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라던 감기도 못 걸리는 한심한 놈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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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서관알바를 매일 하다 보니
찬 겨울 날인데도
감기 걸릴 일이 없다.
친구는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라는데
감기는커녕
입술을 얼마나 다물고 있었는지
속에서 훈훈하게 덥혀진 연기가
콧구멍을 타고 모락모락
외톨이는 겨우내 따뜻하게 지낸다.
누군가 사랑은
감기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거라고 그러던데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는 거라고 그러던데
집도서관알바 사이엔
바이러스도 낄 데가 없는가 보다.
감기도 못 걸리는
한심한 놈 될까 봐
오늘은 집도서관…
까지만 갔다가
발걸음을 휙 돌린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견뎌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단연 피하기 어려운 것이 시험이고 면접이다. 최근에는 7세 고시라고 불리는 유명 학원의 입학 시험이 화제다. 소식이 뉴스를 타자마자 학부모를 향한 강경한 비판이 일었지만, 나는 이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일곱 살부터 생존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세간에 극성 부모라고 불리게 될지언정 내 자식의 교육만은 목숨을 걸더라도 사수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사회가 '기형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시험 성적으로 인생이 나뉜다고 배웠다. 그래서 한국인의 인생은 시험과 학원을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로 10대의 대부분을 학원과 학교에서 보냈다. 20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취직을 위해서 집과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기계처럼 반복해서 다니는 실정이다. 이 시를 썼을 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독감이 유행하는 추운 겨울이었다. 평일이면 눈을 뜨자마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고, 주말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도서관 앞 편의점에 갔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막차 시간이 될 때까지 짬을 내서 도서관에 있기도 했다. 나는 참 열심이었지만, 그만큼 외롭고 힘들었다. 그런 때에 친구에게 문자를 하나 받았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감기 조심해라~!"
라고 왔다. 내 건강을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위안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문자 내용을 곱씹으니 금세 내 처지가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잠에서 깨면 운동을 하고, 도서관에 갔다가 금방 집에 오는 것이 전부인데 감기에 걸릴 리가 없었다. 유행이라는 독감도 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순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유행에도 못 끼는구나, 하고. 그래서 그 날은 평소보다 일찍 집에 가서 잠에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금방이라도 한겨울의 어둠에 질식할 것 같았다.
지금도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의식적으로 비일상적인 것을 찾게 된다. 날 감기처럼 아프게 하는 것이라도 좋다.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니까. 그런데 나처럼 집도서관알바만 계속 하다 보면 감기도 못 걸린다. 어떤 기회조차 없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무엇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지 판가름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이 시를 썼다. 일탈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스스로 계속해서 최면을 건다. '감기 걸려도 죽지는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