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선생님을 학교 선생님보다 많이 만나며 잠옷바람으로 수업하는 게 일상이 된 초등학생 딸아이와 화상회의에 대비해 상의만 동동 갖춰 입고 하의는 수면바지 차림으로 작은 서재방으로 재택 출근하는 나의 모습. 작년 이 맘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매일의 현실이 되고 나니, 요즘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선생님이 보내주신 딸아이 학교생활 영상 속에 멀찍이 다들 떨어져 앉아 마스크 쓰고, 이중으로 가림판을 치고 수업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코로나로 모두 교실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는 것을 이미 들어왔고, 뉴스로도 접하긴 했었지만 나의 어릴 적 학교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기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풍경 속에 모두 아무렇지 않게 평온한 표정으로 수업하던 딸아이 모습을 직접 보니 새삼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1년이 되도록 마스크 쓰지 않은 친구 얼굴도, 선생님 얼굴도 본 적 없이 반쪽짜리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밝게 수업하고 있는 모습이 왜 이리 짠하던지.. 친구들과 부대끼며 세상을 알아갈 나이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괜스레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사실 코로나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 비단 그것뿐일까. 이 엄청난 역병으로 누구도 쉽지 않은 2020년을 보냈고, 나 또한 불편하고, 답답하고, 한숨짓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먼저 스친다.
그런데 지난 주말,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딸아이의 2019년 그림일기장을 발견했다. 유독 나의 해외출장이 많았던 그 해, 딸아이는 그때 많은 엄마들이 직장상사들의 눈치를 무릅쓰고 육아휴직도 불사한다는 그 중요한 시기,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엄마가 출장을 가서 일주일이나 못 보게 되어 슬픈 마음을 담아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는 내용이었는데, 일기를 읽다 보니 가방에 꼬깃꼬깃 자기가 보고플 때 보라며 본인 사진과 함께 넣어준 딸아이의 그때 그 편지가 떠오르며, 잊고 있던 감사한 마음도 함께 떠올랐다. 아이 낳고 9년 동안 일하며 바쁘단 핑계로 눈으로만 입으로만 육아를 해왔었는데, 코로나로 나의 재택근무와 딸아이의 원격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며 그 어느 해보다 딸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간 못했던 엄마 노릇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씩 남편까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셋이서 맛있는 저녁을 함께 만들어 먹기도 하고, 눈이 많이 왔던 그제 밤에는 저녁을 먹고 함께 내려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늘 꽉꽉 막히는 퇴근길, 집에 돌아오면 거의 언제나 밤 8시를 훌쩍 넘겨 대화는커녕 씻고 잠들기 바빴던 예전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다시 출퇴근 합쳐 세 시간을 쓰게 되더라도 몹쓸 코로나가 얼른 끝나고, 모두가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기약 없이 계속되는 어려운 시절에도 이렇게 감사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꼭 기억하고 싶다.
말 다 힘들기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