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 위에서, 고흐미술관에서 관계를 보다

(길 위의 리프트)

by 뭉클



암스테르담은 물과 빛의 도시다.

황금빛 햇살이 오래된 물길 위로 부서지고, 그 그림자들이 좁고 깊은 운하를 따라 물결치며 도시 곳곳에 스며든다.

그 안에서 걷는 우리는 여행자이자 오래된 친구들이다.

말투 하나에 마음이 휘고, 침묵 하나에 그림자가 스민다. 여행 중에 문득문득 관계의 온도를 재게 된다.

고흐 미술관, 고흐 그림 에서,

고흐 미술관은 단지 그림을 모아둔 공간이 아니다.

해바라기의 강박적인 반복, 누군가의 낡은 신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불안한 하늘...

그의 붓질은 고요 속에 일렁이는 고통의 파문이다.

특히 고흐는 고갱의 빈 의자를 그렸다.

고갱이 아를을 떠나기 며칠 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의 의자 위에 촛불과 2권의 책이 있다.

고갱의 의자는 화려하다. 고갱은 고흐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고갱은 그런 고흐의 등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를 그렸을 것이다.

끝내 시선을 마주하지 않지만 그림 속에서 그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고흐 미술관의 같은 벽에 걸려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춘다.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들이 우리 안의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감정을 건드렸을지.

1888년,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자신의 작업실을 꾸며놓고 고갱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두 사람이서 협력하는 방식의 예술을 꿈꾼다.
색은 대화가 될 수 있고, 붓질은 이해의 표현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두 사람은 9주 동안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은 두 사람 모두의 예술을 변화시켰다.

고갱은 고흐의 격렬함을 이해하려 했고,

고흐는 고갱의 절제된 구조에서 새로운 길을 보았다.

그들은 평생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그 짧은 동행이 서로를 완성시켰다.

고흐의 일상적 삶은 실패했지만 탁월한 그림 안에는 깊은 감정을 남겼다.

우리는 그 감정 앞에 섰고, 서로의 내면을 아주 잠깐 아주 조심스럽게 마주 본다.

고흐는 외로웠지만 우리는 함께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예술 속에서 만난 거친 감정들은 결국 우리의 현실 속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고흐의 불안과 고갱의 절제가 엮였듯, 우리 또한 각자의 개성으로 얽히고설키며 함께 흘러가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제 또 다른 흐름 위에 서있다.


운하 위에서, 관계를 보다,

유람선이 운하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움직인다. 고요한 물소리 사이로 오래된 건물의 희미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촉촉한 물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도시의 물길 위에 떠 있는 느낌은 낯설다.

건물은 기울어졌다 다시 서고, 다리는 낮고 물은 좁아졌다 넓어진다.

우리는 웃고 있다.

하지만 곧 누군가의 농담에 마음이 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없이 창밖만 보게 된다.

러나 이 조용한 어긋남도 풍경의 일부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친구라고 감정이 늘 일치하는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불일치마저 수용할 수 있는 관계가 맞다.

이해한다, 이해된다, 이해하여야 한다.

는 흔들리면서 물살을 따라 앞으로 흘러간다.

우정도 그렇다.

어딘가 안정되진 않지만 방향은 잃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의 운하 위에서 우리도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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