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2017년, 사계절 출판사가 창립 35주년을 맞아 선보인 새로운 문학 브랜드인 욜로욜로 시리즈에 속해 있다. 사계절 출판사는 욜로욜로 시리즈에 관해 ‘‘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때론 즐겁게 때론 눈물겹게 이 힘겨운 시대를 헤쳐 가는 모든 독자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어 줄 문학 브랜드다.’라고 소개한다.
’‘욜로욜로’는 한 번뿐인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열망하는 독자들의 삶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시 ‘문학’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끝이 없을 듯한 좌절과 무력감이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위로, 혹독한 현실에서 뛰쳐나올 용기, 씁쓸한 삶에도 아직은 존재하는 사랑과 유머…. 욜로욜로에는 웃음이든 눈물이든, 오직 문학만이 가진 치유와 공감의 힘이 독자들의 삶을 진정 욜로욜로하게 하리라는 굳은 믿음이 담겨 있다. 그것이 1982년 창립하여 35년간 ‘시대정신’과 ‘성장의 의미’를 생각하는 출판을 모토로 독자들과 함께해 온 사계절출판사가 바로 지금, 성인을 위한 문학 브랜드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 열 권의 책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된 당시의 청소년 독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이기도 하다.’ - 출판사 제공 신간 안내서
사계절 출판사 욜로욜로 시리즈 소개 영상
박지리 작가의 소설은 '욜로욜로' 시리즈의 상당 부분을 이룬다. 본격적으로 박지리를 세상에 알린 장편 소설 『맨홀』부터, 판타지 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1•2•3』, 그리고 유고작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까지 총 다섯 권이 욜로욜로 시리즈에 선정되어 발간되었다. 현재까지 발간된 욜로욜로 시리즈는 총 열아홉 권으로, 박지리 작가의 저서는 그 중 사분의 일을 차지한다. 비유하자면 시리즈의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지리 작가는 일생 사계절 출판사와 함께 문학 작품을 쓰는 데 골몰했다. 박지리는 생전 『합체』,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1•2•3』, 『세븐틴 세븐틴』,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하였고, 마지막으로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와 『번외』의 원고를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두 책은 박지리 작가 사후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박지리 작가는 청소년작가로서 청소년문학을 쓰는 데 몰두했지만, 동시에 청소년인물을 통해 인간 존재에 천착하면서 청소년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오세란 평론가는 박지리 작품론에 대해 ‘청소년 인물을 빌려 ‘세상’과 정면대결을 시도하였으며 여러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인물을 궁지에 몰아넣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파헤치려고 하였다’고 말한다.* 욜로욜로 시리즈에 실린 박지리 작가의 작품들은 특히 다른 작품보다 어둡고 비극적인 현실을 내비치는 데 주력한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박지리의 작품 세계는 요람을 벗어나 세계의 어두운 면과 직시해야만 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당시의 청소년 독자’에게 꼭 맞는 작품이며, 그리하여 욜로욜로 시리즈의 선봉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감히 우주를 어지럽히랴” 박지리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어린이와문학』 2020년 겨울호, 오세란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대중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어 독서에 진입장벽을 만든다. 무거운 분위기와 심상치 않은 제목도 진입장벽을 세우는 데 한 몫 한다. 그러나 그만큼 본질적이고 깊은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소위 ‘박지리스러운’ 작품을 원한다면 그 요구에 걸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 연극을 위한 연극을 연극적인 것으로 둘러싸인 연극 속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어린 시절 M이 읊으면서 가장 의문과 불안을 느꼈던 기도문 구절
독특한 제목은 이야기를 전부 함축한다.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MAN이 적어도 돌발행동을 하기 전에 1차 면접과 2차 면접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이미 우리에게 일러두고 있는 셈이다. M의 면접 일대기는 관심도 없었던 과자 회사에 덜컥 합격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M은 합격의 한순간을 위해 마흔일곱 번의 면접을 치렀다. 그리고 이제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통과했으니, M에게는 신입 사원들이 으레 통과해야 하는 연수 과정만이 남았다. M도 단순히 여느 신입 사원들이나 치뤄야 하는 연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동그라미, 세모, 그리고 가위표로 꼼꼼히 기록된 한 평가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과연 조교들은 정체를 가장한 심사위원이었던 것일까? 연수가 이루어지는 한 달간 매일매일 사원들을 관찰하고 평가 파일에 점수를 매기고 있던 것일까? 연수는 핑계고 3차 면접이 진짜 목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인생의 실패자, 낙오자, 한심한 것들이 걸러지고 진짜 합격자만이 신입 사원으로 남을 것이다. M은 마흔일곱 번의 면접 때문이라도, 부모님께 빌린 월세 보증금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 혼란스러운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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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독자 해설에 쓰였듯 삶이 ‘연극’에 불과하다는, 그렇게 희소하지 않은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박지리 작가의 유고작인 이 소설은 이야기의 구조와 편집 방식에서 유사도서와 차별점을 둔다. 이야기는 MAN이 세 차례의 면접을 지나는 것처럼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다.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치르는 M - 연수원에서 보낸 한 달 - 마흔아홉 번째 면접을 치르는 M. 이 중 1부와 3부는 희곡 형식으로 작성되었고, 2부만이 장편 소설의 형식으로 쓰였다. 희곡이야말로 삶이 연극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무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부는 M의 이야기가 연극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관객과 무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는 1부의 첫머리에서 난데없이 연극의 관객으로 참여하게 된다.
