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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Jan 03. 2023

새 해

-30년 전 글 쓰던 아이 이야기 1-

어릴 적 썼던 글 뭉치를 찾았다. 보자기에 싸여있던 원고지 중에서 새 해에 걸맞은 글이 있어서, 컴퓨터로 옮겨본다.  

이 글은 내가 96년 1월 2일, 그러니까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쓴 글이며, 혜신언니, 혜원언니, 기원오빠는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종 사촌들이다. 중간중간 멋있어 보이려고 묘사한 문장들과 매번 하는 다짐들, 왜냐하면으로 시작해 ~하기 때문이다로 끝나는 문장의 정석들, 1000원에 질투를 했던 내가 너무 웃기고 귀엽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래와 같이 생각했던 건 그 찰나였을 것이에요. 그 후, 구정 때 세뱃돈 많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감사합니다.


난 새 해가 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냐하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나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켜 주기 때문이다.


꽁꽁 얼 것 같은 95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참 기대가 됐다. 왜냐하면 내일이 되면 세뱃돈을 왕창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제의 추위가 거짓말이었던 듯 96년 1월 1일은 아침 해가 반짝반짝 빛났다. 아침 일찍이 남들은 차례를 지내는데, 우리 가족은 그런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설날이 뭐 이래. 괜히 할머니 댁에 왔네' 하고 투덜거렸다.


아침 먹고, 할아버지께 세배를 드렸더니 100원도 안 주시고 오히려 "우리는 구정 세!"라고 화내시듯 말씀하셨다. 그때,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 이럴 때는 외할아버지가 계셨으면 더도 말고 1000원을 주셨을 것이다. 난 우리 가족한테 불만을 많이 품게 되었다. 나는 '요번은 왜 행운이 안 돌아올까?' 생각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저녁에 큰 이모댁에 갔는데 혜신이 언니 생일이 지나서, 큰 이모, 엄마, 기원 오빠가 혜신 언니에게 1000원을 주었다. 나는 은근 샘이 났다. 하지만 혜신 언니는 이번에 미국 가서 3년을 있어야 되기 때문에 난 참아야 했다. 나는 '언제 구정까지 기다리나?'하고 생각하면서,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집으로 왔다.

새 해라는 글의 마지막 장

나는 새 해를 맞이하며, 어제처럼 샘내지 않겠다. 혜신언니가 미국에 안 갔으면 좋겠다. 내가 큰 이모나 기원오빠라면 혜원 언니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늙어서 친할아버지처럼 상스럽게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혜신이 언니가 미국 가서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혜신 언니 미국 가서도 복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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