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
아침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엄마가 있다.
양손에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오누이를 하나씩 붙들고, 등에는 유치원 가방과 자신의 짐까지 서너 개를 매달고 있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잤습니다.”
어깨와 손목과 표정에 그런 자막이 조용히 달려 있는 듯하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다리를 붙들고
세상에서 제일 평온한 얼굴로 하품을 한다.
육아의 무게가 어디에 실려 있는지, 누가 더 깨어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지난주 어느 아침, 우리는 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아이 엄마와 아이들은 1층에서 먼저 내린다.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시동을 건다.
출구로 나가려던 순간 시트콤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 전 1층에서 내렸던 그 엄마다.
두 아이 손을 꽉 잡고 지하주차장을 전력 질주하고 있다.
“어? 분명 아까 1층에서…?”
아무래도 층을 착각해 잘못 내렸던 모양이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육아를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에 길을 잘못 든다.
아이들은 하하 웃으며 그저 엄마 손에 이끌려 달린다. 엄마의 혼란조차 하나의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얼굴로.
그 웃픈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며칠 뒤 우리는 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함께 지하 1층 주차장에 내린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차 앞 유리 너머로 그 엄마가 다시 보인다.
이번엔 아파트 안쪽을 향해 달린다.
또다시 아이 손을 잡고 뛰고 있다.
뭔가를 두고 온 것이다.
차 키일지, 가방일지, 아니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
지 헷갈렸을지 모른다.
출근길 내내 웃다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육아 중에는 늘 다 이유가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정확히 떠올릴 여유가 거의 없을 뿐이다.
‘다시 뛰어야 한다’는 사실만 또렷하다.
그게 육아다.
정답은 늘 늦게 떠오르고, 문제는 종종걸음으로 해결된다.
그때 문득 허삼관 매혈기가 떠올랐다.
허삼관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기 피를 판다.
그 선택이 옳은지, 현명한지 그는 끝내 판단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숙고할 시간도, 다른 선택지를 검토할 여유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가족의 오늘은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피를 팔아야만 결혼할 수 있고, 피를 팔아야만 아들을 키울 수 있고, 피를 팔아야만 가정을 지킬 수 있다.”
매혈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허삼관의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대사다.
그리고 작가 위화는 허삼관을 이렇게 남긴다.
“허삼관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엄마들이 다시 보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지금 누군가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허삼관이 피를 내어주듯 엄마들은 시간과 여유를 내어준다.
방향 감각을, 질서를, 자기 삶의 리듬을 잠시 내려놓는다.
완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아이의 하루를 유지한다.
며칠 뒤 또 다른 장면을 보았다.
약속 장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유모차를 밀고 뛰어온 젊은 엄마가 급히 탑승했다.
버튼 하나가 잘못 눌렸고 곧 요란한 기계음이 울렸다.
“비상 호출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져 연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잘못 눌렀어요.”
유모차 안 아이만은 유독 평온했다.
이 상황이 특별할 것 없다는 듯, 이미 여러 번 겪어본 하루라는 얼굴로.
이건 실수가 아니라 지속의 방식이다.
육아란 길을 잃지 않는 일이 아니라 길을 잃어도 다시 움직이는 일이다.
정답을 알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층을 잘못 내리고,
그래서 주차장에서 다시 뛰고,
그래서 비상벨을 누른다.
이 모든 장면은 삶을 오늘로 붙잡아 두기 위한
즉각적인 판단이다.
나는 이제 아침마다 마주치는 엄마들의 뒷모습을
다르게 본다.
그들의 허둥거림은 서툼의 증거가 아니라
책임이 몸에 먼저 닿았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온 나는 그 무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머리로 설명되지 않지만 몸으로는 분명히 작동하던 시간들.
지금 힘들다면,
그건 정상이다.
이상한 것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을 자주 헷갈려도,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다면 그건 하나의 능력이다.
설명되지 않지만 작동하는 힘이다.
조용히 세계를 유지하는 힘이다.
매일이 힘들고 육아에 우왕좌왕한 이 시대 어머니들께,
그대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슈퍼 초능력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