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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Jan 12. 2023

너희의 조금 특별한 여름날,

중2병이어도 괜찮아

“아 안녕하세요…”눈을 마주치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인사하던 아이. 수연이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당시 나는 교회학교 선생님이 된 지 몇 주 되지 않은 새내기 선생님이었다. 교회학교 선생님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코로나로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지 않아 아이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그때, 수연이는 내가 처음 만난 학생이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두운 아이, 그게 수연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 후덥지근한 여름날, 까만 머리, 눈가에는 까만 스모키 화장, 블루칼라 렌즈를 낀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 아이는 까만색 마스크, 까만색 반소매에 팔을 가린 까만 토시 그리고 까만 바지를 입고 까만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자신을 뒤덮은 그 아이는 그 색상으로 자신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상태는 지금 어두컴컴, 우울해요. 감추고 싶어요’라고. 선생님께 인사드리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땅만 바라보고, 떨떠름하게 인사하던 그 아이의 인사는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안녕, 내가 앞으로 너의 교회 담임 선생님이야. 선생님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아서, 수연이가 선생님 좀 잘 부탁해!”


나의 인사만큼은 매미 울음소리에 묻히지 않고 수연이에게 잘 들리길 바라면서 최대한 밝고 힘차게 인사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수연을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어색하지 않으려, 형제는 있는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어떤 가수를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수연이는 “언니요”, “떡볶이요”, “BTS요” 이렇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멋쩍었다.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가 정말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카페에서도 이런저런 나의 질문에 수연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색한 공기가 계속 감돌았다. 신상 파악만 하고 끝난 첫 만남 이후 계속 생각했다. 이 아이는 무엇 때문에 마음에 상처받았을까? 수연을 더 알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그 흔한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했다. 한창 중2병이 걸릴 그 나이에 다른 나라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중2병에 걸릴 틈이 없었기도 했다. 그 대신 그놈의 중 2병이 성인이 되고 호되게 와서 고생하긴 했지만, 한참 다른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을 그 시절에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내가 그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일단 이 아이와 같이 공부도 하고 대화를 많이 해보기로 했다. 같이 팥빙수와 떡볶이를 먹으면서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 아이가 마음을 제대로 열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매일 짧게라도 안부 전화를 하고, 토요일과 주일이면 불러서 떡볶이를 먹었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났을까, 수연이가 이제 나의 질문보다 더 길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아이돌 같은 인형 같은 얼굴을 아니지만, 고상한 분위기를 풍겨 눈에 띄는 그 아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외모 콤플렉스가 생겼다. 본인도 예뻐지길 바랐고, 예쁜 친구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화장하고 다니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소위 날라리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수연이 본인도 잘 나가는 무리에 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 그 친구들 무리가 하는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때도 있었지만,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토록 그 무리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이성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이성 친구에 대한 질투였는지, 어느 날부터 같이 놀던 무리가 은근 따돌리기 시작했으며,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수연이는 그 친구들이 변한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학교에서는 틀어진 교우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집에서는 공부는 안 하고 삐뚤어져 나가기만 한다고 부모님이 나무라시는 훈계가 수연이 마음에 상처로 꽂히고 있었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고 상처받은 수연이는 세상을 살기가 싫었다고 했다. 동네에서 그 친구들을 만날까 봐 두렵고 외출도 사실 하기 꺼려진다고 했다. 실제로 그 동네에 방문했을 때 수연이가 종종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게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수연이가 항상 반소매 위에 입고 다녔던 토시는 한창 힘들었을 때 자해를 했다가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수연이는 그냥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었고, 나는 이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수연이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냈다. 여름 방학 이후, 수연이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수연이는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하며 밝은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안히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수연이가 갑자기 학교를 못 다니겠다며 자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고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아직 자존감 회복이 완전히 안 되었던 수연이는, 학급 친구들의 사소한 말에 상처받고 있었다. 나는 다음 날 바로 월차를 내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수연의 집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 한 학기 더 다녀보고 그때도 아니다 싶으면 진짜 자퇴해도 되는데, 아이들 때문에 네가 소중한 학창 시절의 기회를 빼앗긴다면 선생님은 너무 속상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냥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수연이가 생각해 볼 며칠 동안, 계속해서 수연이와 15분 이상 전화 통화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 학기만 꾹 참고 더 다녀본다고 하던 약속했던 수연이는 이제 고3이 된다. 그 누구보다도 명랑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되고 싶은 것도 생겼다. 학교에서는 많은 후배 동생이 친해지고 싶은 선배 언니가 되었다.


수연이 말고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던 아이들이 있었다. 삼 남매 중 둘째로서 집안에서 자신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는 생각으로 부모님께 항상 반항했던 상은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바깥에서 겉돌다 집에 들어갔던 윤정이, 다들 그 시기를 방황하며 보냈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마다 잔소리보다는 그 아이들 말을 더 들어주고 더 이해해주려고 했다. 내가 아니어도 잔소리는 학교 선생님, 부모님께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을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로 아이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강하게 불었던 중2병이라는 비바람에 다행히 수연이도, 윤정이도, 상은이도 꺾이지 않고 잘 버텨 주었다.


나는 믿는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는 그 혹독한 병 치유법으로는 들어주는 귀, 누가 뭐래도 난 네 편이라는 따뜻한 응원과 애정 딱 이 세 가지면 된다고 말이다.


가끔 나는 아이들에게 농담처럼 묻는다.


“너 선생님 처음 만나던 날 어땠는지 기억나? 네 옛날 모습 기억나니?”

“선생님, 말도 마세요. 제 인생의 흑역사예요.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그날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시절은 너희의 흑역사가 아니라고,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 비바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더 단단해진 너희가 있는 것이라고. 다른 친구들도 겪는 중2병을 너희는 조금 더 특별하게 겪었을 뿐이라고. 돌아보면 아주 조금 요란했던 너희들 인생의 여름날이었을 것이라고.


photo by unsplash/@simonma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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