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우의 부작용은 오래갔다.
무례한 사람 앞에서만 발동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끼는 사람 앞에서도 빗장을 걸었다.
호의가 오면 고마워하기보다 경계부터 했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기 전에 출구부터 찾았다.
며칠 전, 요양원 건물 청소 구인 광고에 지원했다.
월 220만 원.
딱 그만큼의 땀을 흘리기로 했다.
몸 쓰는 일은 힘들어도 단순하다.
흘린 땀만큼 받으면 된다.
눈치까지 닦아낼 필요가 없는 자리다.
그때 친한 동생이 불쑥 구체적 제안을 꺼냈다.
월 240만 원.
“언니, 우리 엄마 수행비서 해줄래?”
가깝게 지내는 동생이고 내 글을 꾸준히 읽는 구독자이기도 하다.
내 사정, 성질머리도 웬만큼 안다.
믿으니까 맡기고 싶었을 것이고, 청소 일보다 덜 힘든 일을 주고 싶다고 했다.
좋은 일자리 소개라기보다, 나를 생각한 마음이 먼저인 제안이었다.
남들이라면 계산기부터 두드렸을 것이다.
220에서 240.
청소보다 덜 힘들다.
이쯤이면 축하 현수막 정도는 걸어도 된다.
남들은 계산부터 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의 피로도를 계산했다.
월급 얘긴데, 혼자 인간관계 법을 개정하고 있었다.
동생은 선의를 건넸다.
문제는 선의가 아니다.
선의를 받는 버릇이다.
순수하게 받는 데 서툴렀다.
가까운 사람의 호의 앞에서 더 그랬다.
숨은 계산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끼고 있다는 것, 믿고 있다는 것, 덜 힘들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그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가까운 마음은 무게가 있다.
받는 순간부터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아이였다.
선물 덕분에 오래 버텼다.
가난한 시절에도, 서러운 날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귀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고 믿게 했다.
그 믿음은 사람을 살린다.
하지만, 편할 수만은 없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아이는 자라서 자신도 특별한 존재일 수 있다고 믿는다.
삶의 기준이 높아진다.
받아야 할 사랑의 기준, 대접받아야 할 자리의 기준, 억울함을 견디는 한계치까지 덩달아 올라간다.
부당함에 유난히 아프고, 오해에 쉽게 다치고, 평범한 취급에도 오래 서운해진다.
14화에서 고백한 부작용.
부작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례 앞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아끼는 사람의 호의 앞에서도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너무 일찍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집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마음을 담보로 일하는 자리 앞에 서면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아무리 좋은 제안이어도, 아무리 믿는 사람이어도, 역할과 관계가 한집에 살기 시작하면 언젠가 서로의 방문을 함부로 여는 순간이 온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망가지진 않는다.
선을 지키며 오래가는 관계도 많다.
나는 그런 관계를 배우며 자란 사람은 아니다.
무너진 경계에서 살아남는 법부터 익혔다.
남들은 덜 힘든 일이라 반가워할 때, 감정노동을 생각한다.
동생의 제안을 듣고, 마음의 피로도를 계산했다.
초인종 소리, 약봉지 정리, 일정 동행, 식사 챙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말들.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너무 잘해버릴 가능성이었다.
누군가의 필요 속으로 들어가면, 필요 이상으로 해낸다.
잘 해내고 나면 신뢰가 쌓인다.
신뢰의 무게를 부담으로 지닌다. 더 잘하려 애쓴다.
그러다 제풀에 쓰러진다.
결국 동생에게 말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지만 가까운 사람과는 일을 섞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거절이면서도, 실은 보호였다.
나를 보호하는 말이었고, 우리 사이를 보호하는 말이다.
동생의 마음을 의심한 건 아니다.
너무 믿어서 그랬다.
건넨 건 일자리가 아니라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고마워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도 쓰면 닳는 것들이 있다.
호의, 미안함, 편안함.
금이 가면 복구가 어렵다.
청소 일은 단순하다.
걸레는 빨면 되고, 먼지는 닦으면 된다.
바닥은 닦은 만큼 반짝인다.
바닥은 오해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은 다르다.
오늘의 배려가 내일의 부담이 되고, 오늘의 고마움이 내일의 서운함이 되기도 한다.
조금은 안다.
몸이 힘든 일보다, 관계가 닳는 일은 오래 아프다는 걸.
이미 아팠고 더는 아프기 싫다.
한때는 그런 내가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왜 좋은 사람의 호의도 선뜻 못 받을까.
모든 호의를 수용하는 것이 성숙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호의라면, 정중히 돌려놓는 것도 예의다.
가까운 사람의 호의는 더 그렇다.
기쁘게 받는 법만큼, 무너지지 않게 받는 법도 필요하다.
호의에도 사용법이 있다.
가까운 사람의 호의를 덥석 받기 전에
관계가 일을 견딜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자존심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가 어디까지 안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고마움이 빚이 되지 않는 거리, 배려가 역할로 굳지 않는 거리, 사랑이 역할 분담으로 변하지 않는 거리.
그 거리를 늦게 배웠다.
어쩌면 평생 찾던 것이 대단한 기회가 아니라, 안전한 거리였는지 모른다.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거리가 아니라, 오래 곁에 두기 위한 거리.
상처받지 않기 위한 거리가 아니라, 상처를 덜 주기 위한 거리.
동생은 거절을 서운해하지 않았다.
되레 다정해졌다.
좋은 사람은 거절당한 뒤에 더 잘 보인다.
지키려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 주는 사람은 오래 남는다.
특별한 선물은 나를 살렸다.
하지만 선물이 남긴 부작용 때문에, 아직도 호의 앞에서 자세를 바로잡는다.
누군가 의자를 빼주면 앉기 전에 먼저 묻는다.
이 자리,
오래 앉아도 괜찮은 자리인가요.
호의를 잘 받는다는 건 무조건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받아도 되는 자리와, 받으면 관계가 닳는 자리를 구분하는 일.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것과, 고마움을 감당할 줄 아는 일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호의 앞에서 도망치지 않되, 나를 잃지 않는 법.
가까운 사람의 배려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법.
그러니 이건 거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용설명서다.
호의는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함으로 바꾸는 순간, 호의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