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나면 삶은 더 솔직한 자리로 데려간다.
골프장 락카 일을 했었다.
실내였고, 정돈된 공간에 유니폼도 반듯했고 맡은 일도 단순했다.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다른 쪽에서 막혔다.
할 일이 없었다.
정리는 금방 끝났고, 손님이 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사이가 길었다.
시간이 비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늘어나면 쓸데없는 데까지 간다.
그때부터 피로가 시작된다.
몸이 아니라, 의미가 먼저 소진됐다.
힘든 일보다 의미 없는 시간을 더 견디지 못한다.
버텨보려 했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직원 휴무일에 화장실 청소를 맡았다.
여자 화장실은 문제없었다.
구조도 익숙했고 시선 둘 곳도 자연스러웠다.
남자 화장실은 달랐다.
들어갈 때마다 멈췄다.
허락된 공간이라는 건 알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칸막이 없는 소변기, 열린 구조, 비어 있어도 비어 있지 않은 느낌.
아무도 없는데 시선이 생기는 공간이었다.
고개 둘 곳이 애매했다.
바닥을 보면 지나치게 고개를 숙인 것 같고,
벽을 보면 시선을 숨기는 사람 같았다.
청소는 해야 했다.
물을 뿌리고 세제를 뿌리고 닦았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몸은 계속 어긋났다.
일인지 침범인지 헷갈렸다.
어릴 적 놀랐던 몸이 먼저 경계했다.
이해 못 한 채 겪었고, 설명도 듣지 못하고 지나갔다.
머리는 잊으려 해도 몸이 잊지 않는다.
문 쪽을 자꾸 확인하게 됐다.
누군가 들어오면 다시 나갔다.
아무 일도 없는데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일은 동작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리에 담긴 시선과 관계까지 견뎌야 끝난다.
락카에서는 시간이 남아 힘들었고,
화장실에서는 공간이 낯설어 힘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겼다.
골프장 리조트 룸메이드.
이번엔 반대였다.
일이 끊기지 않았다.
이불을 걷고, 시트를 갈고, 욕실을 닦고, 바닥을 밀고, 쓰레기를 치웠다.
방 하나가 끝나면 다음 방이 기다렸다.
몸이 계속 움직였다.
쉴 틈이 없다.
마음은 조용했다.
생각할 틈이 없다.
눈앞의 것만 처리하면 됐다.
닦으면 깨끗해졌고, 정리하면 결과가 남았다.
사람은 이유를 묻지만, 바닥은 결과만 남긴다.
그래서 편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
예상대로 안정감이 있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어릴 적 다친 팔꿈치는 평소엔 조용하다가 무리하면 반응했다.
처음엔 참을 만했다.
며칠 지나자 통증이 올라왔고, 더 지나자 힘이 빠졌다.
걸레를 짤 때, 청소기를 돌릴 때, 문을 밀 때마다 팔이 거슬렸다.
결국 일을 멈췄다.
의지가 아니라 몸이 결정했다.
몸은 정직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패턴은 익숙했다.
초반엔 잘한다.
속도를 올린다.
필요 이상으로 해낸다.
그리고 무너진다.
겉으로 보면 성실하다.
조금 더 보면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몸은 늘 정확하게 평가한다.
락카에서는 시간이 버티지 못하게 했고,
룸메이드에서는 몸이 버티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일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긴다는 데 있었다.
몸이 버틸 수 있는 만큼,
마음이 견딜 수 있는 만큼.
그 선을 지키지 못했다.
한때는 끈기 부족이라 여겼다.
지금은 다르다.
버티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버티다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또 그만뒀다.
늘 비슷한 지점에서 멈췄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고, 조금만 더 참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 ‘조금’이 늘 한계를 넘었다.
나는 오래 버티는 사람이 아니다.
무너지기 전에 멈추는 쪽에 가깝다.
도망인지, 살아남는 방식인지 결론은 없다.
아직도 경계를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