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이기도 했고, 당시 공공 위생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도 해서 집에 바퀴벌레가 많았다.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는데, 원치 않게도 생애주기별 다양한 바퀴 브로들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여름방학이었다.
하루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구입한 국진이빵을 한두입 먹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며칠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않고 치우지 않았다.
그러다 색연필을 찾으러 책상에 오랜만에 가서 봉지를 '툭' 쳤는데...
...
수십마리였나. 갓태어난듯한 새끼 바퀴벌레들이 퍼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놀란 나는 비명을 질렀고, 할머니가 한달음에 뛰어오셔서 왜 그러냐 물으시려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을 보시고는 흉측한 검은깨 친구들을 하나둘 손가락으로 눌러 잡기 시작하셨다.
총정원의 10%도 못 잡고 놓쳐버렸고, 방은 에프킬러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방역을 당했다.
그 때는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눌러 잡으시는 게 당연해 보였고, 왜 할머니가 더 빠르게 그들을 제압하지 못하셨는지 내심 원망도 했었다. 할머니도 징그럽고 혐오스러우셨을텐테, 못된 손녀니언...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면 줘패버리고 싶지만, 그날 이후 나는 빵 봉지나 과자 부스러기를 그대로 두었을 경우 발생할 가장 최악의 장면을 회고하면서 잔소리장인이 되었다.
또 하루는 주말이었는지, 할머니/아빠/엄마/언니/내가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하게 됐다.
내가 제일 어리고 늦잠을 잘 나이라, 가족 중 누군가가 날 깨우러 2층으로 올라왔다가 금세 되돌아갔다.
(당시 나는 언니와 같은 침대방을 썼는데, 언니는 침대에서 자고 난 바닥에 요를 깔고 잤다.)
가족들이 모두 1층 식탁에 모여 있고, 나 혼자 남아 뒤척이면서 본격적으로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뭔가 쌔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내가 누웠던 자리, 그중에서도 등허리가 있던 위치에 엄지 손가락만 한 대왕 바퀴벌레가 통통한 각선미를 과시하며 납작해진 채 배를 보이며 죽어있었다.
내가 대체 몇 시간 동안 깔고 잔 걸까, 몸이 큰데도 죽어 있을 정도면 내가 얼마나 짓이겼다는 것인가, 그리고 왜 뒤집어져 있는가 ㅡ 깔린 후 내 등이 그를 또 뒤집어 놓을 정도로 잦은 스킨십이 있었다는 것인가 ㅡ 등 갖은 생각이 뒤덮어 세상에서 가장 큰 울음소리를 내며 1층으로 내려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가족들이 일어나자마자 오열하는 어린이를 달래주며 이유를 물었다.
"내가... 흑흑... 일어났는데... 흑흑... 이불에... 꺼이꺼이꺼이꺼이 꺼~~~"
다들 내가 또 쉬하는 꿈을 꾸고 이불에 오줌을 싼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길래, 엄마한테 내가 자던 곳에 가보라고 말했다.
현장을 보고 돌아오신 엄마는 '내가 간밤에 온전히 잘 잤고, 마침 일어날 때쯤 죽을 때가 된 늙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하필 거기서 뒤집어 생을 마감한 것이며, 나와 그는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고 가스라이팅을 해주셨다.
어린이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믿기로 했고,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 하얀 거짓말을 맛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