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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마마 Feb 24. 2023

미니멀리스트 살림러의 꿈

과거를 사랑하는 딸과 미래가 불안한 남편 사이

아이가 세 돌쯤 됐을 때 일이다.


"엄마 미미집 어디 있어?"

아...미미집....

버렸는데.....


"미미집 없어..."

"아니야 찾아봐. 찾아보면 있을 거야."

아이는 이내 울먹울먹 하더니 대성통곡을 시작한다. 


여기서 미미집이란, 선물 받은 인형(미미)이 담겨 있던 플라스틱함.


별로 갖고 놀지도 않고, 수납함에도 담기지 않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플라스틱을 조용히 창고에 넣었었다.

몇 달이 지나도 찾지 않자, 당연스레 버렸는데..

아뿔싸.. 버린 지 몇 개월은 더 된 그걸 찾다니.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이 어릴 때 한 보따리 선물 받은 인형들 중에서도

잘 안 갖고 놀아서 누구 줘버리고, 기부하고 그런 인형들을

어느 날 갑자기 찾는다.


책은 또 어때?

아주아주 아기 때 읽었던 책이 문득 떠올랐는지, "엄마 그 책 어딨 지?" 하고 물어보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 망....

그거 없는데..라고 말하는 순간 난 역적죄인...

(그렇게 야금야금 정리해도 아직도 인형은 10개가 넘고, 책은 천권을 넘어간다.

당연히 아이가 좋아하는 건 남긴다.)


세 돌도 안 된 애가 기억력이 왜 이렇게 좋니, 아직 기억할 것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니.. 


최근에 창고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나의 헤드랜턴.

남편과 결혼 전에 야간 등산 때 사용하던 것이다.

그 당시 제법 비싼 브랜드로 사서 몇 번 사용 후에, 결혼 후에는 한 번도 못썼다.

앞으로도 야간 산행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당근마켓에 올렸더니, 바로 구매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걸 판다는 얘길 들은 남편은

"그걸 왜 팔아. 나 그거 쓸 거야. 보일러실 수리할 때도 쓸 수 있고, 또 야간 산행 할 수도 있잖아."


흠,

보일러실에 그대가 수리할 일이 뭐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일러실을 수리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 것이며,

아니 손전등 있잖아. 여차하면 핸드폰 불빛으로 보면 되지...


"여보 진짜 필요하면 그때 돼서 또 사면되지 않을까? 내가 야간산행을 할 일이 언제 또 있겠어?'

"필요할 때 다시 사면 얼마나 아까운데~"

(쓸데없는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안 아깝습니까?)


하긴... 

남편은 자기 방 서랍 구석구석에 온갖 박스를 모아놓는 사람이다.

옛날엔 온갖 포장완충재(일명 뾱뾱이)도 모아놨었는데, 내가 야금야금 갖다 버렸다.


시댁에 쌓아놓은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놨다던 컴퓨터 잡지는 결국 정리하면서도 엄청 투덜거렸었다.

이거 팔면 돈 될 거란다... 이건 지금 구할 수도 없는 거라며..

(그래 그럼 팔아봐 한번..)

남편 전공책들은 내가 만난 뒤로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고,

매번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 처박혀있지만 이건 못 버린단다. 언젠간 볼 일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버리려고 모아둔 내 책은 자기 방에 갖다 놨다.

자기가 볼거래..

(아니 지금껏 안 봐놓고.... 지금 와서??)


창고도 두 층의 선반을 비워놨더니, 거기다가 커다란 포장완충재를 갖다 놨다.

저렇게 큰 포장완충재는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할말하않이다. 


보통 물건을 못 비워내는 이유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지나간 것에 대해서 애정을 주는 딸과 미래에 혹시 쓸지도 몰라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려는 남편과 살려니, 나의 미니멀리스트 살림러의 꿈이 참 요원하기만 하다.


내가 유일하게 맘대로 할 수 있는 미니멀한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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