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리프트)
길 위의 리프트
벨기에 브뤼셀 이셀 (Ixelles Lue wery),
창밖의 지붕들이 막 깨어난 듯 어슴푸레한 빛을 두르고 있다.
붉은 기와는 새 벽안갯 속에서 부드러워지는데 거리는 아직 정적이 머물러 있다.
그 위로 손톱만 한 달이 창백한 얼굴로 서쪽 하늘에 붙들린 듯 떠있다. 달은 그렇게 이제 막 떠오르는 해와 한동안 공존하고 있다.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이 순간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이 떠오른다.
지금 밝아오는 이 아침은 이 세상 최초의 아침이다. 따스한 흰빛 속으로 창백하게 스며드는 이 분홍빛은, 지금껏 단 한번도 서쪽의 집들을 향해서 비춘 적이 없었다. 집들의 유리창은 무수한 눈동자가 되어 점점 떠오르는 햇빛과 함께 퍼져가는 침묵을 지켜본다. 이런 시간은 지금껏 단 한번도 없었다. 이런 빛도 없었으며, 지금 이러한 내 존재도 아직 한번도 없었다. 내일 있게 될 것은 오늘과 다를 것이며, 오늘과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채워진 눈동자가 내일 내가 보는 것을 자신속에 담아낼 것이다.
도시의 높은 언덕들! 거대한 건축물을 붙잡아 더욱 거대하게 만드는 가파른 비탈길, 계단 모양으로 쌓여 뭉쳐 있는 갖가지 색의 건물들 그림자와 화염으로 이루어진 햇빛이 건물들을 모아 무늬를 짠다. 너희는 오늘이다. 너희는 나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너희를 보고 있기 때문에, 내일 너희는(내일의 내가?) 될 것이다. 두척의 배가 엇갈려 지나갈때 서로 알아치리지 못한 그리움을 뒤에 남겨두듯이, 뱃전에 기대선 나는 그렇게 너희를 사랑한다.
—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숙소를 나서자 브뤼셀의 오래된 주택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있다.
벽돌과 창틀의 나뭇결에 시간이 고여 있다.
골목을 따라 걸어갈 때 공기 중에 빵집 냄새와 커피 향이 섞여난다. 자전거가 바퀴 소리를 남기며 지나가고 개를 산책시키는 노인이 가벼운 목례를 한다.
동네를 벗어나 경사진 도로를 따라 십여분쯤 걸어내려 가자 도시의 결이 달라진다.
Ixelles Flagey,
붉은 벽돌과 흰 스투코 건물들이 엇갈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가게 간판과 말소리가 다채로워진다. 프랑스어, 아랍어, 아프리카 포르투갈어 같은 여러 언어들의 억양들이 뒤섞인다.
유연하거나 단단하거나 경쾌하다. 거리에, 공원에, 시장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민자들과 스친다.
시장의 진열대처럼 풍성하고 이채롭다.
오 아침이여, 삶의 아둔함에, 삶의 위대한 부드러움에 나를 눈뜨게 하는구나! 내 눈앞, 그리고 눈 아래에서 오래된 좁은 골목길이 점점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블라인드가 서서히 퍼져 나가는 햇빛을 받아 지저분한 갈색 정체를 드러냈다. 내 마음은 현실의 동화를 대한 듯이 편안해진다. 이제 마음은 자신을 확신할 것이다...... 영혼의 어둠을 밝히는 성냥처럼 첫 번째 전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내 첫번째 행인들의 요란한 발소리가 들릴 뿐이다, 구체적인 현실이 나에게 친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내가 이런 나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광장 건너편 작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를 보았다.
무심한 듯 그러나 모든 것을 꿰뚫는 시선, 브론즈로 빚어진 얼굴 형상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다.
포르투갈도 아닌 벨기에 더구나 브뤼셀 이셀에서 그를 만날 줄이야.
페소아는 브뤼셀을 방문한 적이 없지만 1950년대부터 Flagey 주변에 형성된 포르투갈 공동체는 1988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에 흉상을 세웠다.
받침대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나의 조국은 포르투갈어다.
- 페르난두 페소아
이 문장은 광장을 가득 메운 언어들의 파도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국적이 아니라 언어, 장소가 아니라 목소리. 그는 고향을 지도에서 찾지 않고, 문장 속에서 찾았다.
이셀의 포르투갈인들이 고향을 잊지 않는 방식이 페소아였다.
성 십자가 교회로 가는 길, 트램이 종소리를 울리며 지나간다.
창문 너머로 아이가 손을 흔들고, 카페 앞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의 대화가 뜨거운 김처럼 피어오른다. 성당 계단 위 입구에 한 명의 노숙자가 자리를 잡고 움츠린 채 자고 있다.
성당 아래 벤치에는 긴 머리와 수염을 한 다른 노숙자가 깊이 파인 눈을 힘없이 뜬 채 마른 바게트빵을 뜯어먹고 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삶이라는 황량한 현실에 홀로 남겨졌다. 한 척의 배는 항해를 위해 태어난 사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는 항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항구로 들어오기 위하여 태어났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다.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줄 항구가 어디에 있는 지 알지도 못한채. 그렇게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안고 아르고 전사들의 모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항해이지 삶은 아니다......
우리는 삶으로부터 어떤 아름다움도 얻어낼 수 없으므로, 최소한 우리의 무능력에서라도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좌절을 승리로, 긍정적인 것으로, 지주와 위엄과 우리 자신의 동의를 획득한 고귀한 것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삶이 우리에게 감옥 이외에는(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장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록 가진 것이 꿈의 그림자뿐일지라도, 그것으로 색색의 그림을 그리며, 고요히 서있는 담장의 외면에 우리의 망각을 새겨넣으면서.
-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Flagey 광장에 다다르자 플라제 빌딩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리창 위로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고, 올해의 공연 라인업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검색해 보니 1938년 완공된 스트림라인 모더니즘 양식의 Art Deco 건물로, 과거 벨기에 국영 라디오 방송국의 본사였으며, 현재는 음악 공연장, 영화관, 예술 스튜디오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Flagey는 다국적 문화 교차로이자, 브뤼셀의 가장 중요한 문화 허브 중 하나였다.
플라제이의 건물 여기저기 뜻을 알 수 없는 혼란한 그라피티에 뒤덮인 벽과 유리창 위로 저녁빛이 내려앉는다.
노천카페의 의자들은 언어의 차이를 허물 듯 서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노천카페와 공원에 삼삼오오 모인 어른들과 그 사이로 아이들이 공처럼 오갔다
나의 말없는 산책은 끊임없는 대화다.
우리, 인간과 건물, 돌과 플래카드, 그리고 하늘을 포함한 모두는 운명의 장대한 행렬 속에서 우정의 덩어리를 이룬채 언어로써 서로를 밀치며 나아간다.
-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벨기에 브뤼셀 이셀은 도시가 품은 작고 복잡한 세계 같다.
달빛과 햇살이 한 하늘에 함께 걸리는 순간처럼 서로 다른 문화와 시간이 이곳에서 겹치며 새로운 하루를 만든다.
그리고 브뤼셀의 이 저녁 속에서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여러 사람인 한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페소아처럼 하나의 문장을 흉내 내본다.
나의 고향은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이해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