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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an 08. 2021

안개에 갇힌 바다

혼자하는 여행


라 코루냐(A CORUNA)에 도착한 시간은 야심한 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도시였기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낯선 도시를 마주했다.  스페인 여행이라고 하면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를 떠올리기에 라 코루냐는 그저 작은 도시일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숙소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결코 작지 않았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 라 코루냐(A CORUNA)는 대서양의 라 코루냐만에 면해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 중 하나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만큼 정말 멋진 바다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라 코루냐에서 유명한 볼거리는 로마시대의 등대인 '헤라클레스의 탑'과 12세기에 건립된 산타마리아 교회가 있고, 순례길의 종착지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가 가까이에 있다. 


라 코루냐를 시작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를 거쳐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는 여행이었다. 뒤에 이어지는 도시들이 워낙 특별해서 라 코루냐에 대한 건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다. 밤늦게 호텔이 도착해 오랜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고 시차로 인해 몇 시간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몽롱한 정신을 깨울 겸 호텔을 나와 산책에 나선 길, 주변은 안개로 가득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코 끝에 닿는 감각이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길을 건너 산책로 방향으로 들어서니 안개에 갇혀있는 바다가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바다와 육지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은 그 길 위에는 오로지 나와 안개만이 존재했다. 그 고요한 순간 위로 파도 소리가 밀려 들어왔고 저 너머에 있는 바다를 안개 낀 눈으로 바라보며 한국에서부터 끌고 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마음속을 헤매고 있었다. 여행을 와서까지 고민을 해야 하고, 마음이 슬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툭툭 털어지지 않는 무거움이었다.



안개 너머에 있는 바다가 궁금했지만 안개에 갇혀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고민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숨겨질 것 같았기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바다 쪽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고 희미하게 해가 떠올랐다. 주위가 조금 밝아지자 안개들이 천천히 흩어지며 눈앞이 조금 선명해졌다. 바다와 바위가 눈 앞에 나타났고, 흩어진 안개 사이로 낚시를 하는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존재감도 없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과연 물고기를 낚을 수 있긴 한 걸까? 안갯속 그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을 낚는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어쩌면 그의 목적은 물고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홀로 서 있는 그 모습에 왠지 위로를 받았다. 참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여행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 감동을 주고 기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뜻밖의 시간을 선물한다. 라 코루냐가 꼭 그랬다. 그저 스쳐가는 도시일 뿐인 그곳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만났고, 그 안갯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내 마음속 갈등과 고민을 마주해야 했다. 서글펐던 마음은 안개를 만나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었고,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 자 순식간에 갈등과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물론, 고민이 당장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민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행이 주는 놀라운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의 많은 것들은 홀로 선 시간과 그렇게 마주하는 풍경으로 치유가 되곤 했다. 여전히 안개에 갇혀있지만 안개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더 이상 슬픔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안개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갯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낚시하는 남자
라 코루냐의 바다에 해가 나타났다


안개에 갇혀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아름다운 라 코루냐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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