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사람이 성장할 때에는 트리거가 되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고 한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어떤 순간을 만나 한 곳을 향해 단단해지는 것이다. 나에겐 4년 전, 한 촬영장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방송국 PD를 꿈꾸던 그 시절, 우연히 광고 PD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그 PD(Program Director)가 그 PD(Producer)가 아닌 것을, 두 직업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그렇게 광고계에 입문했다. 촬영장에서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던 막내 PD는 이번엔 광고회사 기획자(AE)가 되어 또다시 촬영장에서 광고주 의견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어쩌다 나는 AE가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내 ‘욕심’ 때문이었다. 이 죽일 놈의 욕심은 나를 PD에서 AE로 만들었고, 촬영장 겉에서 돌던 나를 촬영장 가장 안쪽으로 이끌었다. 누군가는'그래봤자 돌고 돌아 촬영장이잖아?'라며 비웃을 수 있지만, 나는 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천지차이라는 걸. 언제 이렇게 됐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점점 성장해 온 것이다.
과거를 돌이킬 적마다 인생은 ‘우연한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처럼, 이 지구에 사는 이는 모두 자신만의 우연한 순간들을 만날 것이고, 좋든 싫든 그 순간들이 겹치고 쌓여 오늘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는 가시밭길만 있고, 누군가의 삶에는 꽃길만 있을 리 없다. 어느 뇌과학자님이 말씀하시길, 뇌는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다 미화되는 게 사이언스라는 얘기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나라는 사람은 우연히 광고 업계에 발을 들였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나를 괴롭혀왔기에 이러다 죽겠다 싶은 바쁜 일이, 광고밖에 생각 못하게 하는 이 업의 생리가, 오히려 내겐 약이 되었다. 우연히 광고를 만난 순간이 내 삶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다. 물론 뇌가 나를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몇 날 며칠을 밤새고 늦은 저녁을 먹는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팩트니까. 하지만 덕분에 삶의 끈을 놓지 않았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 된 것도 팩트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어떤 순간들이 삶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고 있는지. 삶에 대한 의지 없이 하루하루 기계처럼 살다, 어떤 우연한 순간 덕분에 조금 더 살고싶어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 내 글을 통해 묻고, 내 글을 통해 답을 듣고 싶어졌다.
당신의 삶은 어떤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