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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May 09. 2023

용서를 구하는 용기

오해해서 미안해

  승진이는 엉뚱하고 웃긴 이야기로 다른 아이들의 관심 받는 걸 좋아했습니다. 영어 전담을 할 때라 담임이 아니었는데도 소문을 들어 알 정도였으니 튀는 아이인 건 틀림없었지요.


  그런 승진이의 행동을 대하는 데는 약간의 회피가 필요했습니다. 일일이 대꾸하려 들면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에 웬만한 장난은 못 들은 척 넘어가는 전략 말이지요. ‘하지 마라, 조용히 해라’ 같은 부정적인 관심도 아이들에게는 어쨌든 관심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교사가 반응할수록 행동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승진이와 수업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TV 화면에 그림을 띄워놓고 그림 속에 숨어있는 낱말을 찾아 돌아가면서 하나씩 영어로 말하고 있었어요. 순조롭게 흘러가다가 승진이의 차례가 되었을 때 갑자기 f로 시작하는 욕설이 들려왔습니다.

  “퍼-크”


  잠깐 귀를 의심하는 사이 아이들의 눈도 함께 커졌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의 남자아이들은 욕 같은 건 안 가르쳐줘도 빨리 배우는 법이잖아요. 5학년인 승진이도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나이이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욕들을 장난삼아 해대는 아이들을 종종 봐왔던 터라 처음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큰 관심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무덤덤한 척하며 말했습니다.

  “승진아, 그 말 어디서 배웠어? 그거 엄청 나쁜 말이니까 앞으로 절대 쓰면 안 돼. 화면 보고 낱말 찾아서 얼른 읽어보자.”


  그렇게 좋은 말로 타이르고 있자니 승진이의 장난이 달갑지 않았던 몇몇 친구들도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쟤는 아까도 장난쳐서 혼나고 왔으면서 영어실에 와서도 욕하네.”

  “선생님, 승진이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아이들도 계속되는 승진이의 장난에 이골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퍼…크…”


  그 순간 승진이가 같은 욕을 또 내뱉는 게 아닌가요. 전보다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요.

  “승진아, 뭐라고 했어? 좀 더 큰 소리로 말해줄래?”

  짐짓 못 들은 척하며 물었습니다.

  “퍼…크… 퍼…크…”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했고, 잘못을 고칠 기회까지 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승진이는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저는 들고 있던 교사용 책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 질렀습니다.

  “야! 나쁜 말이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 안 들려? 응? 이따위로 수업할 거면 당장 나가!”


  교실은 순식간에 냉동창고보다 차가워졌습니다. 겁을 먹었는지 늘 까불기만 하던 승진이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아니, 자기가 먼저 욕해놓고 갑자기 울기는 왜 울어? 이 정도 혼날 것도 예상 못한 거야? 그러니까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그래도 내가 좀 심했나? 아니야. 아무리 영어라도 욕은 욕이야.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줘야 해.’


  승진이의 눈물에 마음이 살짝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잘못된 건 제대로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흥분한 감정을 속으로 진정시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선생님, 승진이가 park(공원)라고 말한 것 같은데요?”

  어떤 아이의 목소리에 놀라 화면을 올려다보니 그림 속 수많은 낱말 중에 버젓이 park가 있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승진이의 발음을 제가 완벽하게 오해한 것이었지요.


  그때의 제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되시나요.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민망함에 얼굴은 불난 것처럼 화끈거렸습니다. 엉망이 된 수업 분위기에서 저는 승진이에게 너무 미안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미안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흐느끼는 승진이 눈치를 보느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어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감추고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승진아, 정말 미안해. 선생님이 오해하는 바람에 너한테 화내고 소리까지 질렀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교실을 얼음장으로 만들었던 저 때문에 상처받았을 그 반 아이들에게도 사과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승진이한테 너무 큰 실수를 했어. 선생님의 오해하는 바람에 이 소란을 일으켰으니 너희 반 모두에게도 사과해야 할 것 같아. 정말 미안해.”


  몇몇 아이들은 야유를 보내기도 했지만 저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아니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지요. 휘청거리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한참 동안 승진이의 다친 마음을 달래 주려 애썼습니다. 정신없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그 이후로 승진이가 진정되었는지, 수업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그날 이후 승진이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급식실이나 복도에서 저를 만나면 유례없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수업 시간에는 쓸데없는 말장난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진심이 닿았던 걸까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가시를 세웠던 승진이의 눈빛은 어느새 봄볕에서 한참을 말린 이불만큼이나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승진이가 저에게 마음을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선생님이 먼저 사과해주셔서 좋았어요’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낼만큼 살가운 아이는 아니었거든요. 장난이 심했지만 상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선생님을 보면서 승진이는 자신이 존중받았다고 느꼈을 거라고요. 사실 교사가 실수해놓고 자존심 때문에 잘못을 얼버무리고 아이들 탓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을 테니까요.


  ‘아니, 처음부터 네가 발음을 똑바로 했어야지.’

  ‘그러니까 공원을 말한 거라고 진작 말했으면 됐잖아.’

  이런 핑계를 찾으며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도 아이의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별일 아닌 척 넘겼을 수도 있었겠지요. 돌이켜보면 그때 그러지 않았던 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승진이가 진심으로 사과한 저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준 걸 느꼈을 때 제 기분은 천장을 뚫고 올라가 구름까지 닿는 듯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입과 잘못을 인정하는 양심은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그 반 아이들도 배웠을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그날 학생들 앞에서 순간의 민망함에 매몰되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얼버무렸다면 승진이에게 그 영어 시간은 평생의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사람들은 길에서 넘어지면 돌을 탓하고 만약 돌이 없으면 언덕을 탓하고, 언덕이 없으면 자기 신발을 탓한다고 합니다. 손뼉을 치고 싶을 만큼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좀처럼 자기 자신만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니까요. 


  사고가 나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관리자들이 매번 뉴스를 장식합니다. 기업은 제품의 결함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요. 교통사고가 나면 내 실수보다는 어떻게든 상대방의 잘못을 부풀리기에 바쁜 어른들입니다. 그런 우리의 태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항상 자기만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겸손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이 꼭 경계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옳기만 하고 다른 사람이 언제나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요. 선생님도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실수했을 때는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는 걸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바르게 자랄 수 없을 것입니다.


  사과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아이들에게 자주 얘기합니다. 먼저 사과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어른들이 많은 세상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진짜 교육일 거예요. 그러니 아이들 앞에서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용서를 구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마세요. 진심으로 다가가면 아이들도 분명히 그 마음을 느낄 테니까요. 잘못을 인정하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이 배우는 가치는 우리의 체면과 자존심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제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랑스럽게 여기려 합니다. 만약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면 승진이를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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