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괴상한 신자의 마지막 고백

by 재해석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의 피와 살을 나누는 성찬식에서 소외된 적이 있다.

누군가는 부모가 임신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태신앙과 유아세례를 인정받아 성골이 되는데, 내게는 학습과 출석 일수를 채워야 하는 까다로운 자격증 같았다.


성찬은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은혜를 덧입는 의식이다. 자격이 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기에 절실히 매달리는 양식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입교라는 높은 문턱이 있었다. 거칠게 살아오느라 순종적이지 못했던 나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성찬식 도중 서러움을 어깨에 얹고 성도들의 시선을 받으며 퇴장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간절히 사모함에도 절차를 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하는 모순 앞에서, 나는 교회와 오래 거리 두기를 했다.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교회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사실과 다르게 부티 나는 외모 탓에 목사님 사모님으로부터 무리한 부탁을 받고 도망치듯 떠나기도 했다. 성가대 찬양을 음악회처럼 좋아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작은 교회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싫고, 큰 교회는 무관심해서 싫다며 언제나 핑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깨달은 것은, 사람은 사랑해줘야 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인맥을 위해, 누군가는 영업을 위해 대형 교회를 찾는다고들 하지만 나의 방황은 달랐다. 갈 곳 없어 유아실에서 잠을 청하던 어린 날처럼, 마음이 고단할 때마다 자발적으로 예배당을 찾았다. 예배 시간이 아니어도 갔다.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빈 의자에 앉으면 저축해 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실컷 울고 나면 살 힘이 생겼고, 그러면 그 힘을 엉뚱한 데 쏟으며 지치기를 반복했다. 그 모든 방황을 견디게 한 것은 거리 곳곳에 흔하게 걸린 십자가 덕분이었다.


"내 삶은 왜 이렇게 고단한 거야?"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답이 뻔했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다 지나가는 과정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자기 계발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친 사람에게 더 성실하게 달리라고 채찍질하며, 모든 것을 의지의 문제로 몰아세웠다.


그러던 중 요양차 내려온 양평에서 중증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님을 만났다. 사비로 시설을 꾸리며 작은 교회 전도사로 헌신하던 분이었다. 그분과의 대화 중 침샘이 막혀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단식을 권유받았다. 20여 일의 단식 끝에 기적처럼 침샘이 뚫리고 침이 돌기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분은 어떤 난해한 질문을 던져도 막힘이 없었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원장님, 저도 저 아이들처럼 장애가 있었다면 차라리 보살핌 받으며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쟤들은 고민도 없고 맨날 웃잖아요. 오늘 은숙이 옆에 앉았는데, 제가 우니까 왜 우냐고 묻더라고요. 슬퍼서 운다니까 은숙이가 뭐랬는지 아세요? '왜 슬퍼? 난 맨날 행복한데!'라며 히죽 웃는 거예요. 눈물도 안 닦아주고 말이에요.”


은숙이는 나와 동갑이지만 지능은 일곱 살인 친구다. 원장님도 웃으시며 답했다.


“맞아, 걔들은 매일 행복하대. 나도 부러워 죽겠어.”


“그러니까요, 원장님. 왜 하나님은 저를 이렇게 애매하게 만드셔서 고달프게 하시는 걸까요?”


“왜긴, 간단해. 멀쩡한 사람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 보살피라고 그러시는 거야.”


명쾌했다. 내 상처만 더듬으며 탓할 대상을 찾느라 신경만 곤두 선 나와 달리, 원장님은 명쾌한 진리를 몸소 살아내고 계셨다.


원장님 곁에는 헬렌 켈러 같은 친구들이 있다. 시각이 닫히고 말도 못 하고 근육이 굳어 누워만 있어 밥도 먹여 줘야 하는 마흔 살 친구, 열아홉에 만나 원장님을 엄마라 부르며 쉰을 넘긴 순희, 갓난아기 때 와서 장정이 된 뇌성마비 아들까지. 원장님은 수십 년간 그들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며 청춘을 바쳤다. 주변에선 다들 '바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원장님은 평온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실 만하니까 맡기시는 거 아니겠니?”


세월이 흘러 시설은 법인이 되었고, 원장님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시설 운영은 원장님 성품을 쏙 빼닮은 아들에게 맡기고, 이제 성도 스무 명 남짓한 작은 교회의 목회자가 되셨다. 그곳엔 인품 훌륭한 장로님과 미운 말 할 줄 모르는 장애우들, 그리고 자기 일처럼 바지런한 집사님이 모여 있다. 모두가 일당백인 귀한 공동체다.


어느 날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뭔데?” 넌 아직도 꿈이 있냐며 되묻지 않고 다정했다.


“제 꿈은 권사님이에요.”


교회에 다녀본 사람은 안다. 권사라는 직분은 십일조를 많이 낸다거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직함이 아니다. 중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던 것처럼, 세례 또한 남들보다 한참 늦었기에 권사가 되는 길 역시 쉽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쉽지 않기에 그것은 내게 꿈이 되었다.


내 고백에 목사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우선 집사부터 되자.”







에필로그: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서 갈무리하려 합니다. 쓰기의 여정은 멈추지 않겠지만, 브런치북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위로를 건네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며 비로소 저 자신을 찾는 답을 얻었습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제게 다가오는 조금씩 부서진 존재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여전히 서투르지만 이름 없는 조각끼리 위로하며,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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