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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07. 2024

화가 치밀었다

 화가 치밀었다. 

손은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심장 뛰는 소리가 옆사람에게 들릴까 조바심 났다.


회의 중이었다. 내가 발언을 하고 있는데 누가 말을 끊었다. 그때는 좋은 의견이 있을까 싶어 그런 줄 알았다. 들어보니 아니었다. 나를 이해 못 하겠다는 발언으로 시작해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서두는 상대의 발언을 들으며 느낀 반응이다.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다. 가슴은 뛰고 손에 땀이 흘렀다. 여기서 똑같이 상대를 비방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했다. 똑같이 맞붙어버렸다. 


내 감정을 쏟아내다 보니 그의 말이 더 맞는 것 같았다. 이제는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내가 말려버렸다. 이성을 잃은 채 맞붙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쯤은 뻔히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의 도발이란 원래 참을 수 없는 존재이구나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느낌이다. 예전에 당했던 적이 있었기에 최대한 담담하게 대하려 했다. 이성을 잃으면 다 이긴 게임도 질 수밖에 없으니까. 쏟아지는 감정선을 부여잡았다. 말을 참고 또 참았다. 그가 나를 해하려 한다거나 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 


그는 내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단지 내 주장을 반박했을 뿐인데 나는 왜 내 가족이나 내가 욕을 먹는 모습을 상상한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아니면 내 주장에 대한 애착이 강해 내 모습이나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의 입을 본다. 아직 반박 중이다. 자신의 주장의 합당함을 펴고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차분하고, 안정을 찾고 있었다. 내가 너무 차분하게 듣고 있었던 걸까? 그는 당황하는 눈치다.


사실 주장에 대한 반박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어느 부분은 인정하지만 이 부분은 이게 아닌가라고 제안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는데 어느 누가 기분이 나쁘겠는가. 그는 달랐다. 욱하는 무언가가 느껴졌고, 말투에서는 감정선이 한도를 넘어 나의 감정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듣고 차분해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나는 선택적으로 단어를 들었다. 듣고 보니 그의 의견에 허점이 보였다. 나는 처음과 끝 동일한 어조로 차근차근 반박했다. 대신 인정과 배려는 사치라 생각했다. 상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차가운 어투로 그저 팩트로만 말했다. 듣는 이가 무안할 정도로 빈틈을 파고들었다. 내가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어서 맞붙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선을 넘었다. 그가 쏟으면 쏟을수록 나는 마음속 깊은 심연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관찰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는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했던 말만 또 하고 있었다. 같은 말인데 목소리만 커져갔다. 그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단계까지 이렀던 것 같다. 그는 나에게 말려버린 것이다.


불과 며칠 전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가 욱했던 순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차분했던 순간이 오히려 격하게 느껴질 정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딱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내가 이겼다거나 통쾌함을 고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순간에 감정을 쏟는 사람과, 그 감정을 받아내고도 차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거다. 내가 차분했기에 그의 오류를 잡아낸 것이 아니다. 그가 흥분했기 때문에 약점을 보인 것이다.


오늘 새로운 감각을 얻고야 말았다. 참아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보상 같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더 차분하고 정중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내 본심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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