| (관객을 위한 의자나 배우를 위한 무대 없이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드는 원형 극장 안에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다. 어두웠던 한 곳에 빛이 들어오자 웅성웅성대던 목소리들이 사그라진다.) 6쪽
관객과 M은 빛의 밝기로만 경계가 구별되는 원형 극장 안에 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연극’과 ‘연극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맞세우며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극적인 것’이란 M이 지하철에서 맞닥뜨린 정신 나간 남자의 ‘연출된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일상을 낯설게 하는 부조리함이다. M은 어딘가 연출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 곁을 일부러 피해 간다. 그러나 관객은 M이 이미 이야기 바깥의 연극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한 부조리를 낳는다.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현실인가? 이렇듯 연극과 연극적인 것은 희곡 텍스트 속에서 서로를 직시하면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거북한 모순을 탄생시킨다.
1부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연극적인 장면들.
| 높고 많은 빌딩들. (솟아오르는 느낌과 짓누르는 느낌이 양면적으로 드러나는 구도) / 지하철역과 비슷하게 사람들로 붐비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대기업 빌딩들이 많이 위치한 이 역에 내리는 순간,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삶의 목적, 미래에 대한 확실성 같은 것을 촘촘한 체로 한 번 걸러 낸 느낌이다. 이곳이 처음인 방문객은 마천루에 압도당한 듯 빌딩으로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17쪽
| 비슷한 양의 머리 숱을 가진 세 개의 머리통 뒤로 시내 전경이 넓게 펼쳐졌다. / 수많은 빌딩이 기둥처럼 이 도시를 떠받들고 있다. 실제로는 비교 불능일 정도로 작지만 원근법으로 인해 가장 크게 도드라진 이 머리숱 적은 세 명의 면접관은 이 많은 빌딩과 그 안에 뚫어 놓은 하나하나의 유리창을 책임지고 있는 절대자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흠, 흠, 소리를 내 가며 이 도시의 빌딩 적재적소에 사람을 집어넣을 계획을 세우는 중이며, 그 작업을 위해 서류상 인간과 그 서류를 증명하기 위해 나타난 인간을 번갈아 대조하며 어느 쪽 인간이 더 나은지를 살피고 있었다. 29쪽
연극적인 것은 M의 마흔여덟 번째 면접 장면에서 절정에 치닫는다. 독자 해설은 면접을 ‘연극’으로 치환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맞는 말이다. 면접장을 무대로, 면접관을 배우라고 생각한다면 면접은 충분히 연극적인 것이며, 연극 그 자체이기도 하다. 면접자들이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본대로 배우들과 합을 맞춰야 할 것이다. M의 마흔여덟 번째 면접은 겉으로 보기에 제법 현실에 있음직 하다. 그러나 곧 면접관의 입에서 뜬금없이 흘러나온 대사가 이 이야기가 연극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평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에 균열을 낸다.
| 면접관3: 지금 재미있는 질문 하나가 생각났는데, 처지를 바꿔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두 사람이 면접을 보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와 여러분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사람은 살인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도둑입니다. 여러분이 회사 면접관이라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35쪽
이에 M은 면접 학원에서 배웠던 ‘터닝 포인트’를 떠올리며 다른 지원자들의 반대 편으로 무작정 돌파하는 전략을 택한다. M의 주장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기운다. 물론 M의 주장은 비약으로 가득하고, M의 진짜 생각도 아니다. 그 떄문에 M은 터닝 포인트를 잡으려다 되레 자신의 논리에 갇히게 된다.
