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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저빔 May 09. 2023

선생님을 위한 달고나

나를 웃게 하는 아이들의 선물

  책상 위에 물건을 놓아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무언가가 흐트러져 있으면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왠지 집중도 잘 안되는 것 같아서 웬만한 건 서랍 속에 집어넣거나 숨겨버리지요.


  하지만 교실에 있는 제 책상은 이따금 지저분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작은 선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책상 한구석을 채우곤 하거든요.


  아이들은 선물을 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색종이로 꼬깃꼬깃 접은 하트나 종이 장미, 색연필로 정성스레 꾸민 그림이나 책갈피, 손수 만든 편지지까지. 정성을 담아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건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지난주만 해도 다른 반 교실에 보결 수업을 들어갔다가 쪽지를 건네받았습니다.


  “새로운 선생님께, 우리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대신 오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공부를 못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보민 올림.”


  한 시간의 수업에도 이렇게 감사를 표현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초등학교입니다. 그 짧은 메모 덕에 제 마음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어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그 뒤로 오가며 학교 여기저기에서 마주칠 때마다 허리 굽혀 깍듯하게 아는 척을 하네요.

  “어? 우리 반에 왔던 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언젠가 소윤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있잖아요. 저는 선물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좋아요. 이상하게 선물을 줄 때가 더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받은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도 너무 궁금해요.”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도 좋을 만큼 고운 말이 아닌가요. 우리도 한때는 그렇게 순수한 아이였을 테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어느 순간부터 선물을 주고받는 건 흔치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주고받는 교환품에 불과해졌지요.


  “선생님, 이거 하실래요? 제가 만들었어요. 여기 놔두면 예쁠 것 같아서요”

  선생님이 당연히 기뻐할 거라 확신하는 표정으로 종이꽃을 건네는 소윤이에게 이런 거 필요 없다고, 선생님은 책상 위에 물건 두는 거 지저분해서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거절하지 못해 쌓인 선물들이 지금도 제 모니터 아래를 차지하고 있어요. 치우고 싶지만 치울 수가 없어요. 치울 수 있지만 치워서는 안 되지요.      


  주말을 지내고 온 월요일 아침, 진후가 열한 번 만에 성공했다며 달고나를 수줍게 내밀었을 때 제 마음은 완전히 녹아버렸습니다. 다섯 번도 아니고, 열 번도 아니고 열한 번이라니요. 선생님을 생각하며 열한 번이나 달고나에 도전한 그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돈 주고 산 선물은 안 받는다고 해서요. 손으로 만든 거나 편지 같은 것만 받는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주말에 엄마랑 같이 만들었어요.”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웬만한 선물은 받을 수가 없지요. 학교에 값나가는 선물을 가지고 오는 학생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그런 법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진후가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달고나 얘기를 하자면, 옛날 간식거리를 배웠던 지난 금요일의 사회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뻥튀기, 달고나, 강정 같은 음식들이 소개된 책을 보다가 어느덧 우리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달고나를 잘 만들 수 있느냐가 되어 있었지요. 달고나가 나왔던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집에서 달고나를 만들어보았다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드느라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성공했니? 선생님은 몇 번 해 봤는데 어렵더라. 비율을 잘 못 맞춰서 그런지 항상 실패야. 그래도 모양이 이상해서 그렇지, 맛은 있더라. 선생님이 달고나 진짜 좋아하거든.”


  제가 달고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던 진후가 주말 동안 만든, 열한 번 만에 성공한, 그렇게 귀한 달고나를 제게 선물로 내민 순간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가운데 별 모양이 반듯하게 찍힌 달고나였지요. 이쯤 되면 색깔이나 모양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흘려들을 수도 있었던 사소한 말을 기억하고 간직해준 그 고운 마음씨에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와, 진후야. 이거 만든 거 아니고, 산 거 아니야? 집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모양을 만들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예쁘게 되지?”


  저는 진후가 더 기분이 좋았으면 해서 일부러 거짓말까지 보태어 격하게 반응해주었어요. 아마 그때 진후의 어깨는 10cm 정도는 솟아올랐을 거예요. 선물을 주었을 때 상대방의 미지근한 반응만큼 김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리액션을 늘 크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근데요, 선생님. 이거 생각보다 쉬워요. 다음에 또 만들어 올게요.”

  조금 전까지 열한 번 만에 겨우 성공했다던 엄살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제는 귀여운 허세까지 부리는 진후 때문에 밖으로 새어 나올 뻔한 웃음을 겨우 참았습니다. 이런 순간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생님이기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하지만 큰 행복입니다.     


  나은이는 방과 후 요리부에서 만들었다며 초콜릿을 놔두고 갔어요. 교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보니 자리에 쪽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요리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간 모양이었습니다.


  “선생님, 저 나은인데요. 제가 요리부에서 만든 코코아밤이에요. 선생님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거 드리고 싶어요. 선생님이 좋아하시면 좋겠어요. 먹는 방법: 뜨거운 우유에 넣어서 초코가 다 녹으면 핫초코처럼 먹으면 돼요! 선생님, 사랑해요.”


  먹는 방법까지 상세히 적어둔 쪽지에 스며있는 나은이의 친절한 마음 덕분에 더 달달한 선물이었어요. 교무회의에서 한 짐 실어 왔던 피로가 한 방에 풀려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마셨던 핫초코는 여태껏 마셨던 어떤 음료보다 따뜻하고 달콤했어요. 저는 주책스럽게도 너무 맛있다고 인증 사진까지 찍어 나은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주는 게 없는데, 매일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만 열심히 하는 선생님인데, 아이들은 뭐든 주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숱하게 받았던 편지에, 쪽지에, 정성 가득 담긴 아이들의 선물에 저는 제대로 답장 한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원망하지 않아요. 왜 자기가 준 만큼 되돌려주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지요. 그저 선생님에게 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지금껏 우리는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너무 가볍게 여겨왔던 건 아닐까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상대에게 준 것을 기억하고 그대로 돌려받기를 바라는 건 오히려 어른들입니다. 우리는 그걸 예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요. 상대의 생일날 케이크를 전했으면 내 생일에도 그만큼의 대가가 돌아오기를 은근히 기다립니다. 받는 사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요. 아이스크림 교환권을 받으면 커피 교환권이라도 돌려보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는 ‘예의’를 갖춘 어른이니까요.


  예의라는 이름으로 받은 선물이니 예의라는 이름으로 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예의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느낄 때마다 저는 바라는 것 없이 나누는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상 위에 종이꽃이 쌓이는 걸 지저분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조건 없이 나누는 아이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요. 혹시 내일도 색종이로 꼬물꼬물 무언가를 접어다 주는 아이가 있다면 저는 정말로 크게 리액션을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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