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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Aug 31. 2021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울 줄이야...

계절과계절 사이에...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겨울과 봄 사이... 그렇게 사이의 계절에는 늘 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과 오는 계절에 대한 기대가 있다. 특히 8월과 9월이 공존하는 이번 주... 그렇게 덥다 덥다 노래를 불렀던 여름이었는데 8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시원섭섭한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9월이어도 가을 냄새가 나려면 좀 더 깊어지고 무르익어야겠지만 달력의 9월은 가을의 시작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달이니까... 이제 여름은 지나갔구나 그런 생각이 부쩍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사실 가을은 사계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계절의 맛을 알게 된 시절부터 몇십 년간 가을. 봄, 겨울, 여름순의 최애 계절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여름이 왜 맨 마지막일까... 여름 안에 장마가 들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더위 보다도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 싫었던 이유가 큰 듯싶다. 그러다 올 들어  사진을, 특히 비 오는 날 차창에 떨어진 빗방울을  자주 찍다 보니 비에 대한 애정도가 높아져 여름에 대한 마음도 달라진 것 같다.

아니면 올여름 휴가 때 읽게 된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 때문일지도... 여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여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  하나의 주제에 대해 써 내려간 아무튼 시리즈를 아무튼, 서재, 《아무튼, 술》에 이어 세 권째 읽어보니 드는 생각!! 작가들은 대단하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 책 한 권을 낼 수 있다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나 확실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누가 내게 왜 가을이 좋냐고 묻는다면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난 계절이라, 살짝 서늘한 그 바람이 기분 좋으니까, 가을 단풍과 낙엽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너무 환상적이니까... 그거 말고는 나머지는 흐리멍덩. 그냥이라는 말로 대체할 정도로 특별한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플링, 초당 옥수수, 수입 맥주, 샤인 머스캣, 전 애인, 혼술, 레몬 소주, 사누르, 여름휴가 등등... 책 속에 나오는 그녀의 여름에 대한 주제어들을 떠올리며 나의 여름날을 돌아보니, 꽤 많은 여름 추억들이 내게도 있었다. 대학 때 배낭여행으로 친구들과 처음 갔었고 엄마와 단 둘이 가기도 했던 발리, 어렸을 때 기억하는 노란 옥수수를 올해 제대로 된 제주 초당 옥수수를 먹고 새로운 맛인 듯 감탄했던 시간, 사계절 내내 김치 냉장고에 차갑게 자리하는 맥주이지만 여름날의 맥주, 그것도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맥주를 보면 떠오르는 첫 아이 임신 때의 추억, 대학교 때 대성리 엠티에서 데미소다 레몬에 소주를 섞어 마셨던 토할 것 같은 레몬 소주의 맛, 등등... 작가의 여름 주제어에 따라 내 추억도 떠올리니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여름의 추억이 내 안에 있음을,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여름의 맛을 나도 좋아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싫다고 생각했던 여름이 좋아졌고, 그런 여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그럼에도 나의 최애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마음까지...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이번 여름은 지나가도 내년엔 새로운 여름이 찾아오니까 괜찮겠지, 여름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내년엔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겠지 싶다가도, 지난 여름날은 다시 오는 시간이 아니기에, 올해의 여름과 내년의 여름은 절대 같은 시간이 될 수 없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여름 말고도 나를 지나가는 것들... 나이, 시절, 사람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5분 전의 시간도 다시 오는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덜컥 무서워지기도 하지만 오지 않을 것들에 집착하고 질척거리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지나가는 것들을 아련히 바라보고 순간순간의 의미와 내 감정이 소중해지는... 그렇다고 호들갑스럽게 어쩌냐고 동동거리기보다는 이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기대만 두는... 딱 그 정도의 마음이다. 나를 지나가고 스쳐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는, 어쩌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을 기다리는 딱 지금의 시기와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여름을 통해 김신회 작가는 말했다.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이라고... 나 역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단한 기대를 얹기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시간을 그때그때 감정에 맞게 즐기고 지나가는 시절과 사람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을 품어본다. 여름이 지나가는 중인 요즘...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던 여름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되어 좋다. 찌는 듯한 더위를 뿜어냈던 여름의 위용에 지쳤으면서도 그럼에도 매력적인 여름의 맛을 새삼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이러다 10월이 되어  가을이 무르익으면 최애 계절에 대한 찬사를 잔뜩 늘어놓겠지만 올해 바뀐 여름에 대한 애정도의 변화로 내년의 여름은 지나간 일 년 전의 이 여름을 추억하면서 좀 더 기꺼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는 김신회 작가의 그 말처럼... 안녕 2021년 나의 여름, 그 여름날의 나도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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