| M: 전…… 살인자를 뽑겠습니다. … M: (깊은 숨을 한 번 내쉴 수 있는 시간만큼 머뭇거린 뒤) 회사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이 수익 창출이라는 점에는 여기 계신 모든 분이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답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살인자보다는 도둑이 회사에 더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38쪽
| M: …아니요, 인적 자원도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인적 자원이 모여서 하는 일의 목적이 결국엔 수익 창출입니다. 엄밀히 말해…… 인력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것 아닙니까? 매년 신입사원을 뽑아서 새로운 인력을 통해 더욱 창의적인 수익 창출 모델을 창출해 내는 것이…… 그러니까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수익 창출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41쪽
하지만 진짜 터닝 포인트는 직후에 찾아온다.
| 면접관3: 그런데 말입니다, 가정이 아니라 귀하가 실제로 사장이라도, 아니, 가정이 아니라고 하는 것조차 지금으로서는 가정이 될 수밖에 없지만, 아무튼 귀하가 실제 기업의 사장이라도 살인자를 고용할 생각입니까? …
| M: …… 아닙니다. …
| 면접관3: 그런데 왜 그렇게 대답했습니까? …
| M: 왜냐하면…… 그건…….
| 우유부단한 혀를 가혹하게 채찍질한 결과,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은 대답이 알몸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 M: 이게 면접이기 때문입니다.
| M은 자기가 진심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전략을 짠 것인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43쪽
그리고 M은 면접에 합격한다. 면접이 일종의 연극이라면, M의 언설은 ‘이게 연극이기 때문입니다.’와 같고,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깨는 것이다. M은 지금 몇 개의 연극 속에 있는가? 먼저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드는 원형 극장 안에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는’ 이야기 바깥의 무대,어딘가 연출된 느낌을 내뿜는 도시, 그리고 M의 마흔여덟 번째 면접. 또한 세일즈의 본질이 남을 속이는 것이라면, M은 애당초 연극을 위한 연극을 연극적인 것으로 둘러싸인 연극 속에서 행하고 있는 셈이다. M에게 면접은 이제 수단이 아니라 수단으로 정당화되는 현실 자체다. 어느 하나 연극적인 것이 없는, 연극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피상의 세계는 우리에게 이 벌거벗은 현실을 고발한다. 연극을 위해 촘촘하게 꾸며진 무대에는 인간 하나 설 곳이 없다. 마찬가지로 훌륭함 또한 설 자리가 없다.
| 만약 너무 훌륭해서 떨어진 거라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야. 23쪽
지금 상황이 연극이라는 사실에 순응한 이상, M은 면접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게 면접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순간부터 M에게 삶은 면접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여기서 면접은 결국 목적을 좀먹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면접은 그 자체로 삶의 원리가 된다. M은 더 이상 이름이 아니고 기호에 불과하게 된다. 그는 면접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면접 바깥에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 대목은 M이 도달하게 된 극단적인 원리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면접에 기꺼이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사형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이다.
| 봉사 활동을 다녀온 이튿날이어서인지, 아침 체조에 참가하는 인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니, 구보다는 합숙 종료를 단 이틀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인가. 인간이란 대개 이런 존재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것들은 출소일 하루 전에 사형시켜 버려야 한다.’ 214쪽
이러한 연극론은 장편소설 형식으로 쓰인 2부에서 비로소 자신의 극단에서 자멸한다. 2부는 2차 면접에서 합격한 M이 한 달간 연수원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그리며 1, 3부와 다르게 M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따라서 M은 2부를 끌고 가는 화자로서 주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내 자신의 주체성을 죽이기에 이른다. 면접장에서 이루어졌던 2차 면접과 다르게, ‘일상생활’이 무대가 되어 면접자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3차 면접에 통과하려면 고장난 전자레인지처럼 결국 자신의 주체성까지 게워 내고 토막 내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 불구자가 된 기분. 생각해 봐야 한다. 일단, 내가 지금 어디 서 있는 거지… 배 속에 있던 뭔가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다. 나는 얼른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나 물컹한 뭔가가 방어막을 뚫고 튀어나온다. 땅에 떨어진 고깃덩어리. 나는 아무도 죽인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게 내 몸 안에. 나는 작은 잡목이 우거진 곳으로 뛰어가 몸을 숨기고 앉아 남은 사체도 다 토해 낸다. 눈물이 난다.
| 이상하다. 이곳의 모든 게 이상하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해가 아니다.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 배신. / 그래,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아니, 배신을 당했다… 아니, 모두 아니다. 저들이 날 배신한 게 아니다… 나. 내가 배신한 거다. 내가 이곳의 모든 것을 배신했다… 무엇보다도 마흔일곱 번의 면접을 본 나 자신을 배신했다. 96쪽
M은 그렇게 1부에서 잠시나마 예고했던 대로 진정한 살인자가 된다.
