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 Apr 23. 2022

주눅을 먹고 자란 신입

이제 막 사회생활에 뛰어든 후배에게, 선배들은 여러 가지 말들을 던진다. 절대 신입 앞에서 칭찬하지 않는 팀장도 있고 당근과 채찍을 아주 적절하게 주는 맞사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는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그 업계를 떠나는 사람도 포기 않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도,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마치 나처럼.


나의 첫 회사는 점차 규모가 커짐에 따라 큰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내가 생각한 내 포트폴리오와 미래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선배들에게 업무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내 앞길을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이직이었다. 변화된 조직에서 이제 막 팀의 장을 달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려던 A 선배에게 나의 결정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선배는 아쉽지만 내 선택을 존중하며 보내주었고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진작 이야기해보지 그랬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 표현하셨다. 나 또한 이후로 그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연락하지 못했고 그렇게 2년 여가 지났다.


여기저기에서 바지런히 경력을 쌓던 어느 날, 첫 회사 다른 팀이었던 팀장님에게서 이직 제안이 왔다. 꼭 가고 싶었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업계에서 알아주고 오래되었으며 무엇보다 대기업에 속하는 회사였다. 총 인원 4명인 회사에서 시작해 10명, 70명, 100여 명이 속한 회사로, 천천히 레벨업해 온 보람이 있달까.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팀장님은 여러 후보가 있었으며 고만고만했지만 회사 기준에 따라 최종 후보로 너를 뽑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사실 결정적으로는 이전 회사 선배 덕분이라고 하셨다.


"A형이 너 사수였잖아. 물어봤더니 그러던데? 말도 잘 알아듣고 욕심도 있다고. 데리고 있으면 든든하고 도움 될 거니까 너랑 꼭 하래. 그 형이 너를 한 번 제대로 키워보려 생각했었는데 뭐 하지도 못하고 나가서 아쉬웠다고 하더라. 나중에 최종 되면 고맙다고 꼭 연락해라."


사실 A 선배가 나를 좋게 봤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일하던 때, 내 바로 위였던 B 대리님이 워낙 일을 잘하셨고 꼼꼼했었다. 팀장님은 업무시간 중이나 사석에서도 B 대리님의 일처리 능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런 대리님과 반대로, 회의시간에는 내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무런 피드백 없이 사장됐고 업무에 대해서도 팀장님께 '다시 생각해봐' '왜 이렇게 했어?'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였다. 특히 A 선배에게 듣는 '아냐 그냥 내가 할게.'라는 피드백은 욕보다도 듣기 싫었었다.


물론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거나 무안을 당한 적은 없다. 그런데 신입이었던 나에겐 나의 쓸모가 중요했다. 하지만 이 팀에서는 내가 참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았고 주눅이 든 채 회사를 다녔다. 이후로 어떻게 하면 내가 쓸모 있어 지는지 알아내려 애썼었다. 긴 고민의 결과는 퇴사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 온전히 나만 있었다. 내가 팀에 필요한 사람이었단 걸 안 건 이직 제안 때 지금의 팀장님이 해준 이야기 덕분이었다.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들었다면 더 좋았을 멘트였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때도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다. 팀장님이 장난 삼아 던진 "뽑을 사람이 없어서 그냥 너 뽑았지 뭐. 운 좋은 줄 알아라"는 말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생겼었다. 하지만 나중에 국장님이 "네가 잘해서 뽑힌 거야. 다른 사람이 못 채가게 내가 너 먼저 뽑으라고 했어!"라고 말씀해주셨고, 덕분에 2년 반 동안 회사를 다닐 힘을 얻었다. 물론 뒤늦게서야 팀장님이 강력하게 나를 뽑길 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칭찬은 이미 상처를 받은 나에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말은 파괴하거나 치유하는 힘을 갖는다. 진실하고 친절한 말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 Budda

부처님의 말처럼, 결국 사람은 말을 통해 상처받고 힘을 얻는 존재다. 다만 칭찬이든, 충고든, 위로든 표현 방식과 타이밍이 적절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친 위로와 칭찬은 '진작 말해주지'라는 대답을 듣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충고를 해야 할 때는 말을 전함에 있어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물론 타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억지로 미사여구를 꾸며낼 필요는 없다. 내가 말하는 부드러움이란 완곡한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완곡한 표현이 낯간지럽다 하여, 장난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하지만 장난을 치더라도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장난이라 할 수 없다. 그건 폭력이다. 언어폭력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평생 남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 악랄하다. 배려 없이 그냥 뱉어버리는 말은 그저 '내 욕구'를 충족하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나 또한 완벽하진 않지만 어떤 말을 하든 신중하게 고르려 한다.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한 것은,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벗어나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스킬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한 말들은 언제, 어떤 형태로라도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