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버스가 섰다.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 무슨 일이지, 하며 상황을 살피는데 버스 기사님께서 눈 때문에 마을 안으로 진입이 어렵다며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리둥절한 나와 달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사는 곳은 캐나다의 위니펙이라는 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쯤 되는 이곳에서 총 아홉 번의 겨울을 보냈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눈은 매년 낯설기만 하다. 어느 정도의 추위인지 설명해 보자면 현관문을 나서며 숨을 들이마셨을 때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 그 공기가 기도를 지나 폐로 퍼져나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 날이 풀려 영하 15도만 되어도 공기가 몰캉몰캉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해두겠다. 이런 추위에 더해 어제오늘은 눈까지 쏟아져 내렸다. 눈이 너무도 많이 쌓인 탓에 버스가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정부에서 동원한 큰 트럭과 각종 장비가 도로에 쌓인 눈을 퍼 나른다. 덕분에 버스라도 탈 수 있어 출퇴근은 가능하다. 하지만 골목 깊숙이 까지는 대형 장비가 들어올 수 없다. 결국 동네 사람들 스스로 치워야만 한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민자들이 사는 우리 동네는 항상 눈이 쌓여 있다. 온종일 육체노동을 한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눈을 치울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 삶에 쌓인 고난을 헤쳐 나가기도 버거운 사람들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발이 푹푹 잠겼다. 천천히 걷다가는 동상에 걸릴 수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내 딴에는 빠르게 걷는다고 걸었건만 집에 도착하니 발이 전부 젖어 있었다. 양말을 벗고 뜨거운 물로 몸을 녹였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전날 너무 피곤한 탓이었는지 늦잠을 잤다. 허둥지둥 정류장으로 달려가 버스를 잡아탔다. 곧이어 창문 밖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순간, 버스를 잘못 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인지 넓은 앞마당과 큰 차고를 가진 집들이 눈에 띄었다. 눈이 녹아 사방팔방이 질퍽한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보송보송한 길이 정갈해 보였다. 길가에 봉긋한 동산 모양으로 쌓아둔 눈도 드문드문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자가용이 있어 버스 탈 일도 없을 텐데 정류장으로 가는 길마저 말끔했다. ‘와, 세금을 많이 낸다고 특수 장비라도 보내서 눈을 치워주나 보지? 너무한 거 아니야?’ 하지만 나의 투덜거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워주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눈을 치운 건 정부에서 보낸 값비싼 기계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었다. 웃으면서 장난하듯 눈을 치우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으리으리한 집보다 그들의 여유와 인심이 부러웠다. 언제쯤이면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나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단한 하루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철퍼덕 드러누워 눈을 붙이려는데 창문 너머에서 삽으로 바닥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사는 낡은 아파트의 관리인 아저씨가 눈을 치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다. 아저씨가 왜 혼자서 힘들게 눈을 쓸고 계시는지. 아파트 현관과 분리수거장 사이, 그 짧은 거리의 눈을 치운다고 사람을 따로 고용하자니 관리 회사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서걱서걱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하려 해보아도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눈을 치우는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주섬주섬 점퍼를 입고 나가 아저씨에게 물었다. 삽 하나 더 있느냐고.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으니 들어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차 물었다. 추워 죽겠으니까 어디 있는지 얼른 말해 달라고.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지하 세탁실에 있다고. 삽을 가지고 나와 아저씨와 말없이 눈을 퍼 날랐다. 둘이서 힘을 합치니 길이 금세 깔끔해졌다. 훤해진 아파트 주위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오늘 밤만큼은 내가 사는 이곳도 부자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