다시 희곡의 형태로 돌아온 3부는 M이 면접에서 도망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살인이라든지 3차 면접이라든지 하는 것은 모두 M의 환상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설의 제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3차 면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M의 살인조차 거짓이라면, M의 돌발 행동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생각해야 할까? 3차 면접은 애초에 M이 2차 면접을 끝내면서 동시에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M은 ‘이것이 면접’이라고 답한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3차 면접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돌발 행동은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면접에서 도망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리라. 살인,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동은 3차 면접에 돌입하면서 필연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일종의 어지럼증을 동반한다. 그것은 이야기의 말미에서 M이 쏟아내는 절규와 같은 종류에 속한다. 3부에서 M이 경찰에게 괴로움을 토해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자기가 행했던 살인에 대해 아무런 형벌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M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M에게는 형벌이다. M은 면접의 결과에 따라 합격하거나 폐기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해’는 결코 면접의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M을 이해한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M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M: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거……. 나를 이해하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 228쪽
그러나 M은 마침내 연극 무대와 자신을 보고 있던 관객을 직시한다. M은 자신의 삶이 연극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연극에서 벗어나 갈 곳이 없다는 현실에 비탄한다. 그러고는 관객을 향해 손가락을 돌린다. 우리가 느꼈던 어지럼증의 정체는 여기서 밝혀진다. M이 관객을 가리켜 보이며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린 순간 연극적인 것은 모두 우리의 몫이 된다. 경계가 없는 극장에선 우리는 수많은 M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배반하는 현실에 참을 수 없는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다.
| M: 저기,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 관객 (침묵) …
| M 내가 눈물 흘리고 있을 때 비웃었죠? 내가 문손잡이를 몰래 돌릴 때마다 머저리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죠? 한심한 놈이라고. 침묵했어요… 어느 순간 나에 대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했겠죠? 맞아요, 사실이에요. 당신은 하느님처럼, 내가 모르는 것들까지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하느님처럼, 알려 줘요.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 250쪽
| (어두웠던 나머지 공간에도 빛이 들어오자 관객을 위한 의자나 배우를 위한 무대 없이 오직 빛의 밝기로만 경계를 만들었던 원형 극장은 다시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 웅성웅성대는 목소리들만 되살아난다.) 253쪽
3. 섬뜩한 연출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그 주제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문체로 보나 무척 섬뜩한 소설이다. 그것은 마흔여덟 번, 어쩌면 그 이상의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가 비단 허구만은 아닌 까닭일 것이며, 박지리 작가가 적확한 문장을 통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연출한 까닭일 것이다. 다음은 그러한 문장을 정리한 것이다.
|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전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까진 신경 쓸 것 없다. 제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순정 부품 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작은 부품의 생산성, 대수롭지 않은 운명이다. 그 대수롭지 않은 운명을 위해 마흔여덟 번의 면접을 봤다.마흔일곱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서른 번이 넘었을 땐 눈물이 났지만 마흔 번이 넘었을 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눈을 낮춰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라고 말하는 부모님께 원룸 보증금을 부탁하는 전화를 걸 때 그 다짐이 깨지긴 했지만. 81쪽
|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과자의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감으랄 때 순순히 눈을 감는 행위 그 자체라는 걸. 우리가 눈을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수들이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120쪽
| 너무 걱정 마요. 나도 내가 뭘 하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벽돌을 이렇게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는 것. 이게 바로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야. 벽돌이 있어야 할 곳에 벽돌을 올려놓는 것, 그것 이상으로 옳은 일이 있을까. 그것 이상으로 알아야 할 일이 있을까. 138쪽
| 세일즈맨의 아침. 얼른 헌 구두를 꺼내 신고 밖으로 나가자. 낡아 빠진 구두를 신고 전 세계로 세일즈를 다니면서 불쌍한 아이들에게 설탕이 잔뜩 발라진 과자를 팔자.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자. 병들게 하자. 없애 버리자. 이제는 인간을 끝내자. 145쪽
| 탈진이라. 그러나 의도치 않게 회색 셔츠는 나에게 멋진 영감을 선사했다. 탈진. 멋진 병이다. 내 설계도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짓고 있던 건축물 옆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5조 조장. 회색 셔츠의 말대로 탈진하고 싶다. 탈진해 쓰러져 버리고 싶다. 196쪽
만듦새에 대해서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그 제목에 걸맞게 독특한 표지를 지니고 있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의 표지는 욜로욜로 시리즈의 디자인을 담당한 PaTI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다음은 출판사 사계절의 설명이다.
