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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May 09. 2022

죄송한데, 정리할 시간 더 주세요

직장인의 일주일이 '워어어얼화아아수우모옥금퇼'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직장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렇듯 회사에서는 내 의지보다 흘러가는 시간에 뒷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결정해야 될 때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백수이든 시간이 많으면 어떤 문제든 최고의 해결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동안 광고주와 일하면서 일정이 여유로웠던 작업은 정말 손에 꼽는다. 아직 모든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선배들 말을 들어봐도 여유로웠던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신입 때는 특히 일정 짜는 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이렇게 큰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시간을 주는 걸까. 모두가 '데드라인 효과'의 신봉자인 건가. 물론 내가 벼락치기를 자주 했던 건 맞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


광고회사에서 콘셉트 기획에서부터 촬영, 편집 등 후반 작업 기간을 거쳐 온에어(On-air)까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4주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부터 시간과의 싸움이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때마다 '제발 수정 없이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며 온갖 신을 부르고, 물 떠놓고 빌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를 진행한다. 하지만 광고주님은 슬프게도 내 편이 아니다.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콘셉트 워딩은 조금 바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 없는 건 알지만.. 몇 가지만 더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제품명이 부각되게 해 주세요. 지금은 너무 재미만 노렸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아요. 근데 제품이 잘 안 보이는 게 아쉽네요..."

"제품은 잘 보이는데... 너무 후킹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맨 처음에 보여주셨던 안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예전 안으로 진행하시죠!"


이때부턴 환장의 티키타카가 시작된다. 해달라와 안된다의 싸움이랄까. 광고주와 내부 타 팀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고 싶지 않다면 재빠르게 선수 쳐야 한다. 뭐가 됐든 우선 시간 확보가 먼저다.


앗, 죄송한데 그럼 정리할 시간 더 주세요.

입에 달고 사는 이 멘트를 시작으로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는다는 일념 하에 움직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난 자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임기응변이라며, 잔머리라며, 그런 식으로 얼마나 가겠느냐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문제를 덮으려는 의도가 아니다. 최악보단 차악을, 최고보단 최선을 선택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템포를 따라가려 한다. 한 번에 해결이 안 됐더라도 내 템포를 따르니 조급하지 않다. 시간이 내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가면, 두 발을 질질 끌고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저항하며 브레이크를 건다. 그러다 보면 답이 생기고 결국 문제는 해결된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속해서 나는 내 템포로 삶을 끌고 가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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