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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ug 10. 2021

미운 오리 어미의 사랑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유저작물 창작 공모전>


 뜨거운 햇살에 나뭇잎이 타들어 간다. 여느 때보다 더운 날씨에 늪지의 물도 말라갔다. 어미 오리는 빽빽한 풀들 사이에 둥지를 트고 마지막 알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틀 전 다섯 마리 오리가 태어났다. 어미 오리는 알을 품는 내내 자신의 온기가 여섯 알 모두에게 골고루 전달되도록 심혈을 기울였지만, 유독 큰 알 하나는 깨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에게만 온기가 부족했던 걸까?' 어미 오리는 불안한 마음에 이틀째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둥지를 지키고 있다. 남편은 어디에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큰 알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 분명 특별할 아이가 태어날 거야.’ 어미 오리는 자신의 아이가 특별한 존재가 될 거라 기대에 부풀었다. 그 기대감 때문인지 허기도 잊고 지쳐가는 몸을 버티고 있다.



 "탁"

드디어 콩알만 한 금이 생겼다. 어미 오리는 숨을 죽이고 들여다본다.

 "타다닥"

이번에는 가뭄 날 마른땅이 벌어지듯 금이 가더니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어미 오리는 가슴이 벅차올라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뱉더니 울음을 터트린다.

 "삑"

새끼 오리가 힘겹게 얼굴을 내밀었다. 어미 오리는 주둥이를 알에 가져다 댔다. 새끼가 편히 나올 수 있도록 껍질을 뜯어내 주고 싶은 모양이다. 새끼 오리는 둥그렇게 말린 몸을 쭉 뻗었다. 회색 깃털의 덩치 큰 남자아이다. 노심초사 기다렸던 막내 아이. 어미 오리는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이가 너무나 감사했다.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남편은 그제야 집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조용했던 집안이 북적북적하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던 남편도 자기 자식은 사랑스러운가 보다. 평소에는 말도 없던 남자가 오늘따라 호들갑이다.

 “막내는 깃털이 왜 이렇게 더러운 거요? 누굴 닮아 못생겼지? 이름을 미운 오리라 지어야겠소.”

남편의 말에 어미 오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못생겼다는 거예요?”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와 아이의 흠을 잡는 남편이 얄미웠다. ‘남편이 다시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어. 나 혼자서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어.’ 어미 오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나갔다.



 “어머나, 아이들이 태어났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얼마 전 예쁜 딸들을 자랑하던 옆집 오리가 어미 오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무나 귀엽네요. 우리 아이는 벌써 다 컸답니다. 이제 제 곁을 떠나려고 해요."

옆집 오리는 새끼오리들을 하나씩 쳐다보다 미운 오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회색 깃털을 한 아이도 이번에 태어난 아이인가요? 몸이 정말 크네요. 남자아이라 다행이에요.”

옆집 오리는 미운 오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본다. 어미 오리는 언제나 수다스러운 옆집 여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때문인지 어깨에는 잔뜩 힘을 넣고 고상한 척 농장을 거닐었다.



  세 바퀴쯤 돌았을까. 산책을 마친 아이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어미 오리도 그제야 다리를 펴고 눕는다. 산책하는 동안 혹여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길을 잃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어미 오리는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히죽거리는 모습이 해맑았다. 문득 옆집 여자가 떠올랐다. '남자라 다행이라고?' 어미 오리는 미운 오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옆집 오리의 눈빛이 그제야 신경이 쓰였다. '칫, 정말 예의 없는 여자야.' 어미 오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아침햇살에 호수가 반짝거린다. 어미 오리도 눈이 부셨는지 몸을 뒤척였다. 아이들은 미동도 없이 곤히 자고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농장이 어수선하다.

 “미운 오리는 어디 있어요? 그렇게 못생겼다면서요?”

농장 암탉과 고양이들이 집 앞을 어슬렁거리다 어미 오리를 보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못생겼다니요? 누가 못생겼다는 거예요?”

어미 오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잠들어 있던 아이들도 어미 목소리에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애미야. 이게 무슨 난리냐?”

미운 오리의 소문을 들은 친척들도 집으로 몰려왔다. 덩치도 크고 못생긴 게 칠면조 새끼가 틀림없다며 아우성이다. 벌게진 어미 오리의 얼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미운 오리가 태어난 후로 어미 오리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어미 오리는 알을 품는 동안 엄마가 된다는 기대감에 행복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농장을 산책하고, 함께 수영도 하면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미운 오리가 태어나면서 꿈꿔왔던 생활과는 멀어졌다. 특별한 아이가 태어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못생긴 아이가 태어나 놀림을 받고 있다. 어미 오리는 미운 오리의 얼굴을 쳐다보면 '오늘은 누가 또 비아냥거릴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침 소란에 여섯 아이도 잠에서 깨어났다.