’▶ PaTI, 가장 욜로욜로한 아티스트들의 과감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안상수 디자이너가 설립하고, 한국 디자이너들이 독창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배움을 주고받는 디자인 학교 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욜로욜로’는 파티에서 스승 혹은 배우미로 활동 중인 젊은 아티스트 18인이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파티출판디자인연구소장인 북 디자이너 오진경이 총괄 아트디렉션을 맡아 사계절출판사와 함께한 첫 번째 산학협동 프로젝트다. 상업 디자인에 처음 도전하는 디자이너, 자기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 준 적이 없는 일러스트레이터….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할 날을 기다리며 남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은 스스로가 욜로욜로 주요 독자층인 청년들로, 동시대 독자들의 취향과 감수성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가장 욜로욜로한 아티스트다. 각 권의 개성을 담은 일러스트와 열 권을 하나로 잇는 독특한 패턴, 제목을 은근히 숨긴 표지, 펼치면 한 장의 포스터가 되는 커버, 한 손에 들어오는 가볍고 편안한 판형 등, 시각적인 아름다움부터 독자들을 고려한 세심함까지 한층 감각적이고 수준 높은 북 디자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 오진경과 아티스트 18명이 함께한 여섯 달 동안의 도전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표지의 그림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MAN이 2부의 마지막에 죽인 새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새의 생김새는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토끼-오리 그림을 닮기도 했다. 예상컨대 새는 표지 너머 우리를 응시하는 부조리의 상징일 것이다. M의 시선에서 새는 날개를 지닌 생명력 넘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투명한 창에 갇힌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추어 진다. 한편 2부에서 M은 울창한 숲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연수원에서 새 소리가 들리지않자 ‘이상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결국 투명한 유리창에 갇힌 존재가 곧 M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M은 그러지 않을 수 있었지만 면접이라는 덫에 보란듯이 뛰어든다. 그리고 종국에는 새, 혹은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죽이게 되면서 투명한 유리창만을 남긴다. 따라서 새는 투명한 유리창에 갇힌 존재, 부조리한 시스템에 희생된 M의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새는 마찬가지로 표지 너머로 독자를 응시하며 독자도 M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뚜렷이 상기시켜주고 있다.
| 그렇지만 이렇게 울창한 숲속에 곤충이 울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뭐야, 하느님의 손이 숲에 새를 풀어놓는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그런데 하느님*도 그런 실수를 하시나. 50쪽
*소설 속에서 ‘하느님’, ‘절대자’는 심사위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 왜 다 큰 어른들 여럿이 창틀 뒤에 숨어 낄낄대며 새를 구경하는 걸까. 왜 새가 투명한 창에 몸을 부딪힐 때마다 오오, 하고 연민과 환호가 섞인 탄성을 내지르는 걸까. 좁은 베란다에 갇혀서 허둥지둥하는 작은 생물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방향을 틀기만 하면 뒤쪽 베란다로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작은 머리가 우습나. 새의 전부인 날개가 꼼짝없이 무용지물이 된 모습이. / 맞아. 그런 건 꽤 웃기지. / 가엾지만 웃긴 건 사실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사랑 받는 거고. 51쪽
어쨌든 새 그림이 그려진 겉표지를 벗겨서 펼쳐보면 하나의 포스터가 된다. 표지의 안 쪽에는 빽빽하게 정렬되어있는 좌석 사진이 배경을 차지하고 있고,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새 머리 여럿이 표지 하단에 그려져 있다. 속표지에는 욜로욜로 시리즈를 상징하는 패턴이 책등을 감싸고 있고, 겉표지와 마찬가지로 좌석 사진을 배경으로 열 맞춰 뛰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그려져 있다. 무대와 관객의 구분을 두지 않는 이야기의 구성을 생각해본다면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표지에서부터 우리를 이야기 속 인물로 초대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좌석에 앉은 관객이자 배우다. 행렬을 이루는 군인들은 이야기 속 연수원의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군대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내부에 생명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