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부딪혀 쓰러져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이 있다. 이륙을 위해 비행기가 움직일 때 공항 직원들이 손을 흔들어주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비행기를 탈 때면 이 모습을 꼭 봐야하기 때문에, 창가자리에 앉는 것을 선호한다.
나는 이같은 소소한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학교 앞 치킨집에서 콜팝을 사 먹으며 웃고 떠드는 것이 낙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에서 단골손님들과 나누는 작은 대화들이 무척 즐거웠었고 지금도 회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다만 직장인이 되고나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점점 더 큰 욕심이 생기고 목표가 생겼고, '소소함'은 삶에서 점점 사라졌다. 시작은 항상 비교였다. 다른 사람들은 몇 살에 얼마 연봉을 받는지, 어떤 차를 구매했는지, 어떤 집을, 어떤 주식을 가졌는지 등등, 누가 무엇을 가졌느냐에 따라 웃음이 지어지고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것이 사회인 줄 알았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벌레같은 생각인 줄 몰랐기에.
서른 즈음인 지금의 나는 쉽게 행복을 못 느낀다. 작은 성취에는 더 이상 설렘이 없었고 소소함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SNS에 자랑할 법한 일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우러러보도록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높아지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더 많이 가지면 행복이 더 크게 오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끝없이 나 자신을 갉아먹고 옭아맸다.
이런 나를 되돌아보게 해 준 곡을 최근에 만났다.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다. 가사는 20대 초, 중, 후반 아이유를 1,2,3절로 나누어 그린다. 아이유의 자전적인 곡이지만 마치 내 삶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했고 하루종일 시달린 어떤 날엔 눈물까지 났다. 다만 노래와 내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가사에서처럼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롭지 못했고 날 가두는 어둠에 눈을 감지 못했다. 두 번도 넘게 날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달랐다.
이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소소한 즐거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이상 큰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작은 것을 소중함을 느끼고 싶다. 불안한 미래에 갇히지 않고, 지금의 나를 더 소중히하고 싶다. 나 자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는 것에 익숙해지는 사람이면 좋겠다. 커피가 맛있어서, 대화가 즐거워서, 날씨가 좋아서, 그냥 왠지 기분이 좋아서 마음이 부풀어 오르던 예전 그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