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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Apr 06. 2022

중문과의 참을 수 있는 슬픔

내가 중문과를 택했을 때 중국 문학에 대한 어떤 뜻은 없었다. 성적이 그곳을 가리켰고, 거기에 따랐을 뿐. 대신 입학 후 ‘방송국 입사’라는 목표를 꿈꿨고 대학 4년 내내 과와는 상관없는 방송국 언론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하며 언론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때 이후로 방송국은 근처에도 안 가게 되었다.


지금 내가 몸담은 광고 업계에는 광고홍보학과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나처럼 비전공자들도 꽤 많다. 그렇지만 나처럼 광고학과도 아닌데 광고 동아리도 해본 적 없고 공모전 수상경력도 없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힌다. 그래서 면접 자리마다 내 이력에 대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고, 웅진씽크빅 도움받던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내 이야기를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방송국 밥보다 훨씬 비싼 강남 밥을 먹으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1년차가 됐을 시기에는 중국 회사들이 한국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던 때였다. 그래서 중국 클라이언트들도 심심찮게 한국 광고 대행사를 찾았더랬다. 그중 우리 회사도 있었고 그 회사엔 내가 있었다. ‘중문과’ 출신인 내가. 그리고 선배들은 어김없이 나를 불러 물었다.


“너 중문과 출신 아냐? 그럼 번역되겠네.”

‘번역이요? 중국 가면 슈퍼에서 물만 겨우 살걸요.’


“너 중국어 얼마큼 해? 그래도 중문과 출신인데.”

‘유치원생이라면 대화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학부 내내 다른 직업을 갖고자 중국어는 내팽개쳤던 내가 번역이라니. 잘할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속마음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으니 강남 밥 계속 먹고 싶었던 나의 대답은 무조건 “해보겠습니다!”였다.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던 과 동기들에게 엄마보다 자주 연락했고 파파고는 가장 믿음직한 친구로 내 곁을 지켜줬다.


이때 나는 ‘다른 친구들은 광고 업무 하기 바쁜데 나는 이런 번역 때문에 야근해야 하다니, 중문과라서 서럽고 참 슬프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회사 동기들도 번역만큼이나 번거로운 일들을 쳐내고 있었을 것이다. 연차가 조금 쌓인 이제야 그때의 나를 다시 돌아보니 깨닫게 됐다. 저연차의 업무는 좋든 싫든 도움이 된다. 광고주 문서를 직접 번역했던 덕분에 나는 오히려 광고주의 니즈, 광고주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었다. 그래서 의견을 내거나 피드백에 대해 더 확실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번역은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인사이트는 덤으로 얻었고.


학부 시절, 가장 좋아하던 중국 작가 루쉰의 한 말이 있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을, 나는 길은 누군가 만들어내면 생기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어떤 삶이든 각자의 길이 따로 있기 때문에 놓인 길을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길은 만들면 된다. 중문과 출신으로 방송국 알바와 인턴을 전전했지만 결국 광고 업계로 와 용케 버티고 있는 나처럼.


처음 설정한 목표와 다르게 도중에 경로를 이탈했지만 그렇다고 막다른 절벽 끝에 다다르지는 않았다. 성적에 맞춰 중문과를 선택했고, PD가 되기 위해 방송국 알바를 선택했다. 그러다 인턴 기자를 선택했고 광고 PD을 선택했다. 망할 줄 알았고, 망하기도 했던 그동안의 선택들은 광고기획자로 삶을 버티게 해주는 퇴비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갈 길이 평탄할지, 언덕 일지, 비포장도로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을 뒤집을 기회가 올 수도, 또 새로운 도전을 하다 실패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것이든 선택하고 뭐라도 해봤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안 좋게 끝나면 잠깐 슬픔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절대 후회는 안 할 거다. 지금까지처럼 내가 한 선택들은 분명 내 길을 닦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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