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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Sep 29. 2023

그냥 좋아서요

아이에게 배우는 행복의 자세

  “엄마, 나 미술 대회에 나가면 안 돼요?”


  큰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긴 지만, 객관적으로 대회에서 상을 받을 만큼의 실력은 아니. 그럼에도 그냥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가 아닌 이상, 미술학원의 도움 없이 교외 대회에서 수상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지금껏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미술 대회는, 학원에서 알려는 ‘본보기 그림’을 외우고 연습한 걸 그대로 그려내는 방식이었 때문이다.


  학원의 그런 지도 방식을 탓하는 건 아니다. 미술학원 입장에서는 그림을 배운 아이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기에, 또 그것이 배움에의 동기 부여가 된다점도 인정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는 걸 이해한다.


  특히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상 아이들이 뭔가를 배울 때 그저 재미로만 배우기를 바라는 부모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매달 부담스러운 학원비를 감당하면서까지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뭐라도 배워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났으면 혹은 뒤처지지 않았으면 하는 게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어쨌거나 큰아이의 경우, 미술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회 참여가 조금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졸라대는 아이가 기껍지 않았지만 그냥 가족 소풍쯤으로 생각하고 참여하기로 다.


  대회장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 가족은 간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산책도 했다. 마침 날씨가 참 좋아서 소풍 기분을 제대로 만끽했다고나 할까.


  예상대로 우리 같은 가족 단위의 참가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미술학원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이 예닐곱의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붓 터치를 대신해주는 건 규정 위반이었으므로 중간중간 말로 첨삭이나 조언을 해주는 식이었다.


  큰아이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해내야 했다. 발표된 주제를 보고 어떤 장면을 그릴지 정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는 듯했다. 반면 학원 아이들은, 당일 제시되는 주제를 어떻게 미리 다 알고 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거침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학원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대회의 주제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며칠 뒤 발표된 수상자 명단에 딸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아이도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앞으로 무턱대고 미술 대회에 나가겠다고 조르는 일은 없겠지, 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다른 대회를 또 나가면 되니까 괜찮다고 하는  아닌가. 나는 여기서 아이의 도전 정신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도전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실패의 경험만 쌓다가 결국 자신감을 잃게 될 결말이 뻔히 보여 난감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지만, 본인의 실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건 아니라는 걸 직시하게 될 순간이 마음 아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보다는, 수상 가능성도 없는 대회에 자꾸 나간다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컸다.


  “서연아, 그때 봐서 알겠지만, 그런 데는 학원 다니는 애들이 연습을 엄청 많이 해서 오기 때문에 우리처럼 집에서만 하는 사람은 상 받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이제 미술 대회는 그만 나가자.”


  아이에게 실력으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회에서 고배를 마시며 좌절할 바에는 그냥 내가 알려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무엇이 가능성이 있는 일이고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는 것도 배움이라고 생각했. 그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나는 꼭 상 타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회에 나가는 게 좋아요. 열심히 그려보고 노력했는데도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지, 상 받으면 좋지만 못 받아도 괜찮아요. 그냥 나가서 그림 그리고 하는 게 재밌어요. 엄마도 그날 즐거웠다고 하지 않았어요?”


  똑 부러지는 아이의 대답을 고서야, 그동안 내가 했던 말들이 미안해졌다. 어리게만 여겼던 아이 앞에서 짧았던 내 생각이 한없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그러게. 엄마도 그날 재밌게 시간 보내고 와놓고,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서연이 너 정말 대단하다. 과정을 즐기는  아무나 못하는 건데, 네가 지금 딱 그렇네.”


  결과에 대한 기대나 두려움은 과정을 즐기려는 누군가의 마음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수상이라는 결과만을 만족이라 여겼던 내 편협함에 비하면 아이의 마음가짐은 훨씬 넓고 어른스러웠다.


  과정이 흠잡을 데 없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요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보장은 없는 것처럼.


  하지만 딸아이는 그 너머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노력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그런 과정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 자체를 만족으로 여길 줄 아는 태도까지 말이다.


  상을 받지도 못할 미술 대회를 자꾸만 나가고 싶다고 졸랐던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 결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이에게 상처를 준 나는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걸 배운 느낌이다.


  새로운 도전 앞에 나도 모르게 너무 큰 욕심이 생겨버릴 때, 혹시라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저하게 될 때, 뭔가를 이뤄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를 때 나는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그냥 재밌어서 좋다는 마음, 조건 없이 무언가를 즐기는 아이의 그 마음은 무조건 옳다. 대회를 나가는 이유가 꼭 상을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도 꼭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는 건 아닌 것처럼.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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