년가량 써 내려간 소설이 몇 편 쌓이고 나자 하나씩 정리해서 공모전에 내기 시작했다. 뭐랄까. 단순히 소설 쓰는 즐거움만으로 계속 쓰기에는 슬슬 동력이 떨어지고 있던 시점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어릴 때는 대작을 만들기 위해 이 악물고 치열하게 소설을 썼다면, 세월이 지나 힘을 빼고 쓴 소설들은 소소한 성과들로 돌아왔다. 고즈넉이엔티의 ‘이달의 장르소설’에 선정된 후 곧이어 2023 대한민국 과학소재 스토리 공모전에서 단편소설 우수상을 받았다. 그 결과물을 묶어 ‘반격의 로딩’이라는 SF 단편소설집을 전자책으로 낼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때 썼던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씩 출간 계약을 하고 스토리움 추천 스토리에 뽑히는 등 크고 작은 성과가 이어지며 내 삶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3년 전 소설을 쓸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만약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니 인생이란 새삼 신기하다는 걸 느낀다. 일단 시작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는 법이다. 시작하길 참 잘했다.

 다시 시작하기엔 조금 늦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회사생활을 겪지 않은 20대에 작가가 되었다면 결코 쓰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구불구불 먼 길을 돌아 지금 와서 소설을 쓰는 게 내 인생에서는 최적의 경로였던 게 아니었을까. 내 안의 이야기들은 오랜 기간 상자 속에 가둬둔 만큼 이 순간만 기다렸다는 듯이 계속해서 머리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나의 작은 상자에서 새어 나온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알 수 있다. 오래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새어 나오는 꿈은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래야 죽이든 밥이든 얻을 수 있다. Follow your dreams!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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