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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 May 14. 2024

『수면의 고양이』 - 신묘(神猫)한 이야기

독립출판물 읽기

제목: 수면의 고양이

저자: 이근영

출판사: BOOKS 오와우

발행일: 2024-03-05


*전문이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자네, 잠을 통 못 자는 얼굴을 하고 있군.

지구상에서 가장 충실하게 잠을 자는 동물이 뭔지 아나?

바로 우리 고양이들일세.

그만큼 우리는 꿈에도 일가견이 있지.

좋은 꿈을 꾸고 싶다면 고양이를 가까이해야 하는 법.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우리야 뭐 원래 그러니까….

아니 어쨌든 좋은 책을 읽는 것처럼

양질의 꿈을 꾸고 싶다면

매일 고양이와 함께 잠이 드는 것이 제일이야.

꿈에는 고양이를 이길 수 없다네.

그게 꿈의 도서관의 모토지.

- 검은 고양이 -  



감상


독립출판물은 주류 출판물과 다르게 원고 작성부터 책의 기획, 판매와 마케팅까지 출판사가 아닌 작가 혼자의 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가 없으니 출판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산 유통 비용도 오롯이 저자의 책임이다. 『수면의 고양이』는 올해 3월 독립출판물로 발행된 짧은 소설로, 마찬가지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후원 활동을 펼치며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결과 목표 모금액인 1백만 원의 세 배에 달하는 327만 원을 달성하며 무사히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현재는 독립출판물 서점인 인디펍과 알라딘 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도 쉽게 『수면의 고양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독립출판물은 태생적으로 작가 자신의 창의력과 자원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그만큼 주류 출판물에선 볼 수 없는 매력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독립출판물의 매력이다. 독립출판물의 저자가 대부분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지 않는 아마추어 작가라는 점에서 우리는 기실 잠재적인 저자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삶이 천차만별인 만큼 수많고 다양한 글이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이근영 작가는 『수면의 고양이』를 쓰기 한참 전인 2012년, 출판사와 함께 반려견 포토 에세이 『우리, 헤어질 줄 몰랐지』를 써낸 적 있다. 여기엔 현직 사진작가인 이근영 작가가 직접 촬영한 반려견들의 사진과 그에 대한 글이 실렸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서 발행된 『수면의 고양이』는 그의 반려묘 ‘낭월’이 모델이 되었다. 그에게는 일상을 함께 했던 동물 가족들이 삶이자 글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수면의 고양이』는 책 대신 고양이를 빌려주는 꿈의 도서관과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의 표지와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초여름 노을빛같이 몽환적이고 어슴푸레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저자는 **고양이와 꿈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물음에서 꿈의 도서관이란 환상 세계를 떠올렸다고 한다. 꿈의 도서관은 묘한 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룻밤 동안 잠자리에 함께 할 고양이를 빌려주는 곳이다. 고양이를 받은 사람은 머리 맡에 고양이를 두고 잠이 들면 된다. 그리고 아주 작은 엔진 소리가 들리면 고양이와 공유하는 꿈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고르릉 고르릉, 고르릉 고르릉… 


『수면의 고양이』는 연작 소설로서 여러 에피소드가 꿈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꿈의 도서관 마우의 관장이 된 검은 콧수염 사내의 이야기, 아빠의 초록 모자를 잃어버려서 잠에 들지 못하는 홍이의 이야기, 오드아이 고양이 ‘초록이’ 이야기,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인 검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이들은 소중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집을 떠나 꿈의 도서관 마우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고양이는 하루 열여덟 시간 이상을 자는 동물입니다. 꿈에는 고양이를 이길 수가 없지요. 그 방면으로 명성이 높은 나무늘보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다지 추천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늦잠을 자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 콧수염 사내  



고양이가 수면의 전문가라는 설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실제로 고양이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간과 달리 천연덕스럽게 하루의 대부분을 꿈속에서 보내며, 이런 고양이의 행동 양식은 예로부터 신비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예컨대 『수면의 고양이』에서 검은 콧수염 사내가 말했듯이,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으로 숭배받았다. 이집트 벽화나 조각상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고양이의 모습이 다수 남아있다. 그 중 바스트라고 불리는 신성한 고양이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이었다. 고양이가 한꺼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모습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최초의 기록물부터 시작해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 ‘검은 고양이’가 받은 취급을 제외하자면 고양이는 예술 세계의 영원한 뮤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릴케는 “인생에 고양이를 더하면 그 합은 무한대가 된다.”고 말할 정도로 고양이를 아꼈다. 릴케는 열두 살의 발튀스가 고양이를 잃고 슬픔에 젖어 그린 그림을 책으로 출간해 주기도 했다. 릴케는 책의 서문에서 고양이만의 매력을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 “고양이를 발견하는 건 아예 놀라운 일입니다! 그 고양이는 마치 무슨 장난감처럼 당신의 삶에 들어오지는 않으니까요. 고양이는, 지금 당신의 세계에 와 있다 하더라도, 조금은 밖에 머물러 있어요.” 어니스트 허밍웨이는 수많은 고양이와 삶을 함께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릴케와 비슷하게 고양이에게서 길들지 않는 세계를 발견한다. “고양이는 절대적으로 감정에 정직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람들은 감정을 숨길 수 있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기교 없고 간결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법은 이런 면에서 고양이와 닮아 있다.