 “미운 오리! 네가 태어나서 엄마가 놀림을 받잖아.”

미운 오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미운 오리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살짝만 건드려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미운 오리는 어미 오리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지만, 미안한 마음에 엄마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미운 오리는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계속 걷다 보니 갈대밭 늪지에 다다랐다. 미운 오리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갈대가 심하게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조차도 미운 오리를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도 갈대밭으로 향했다. 미운 오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집을 나선다. 어미 오리는 고개를 떨구고 집을 나서는 미운 오리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가지 말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미운 오리가 농장에 있으면 또다시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어미 오리는 자신의 자식이 농장의 놀림거리라는 것에 화가 났다. 어느 날은 미운 오리가 사랑스럽다가도 어느 날은 아이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다. 매일 갈대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안쓰럽지만, 미운 오리 때문에 농장이 소란스러워지면 화가 치밀었다. 아이를 무시하는 농장 동물들도 싫고, 자신의 아이가 왜 그렇게 못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성화를 내는 본인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괴로웠다. 그렇게 어미 오리는 미운 오리를 갈대밭으로 내밀었다.






 오늘은 농장에 파티가 있는 날이다. 옆집 새끼 오리가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해 질 무렵, 농장 식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갈대밭에 나간 미운 오리도 농장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어미 오리는 미운 오리가 또다시 농장 동물들에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벌써 골치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미운 오리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동물들을 피해 곧장 집으로 돌아간 걸까. 어미 오리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탕!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갈대밭 쪽이다.

총성이 울리자 사냥개들이 짖어댔다. 계속 울어대는 사냥개 소리에 농장 동물들은 겁에 질려 흩어졌다. '갈대밭... 갈대밭...' 어미 오리는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닐 거야...' 어미 오리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려운 마음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탕! 탕!

총성과 함께 기러기 떼가 노을 속으로 날아올랐다.



 어미 오리는 갈대밭으로 뛰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며 아이를 크게 불러보지만, 사냥개 소리에 파묻혀 그 누구도 어미 오리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어미 오리는 아이와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계속 달렸다.

'늠름하게 알을 깨고 나왔던 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날... 평온한 얼굴로 잠들었던 날...' 어미 오리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꼈던 그때로.



 늪지의 물은 붉게 물들었다. 갈대밭에는 기러기 털들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다. 어미 오리는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 붉게 물든 늪지가 핏물인지, 붉은 햇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가야. 엄마가 왔어. 어서 나오너라."

어미 오리는 무서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



갈대 사이로 회색 깃털이 파르르 떨렸다. 어미 오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아가야"

어미 오리는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불렀다. 

'엄마!' 미운 오리는 갈대 속에 파묻었던 고개를 냉큼 들어 올렸다. 단번에 엄마를 느낄 수 있었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아가야. 이리 오렴. 엄마가 왔어."

미운 오리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던지 엄마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엄마, 잘못했어. 제가 잘못했어요."

미운 오리는 몇 번이고 용서를 빌었다. 어미 오리는 가슴이 미어졌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어미 오리는 있는 힘껏 아이를 껴안으며 흐느껴 울었다. 미운 오리는 숨이 막혀 엄마를 밀어냈다. 어미 오리는 울음을 삼키고는 목이 멘 채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넌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단다. 네가 너무나 특별해서 엄마가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뿐이야. 이제 좁은 농장에 있지 말고 넓은 세상으로 가거라."

미운 오리는 떠나라 말하는 어미 오리에게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며 매달렸다.

 "가거라. 멀리 떠나거라."

어미 오리는 아이를 뿌리쳤다.



미운 오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가 다시 불러주지는 않을까 뒤를 돌아보지만, 어미 오리는 멍한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미운 오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해져 갔다. 어미 오리는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잡고 목메어 울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아이를 안아보고 싶었다.



-END-




 <작가노트>

산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수많은 상상을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딸이면 발레를 시켜야지... 코는 나를 닮아 오뚝하고, 다리는 남편을 닮아 늘씬할 거야.' 10개월간, 태아의 성장과 함께 산모의 기대도 함께 커집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상상했던 것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육아에 지쳐, 내가 상상해 왔던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죠. 그렇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원작에서 어미 오리는 미운 오리에게 '차라리 멀리 가버리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어미 오리는 정말로 아이가 떠나기를 바랐을까요. 어미 오리는 방황하면서도 때로는 괴로워하고 때로는 행복했을 겁니다. 그런 어미 오리의 마음을 적어봤습니다.




<커버 이미지: ©Elina Beketova,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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