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한 군데만 고르라는 건 사실 너무 가혹하다. 결혼하기 전 다녀온 여행지를 빼더라도 지금껏 둘이, 혹은 넷이 다녀온 여행지가 많은데, 각 여행지마다 다 의미가 있었고 떠오르는 추억들을 생각하면 한 군데만 골라 '바로 여기!'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한 군데를 뽑자면, 외며느리이자 맏며느리인 나의 입장에서 도저히 갈 수 없는 기간에 떠났던 2016년 추석 기간의 태국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로 명절 분위기도 달라졌고 시댁에서 지내던 제사와 차례도 이제부터는 성당의 미사로 대신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홀가분하지도 않은 요즘... 추석이 다가오니 또다시 그 옛날 즐거웠던 여행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2016년 그 해 추석 연휴 전 여름휴가 때는 친구네 부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괌을 갔었다. 아이들을 생각해 PIC를 갔었는데 아이들 시중을 드느라 정작 어른들은 은근히 힘들었던 여행... 추억도 많았던 여행이긴 했지만 여행 후에도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게다가 그 해에는 맡은 회사 일도 많아서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짜증을 내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퇴근한 신랑에게 말했다. "우리, 태국 다녀오면 안 될까? 나 미칠 것 같아..."
그동안의 내 모습을 지켜보던 신랑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고 며칠 뒤... 드디어 결혼 후, 아니 생애 처음으로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우선 양가 부모님들께 허락을 받는 게 먼저라 시부모님들께 말씀을 드렸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쿨한 우리 부모님들은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며 허락을 해 주셨고 우리 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것도 말레이시아 항공 비즈니스석!!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려니 티켓 가격이 너무 비쌌다. 저가항공도 평소 가격의 두배로 오른 데다 미리 계획했던 여행이 아니었기에 얼리버드의 이점도 이용하지 못했던 상황... 연휴에 티켓 가격이 오르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여름휴가도 이미 쓴 마당에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즐기려면 명절 연휴밖에 없었으니 비싼 항공료는 기꺼이 감수해야 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 한 군데로 티켓팅을 완료!! 그런데 신랑은 그 뒤로도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고 혹시 몰라 말레이시아 항공 티켓을 알아봤더니 쿠알라룸푸르를 두어 시간 경유하긴 해도 비즈니스석 가격이 일반 저가항공 직항 티켓과 십만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먼저 티켓팅한 직항 항공 티켓을 취소하고 우리 가족 최초로 말레이시아 항공 비즈니스석으로 티켓팅을 했다. 야호~~~!!! 그때부터 들뜨는 내 마음... 아이들에겐 떠나는 날까지 우리가 비즈니스석을 탄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비즈니스석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의 서프라이즈를 위해~^^
그렇게 가게 된 우리의 태국 여행... 목적지는 태국의 방콕, 파타야... 제일 만만하고 패키지 상품으로는 당시 20만 원 대도 있었던 일명 '방파' 그 코스를 우리 가족은 너무 좋아한다. 그때가 다섯 번째 가는 태국 여행이었지만 갈 때마다 늘 좋았고 그 어떤 여행지보다 편안했다. 자유여행이라 여행사 깃발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우리 가족만의 여행을 즐기며 내가 늘 추구하는 여행 컨셉인 '현지에서 사는 듯 여행하기'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아이들이 어렸으니 물놀이와 휴식을 적절히 섞을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데다,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딱히 유명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그곳에 있는 동안은 늘 마음이 편했던 기억 때문인지 신랑과 나는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 태국 가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파타야에서 머물렀던 두짓타니 (Dusit Thani)... 한적하고 참 편안했던 시간... 만화로든 책으로든 언제 봐도 힐링되는 빨강 머리 앤과 함께...
당시 초등 6학년이었던 아들의 낚시와 패러세일링...
뭐든 잘 먹는 우리 식구들에게 늘 힐링이 되어준 태국의 음식들... 수끼와 길거리 음식까지 포함해 먹은 음식 사진들을 다 올릴 순 없지만 특히 방콕 쏜통 포차나의 음식들은 기꺼이 대기를 해도 좋을 최고의 맛~ 지금도 여전할는지 모르겠지만 가고 싶다...
외국에 나가면 늘 마트나 식료품점을 들르는데 특히 태국의 슈퍼는 진열된 과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동남아 최애 과일 망고스틴!!!
방콕에 갈 때마다 머무는 메리어트 수쿰윗... 한적한 수쿰윗 거리도 너무 좋다.
그리고 쿠션 커버와 파우치, 거울 같은 소품들에 홀릭하게 되는 짐 탐슨(Jim Thompson)...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보면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곳! 내겐 그렇다.^^
방콕에서는 짜뚜짝 시장(Chatuchak Friday Night Market)도 좋고, 차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아시아티크(Asiatique Night Market)도 좋지만 시원하고 럭셔리한 백화점 구경도 참 재미있다. 꼭 뭘 사질 않아도 예쁜 물건들이 많아 그 공간에 있는 자체가 참 기분이 좋은 그런 시간...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일주일 가량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아쉽지만 담에 또 오자는 다짐을 하며 늘 비행기를 탄다. 사실 신랑은 나보다도 더 알뜰한 스타일이라 이것저것 쓸데없는 거 사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2016년 그 해 태국 여행에선 여행의 시작부터 산타할아버지 같았다. 비싼 항공권, 훌륭했던 호텔, 부족하지 않았던 먹거리,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 게다가 짐 탐슨에서 내 물건과 친구들 선물을 사느라 과소비를 해도 전혀 뭐라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 집 소파와 내 책상 의자엔 아직도 짐 탐슨의 쿠션 커버들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맘껏 먹고 눈치 안보며 편하게 즐기다 온 여행... 지금 생각해도 그 일주일의 여행이 참 좋았다. 어쩌면 처음 말했던 것처럼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때, 그리고며느리로서 절대 갈 수 없는 기간에 다녀온 여행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도 같다.
그 해, 명절에 시댁에 못 내려가는 대신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시부모님과는 경남 하동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 여행 다녀오면 다음번에는 부모님들도 모시고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었지만 그때의 하동 여행이 시부모님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그 해 겨울부터 어머니는 아프셔서 중환자실을 두 번씩이나 들어가셨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신장투석을 하고 계시니 이제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모두에게 여행은 특별하다. 한 순간도 그냥 보내야 할 순간들이 없이... 지금 생각해보면 2016년 태국으로의 여행은 내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처럼 보통의 일상을 즐기는 여행... 내가 바라는 그런 여행을 했었던 그 해의 태국 여행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해외로의 여행을 다녀왔지만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2016년 태국에서의 시간들을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언제 봐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진과 추억이 남았기에 가능한 일... 코로나로 해외로의 여행은 꿈도 못 꿀 상황들이 너무나 지루하게 이어지고 백신을 맞았다 한들 언제 또다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지치고 힘들면 난 언제든 그곳을 떠올릴 거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온전히 만끽했던 2016년의 그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