장 그르니에의 대표적인 에세이 『섬』에서는 자신의 고양이인 몰루에 대한 경외심을 엿볼 수 있다. 그르니에는 그의 고양이 몰루가 햇볕 밑에서 배를 대지에 맞대고 낮잠을 자는 모습에서 위로와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 그르니에는 고양이의 신묘한 수면 활동을 고찰한다. 인간에게 수면은 일상과 단절된 것이다. 잠은 오직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수단에 불과하다. 반면 고양이에게 수면은 가장 중요한 일과이며 따라서 수면은 단절이 아니라 삶과의 통합을 뜻한다. 우리가 고양이의 잠에서 평화를 찾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측면에서 『수면의 고양이』에서 드러나는 환상 세계와 고양이의 융합은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수면의 고양이』는 인간의 삶과 분리되어 있는 수면을 고양이의 꿈결 속에서 다시 결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결합을 통해 소설이 나아가는 곳은 삶이라는 유일한 재산의 회복이다. 우리를 잠 못들게 하는 불안이 자기 자신과 멀어진다는 인식에서 태어나듯이, 통합은 그 자체로 우리를 평화 속에 눈 감게 한다. 요컨대 소설의 결말부에 이뤄지는 ‘초록’과 ‘홍이’의 운명적인 만남은 단 하나 뿐인 삶의 복구를 상징하는 것이다.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그들을 살찌게 하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 장 그르니에  


예술가들은 옛 이집트에서 그랬듯이 고양이에게서 세계의 독자성을 발견한다. 고양이는 저만의 세계에 머무르면서 수많은 예술가가 영감과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창작 과정에 사정없이 휩쓸리고 있을 때 그들을 현실로 돌아오게끔 한다. 그리하여 고양이는 그들의 반려동물일 뿐만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는 공존자가 된다. 나는 『수면의 고양이』의 저자에게도 고양이 ‘낭월’이 그런 존재였을지 떠올려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설의 마지막은 ‘낭월’의 부고 소식이 닫고 있다. 낭월은 스무 살이 되는 작년 영원한 수면에 들었다. 옛 이집트에선 고양이가 죽으면 인간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엄숙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나는 『수면의 고양이』의 집필 과정이 그 자체로 낭월에게 장엄한 의식이 되었기를 바란다. 마치 이야기 속 초록이와 홍이가 꿈속에서 서로의 잃어버린 색깔이 되어 주었던 것처럼!  




편집 디테일


1. 만듦새



표지의 주인공은 소설의 결말부에 드러나는 삼색 고양이 ‘초록’이다. 크레파스로 그린듯한 삽화와, 옅은 분홍색이 배경색으로 사용되어 마치 해 질 녘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지 삽화 구성에도 동일한 그림 작가가 참가하였다. 계절감이 느껴지는 그림들. 자그맣게 그려진 고양이가 귀엽다. 고양이의 눈빛이 표지를 뚫고 나오는 듯하다. 나는 고양이의 매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구매했다.


내지에서는 대화문과 직접 서술을 구분하지 않는 텍스트 편집 방식이 눈에 띈다. 사건의 전개나 세계관의 설정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일관되게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편집 방식은 소설에 사용된 몽환적인 소재와 결합하여 독자를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하고 있다.


『수면의 고양이』 본문 中



2. 마케팅 / 홍보 


『수면의 고양이』는 텀블벅의 펀딩 시스템을 통해 발행된 독립출판물이다. 펀딩 플랫폼의 활용은 기존의 출판 과정에선 볼 수 없는 것이다. 펀딩 시스템은 주류 밖의 다양하고 많은 창작물이 더 기민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모금을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독자를 창작 프로세스에 참가시키도록 하는 커뮤니티의 형성에 일조하기도 한다. 창작자는 프로젝트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 소식을 올릴 수 있고, 후원자는 후기나 댓글을 통해 저자에게 직접 의견이나 소감 등을 남길 수 있다. 이 커뮤니티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독자는 다음 텍스트를 쓸 저자로 변화하기도 한다.

『수면의 고양이』 텀블벅 페이지


꿈의 도서관에서 나눠준 듯한 꿈 공유 설명서 콘셉트의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소설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살리려 제작한 것이 느껴진다. 또 연작 소설인 만큼 에피소드마다 한 장의 카드뉴스를 제작했는데, 연작 소설의 구성을 살린 방식이 마음에 든다.


『수면의 고양이』 카드뉴스


삼색 고양이의 책갈피 굿즈도 책의 장점을 성공적으로 살리고 있다. 책 표지를 본뜬 유광 코팅 책갈피다. 저자는 텀블벅에서 ‘좋은 꿈을 기원하며 부적처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좀 더 일찍 발견했다면 분명히 후원했을 것 같다.


『수면의 고양이』 책갈피



3. 총평 


글이 후루룩 읽히도록 쉽게 쓰 전 연령대가 함께 읽기에 적합해 보인다. 또 고양이라는 인기 소재를 사용하면서 새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흔하게 느껴지는 필굿 장르(힐링물)의 상투성은 빠져 있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에 휴식 같은 독서를 하고 싶다면 권할 만한 책인 듯하다. 특히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감동은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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