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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셋아빠 Mar 08. 2022

아이 혼자 지하철 타기에 도전하다

동생은 옵션. 아빠는 미행 중

"아빠, 나 혼자 지하철 타고 동물원 다녀오고 싶어"

"응? 혼자?"


예전에 서울대공원에 갔을 때, 지하철역이 보이길래 지하철로도 여기에 올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다. 아이는 그때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지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녀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제 10살이기도 하고, 핸드폰도 있으니까 혼자서도 괜찮은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가,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지하철 타는 법도 모르고, 혼자서는 좀 위험하니까, 아빠가 뒤에서 몰래 따라가는 걸로 하고 한번 해볼까? 그 대신 도움이 필요할 땐 전화로만 도와주고"


다음날이 토요일이라서 내일 같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환승을 여러 번 해야 되는 동물원은 힘들고,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백화점을 목적지로 정해주었다. 지하철을 타는 방법과 찾아가야 하는 역 이름, 우리가 살고 있는 역 이름 등 필요한 이야기들을 열심히 해주었지만, 잘 귀담아 들었는지 어쨌는지 그냥 도전을 앞둔 설렌 모습뿐이었다.


도전의 날이 밝았다. 평소 같으면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 입고 이런 걸 하나하나 잔소리해야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알아서 준비하고 준비가 다 되면 알아서 출발하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은 웬일로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나도 후다닥 겉옷을 걸치고 미행하듯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지하철 역으로 잘 찾아갔다. 차가 많은 곳에서는 형이 동생을 챙겨주는 기특한 모습도 보여줬다. 나는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따라갔고, 둘째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모르는 사람인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둘째는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기습적으로 뒤를 돌아보곤 했다.


지하철에 도착해서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사실 우리 동네 역은 워낙 조금 해서 안내판을 읽을 필요도 없긴 했다.


이미 카드를 하나씩 쥐어준 상태라 그냥 바로 타면 되는데, 아이들은 승차권 자동 발매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전날 그렇게 설명을 해줬는데 콧등으로 들었는지, 그 앞에서 지하철 타는 곳을 찾고 있는 듯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아니, 바로 고개만 돌리면 지하철 타는 곳이 있는데, 왜 보질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지하철 타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다시 뒤로 빠졌다.

 

첫째는 책임감을 느낀 건지 전광판이나 표지판을 열심히 살펴보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았다.


우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진짜로 아이 둘만 지하철을 탄 줄 알고 걱정해 주시는 분도 계셔서 따로 해명(?)을 해드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서점에서 책도 사고, 카페에 들려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나도 커피 한잔 마시며 기력을 보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냥 셋이 같이 움직였다. 둘째는 힘들었는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게 형이 원한 것이었고, 둘째는 그냥 멋모르고 따라다닌 것뿐이긴 했다.


미션을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아이의 위풍당당한 모습.


이날 하루 많이 힘들긴 했지만, 요즘 맨날 집에만 있었는데, 오랜만에 바깥 활동을 해서 좋았다. 그리고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낀 것 같아 나름 뿌듯하고 약간의 벅찬 감정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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