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반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아이 셋을 혼자 데리고 가는 첫 비행이라 출국 몇 달 전부터 걱정을 하던 차에 출국 2주 전 발뼈가 부러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비행기에 탑승만 잘 하면 한국에는 도착할 수 있다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잘해주어 아무 문제 없이 무사히 한국땅을 밟았다. 공항에 마중 나온 언니와 형부를 만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많이 바뀐 듯하면서도 그대로인 차창 밖 모습들이 너무나 반가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모든 풍경과 냄새가 아주 많이 그리웠었다.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것들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그 끝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기쁨의 회포를 풀고 두 달 반의 소소한 일상들을 시작했다.
나도 아이들도 한국의 가족들까지 모두 기대하고 고대하며 세워놨던 많은 계획들이 있었다. 키즈카페, 놀이공원, 바닷가 등과 아이들이 배워보고 싶어 했던 학원들도 다녀보자 세세하게 계획을 세워놨었다. 하지만 유행하는 전염병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인지... 결국은 피하지 못해 놀러도 못 가고 다니던 태권도학원, 미술학원도 중간에 환불을 해야 했다. 둘째와 셋째는 수족구에 걸렸고, 큰아이는 수족구와 폐렴에 걸렸다. 폐렴은 심하여 입원까지 해야 했다. 의료파업으로 입원실 찾기가 어려울까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남은 입원실을 찾아 입원하여 치료받을 수 있었다. 언니네 아이들이 둘, 우리 아이들이 셋. 총 다섯 명의 아이들이 약 일주일씩 텀을 두고 차례로 병에 걸렸다. 수족구로 7월 한 달을 보냈다. 그다음 큰아이들 셋이 돌아가며 폐렴에 걸려 8월 한 달을 보냈다. 아픈 아이들과 아프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님 댁과 언니네 두 집에 나누고 집안에서만 지내게 하였다.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었는데 아이들이 폐렴까지 걸리고 나니 더욱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모든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집 앞 놀이터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비행기 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다른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외출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나가지 않았고, 꼭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마저도 나만 다니고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만 있게 해서 많이 지루해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9월 초에 큰 조카가 코로나까지 걸렸다. 조카는 평소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하던 아이였고, 학교와 학원만 다녔는데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2주 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언니네서 지내던 나와 아이 셋은 부모님 댁으로 갔다. 한국에 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해 화상통화를 했다. 웃기고도 슬픈 일이었다. 우리가 그저 무사하게 캐나다에 돌아갈 수 있기만을 모두가 바랐다.
나는 7월 중순쯤 거의 다 나은 발뼈 바로 옆 뼈가 또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번엔 좀 심하게 부러져 반깁스를 했고, 다시 한 달을 절뚝대며 다녔다. 뼈가 부러진 채로 생활한 것이 2 달이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잘 아물었고. 깁스를 풀고 나니 8월 중순이었다. 우리는 집안에만 머물며 먹고 싶었던 배달음식들을 시켜 먹고, 필요한 것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며 시간을 보냈다.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의 화려한 추억 만들기는 실패했지만 그리웠던 가족들을 만났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떠나오는 날까지도 무사히 캐나다에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아쉬움과 서운함은 느낄 새도 없었다.
긴 비행 후 무사히 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지도 못한 채 일상을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는 하루쯤 쉴까 했지만 친구들을 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다음날 바로 등교를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 반갑게 맞아주어 다들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시차적응이 안 된 탓에 새벽 3시, 5시에 아이들이 일어났고, 그 덕에 나 역시 일어나 하루종일 비몽사몽이었다. 그런 상태로 일주일을 넘게 보냈다. 너무나도 피곤했다. 눈을 반쯤 감은상태로 집안일을 했다. 그래도 긴 여행에서의 작은 후유증이라 생각하니 마냥 나쁘진 않았다. 그 외에는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늘 해왔던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들 인양 늘 신이 나있었고, 활기찼다. 좋은 변화였다. 나 역시 그랬다. 시차적응 하는 김에 좀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좀 더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피곤해도 몸을 좀 더 움직여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고 마무리했다. 아이들 TV시청 시간을 줄이고자 방과 후 활동들을 계획적으로 등록했고, 학습지나 책 읽기로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했다. 나태했던 일상에 이런 전환점이 꼭 필요했었다. 아이들도 두 달 반 새에 많이 컸는지 스스로 하는 것들이 많이 늘었다. 감사한 변화였다. 이제 두 달 반 동안 빈자리의 흔적이 쌓인 집 정리와 한국에서 욕심껏 가져온 짐정리만 하면 된다.
집에 오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