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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화상 Apr 01. 2021

웹툰리뷰_「정순애 식당」, 마음의 포만감을 채우는 웹툰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https://youtu.be/SUOdxknAWBk


정순애 식당마음의 포만감을 채우는 웹툰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2021년 4월 1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일까. 유학에서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인간의 증거로 삼는다. 인간은 외부 자극에 대한 내부의 감정 때문에 욕망을 느끼고 행동에 옮긴다. 즉, 감정과 욕망이 담긴 행동을 해야만 인간이다. 예컨대, ‘인간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본다면 → 아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측은지심이 들고 → 구해야 한다는 욕망이 생기며 → 아이를 구하려 움직인다’는 원리이다.      


따라서 심장이 뛰고 있더라도, 외부에 대해 어떠한 욕망이나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기본적으로 욕망과 감정을 느껴야만 살아가는 동기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실패할 때는 인생의 쓴맛을 그리고 성공할 때는 모든 쓴맛을 압도하는 단맛을 맛보게 한다. 결국, 모든 인간은 그 달콤한 행복을 잊지 못하므로, 죽는 날까지 허기를 느끼고 끊임없이 갈구한다. 행복 추구의 원초적인 동기는 바로 욕망과 감정인 셈이다.     

욕망이 거세된 인간정순     


지난 3월 30일 완결한 네이버 웹툰 「정순애 식당」은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충격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맛조차 느낄 수 없게 된 김정순을 주인공으로 한다. 아르몽 작가는 깊은 절망에 빠진 김정순이 정순애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점차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욕망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얼마나 불행한지 그리고 행복을 누리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 없으며 사소한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위로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불우하게 자란 주인공 김정순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주변인으로서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도 소중한 인연이 찾아왔고, 그녀는 그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간신히 얻은 행복도 떠나보낸 그는 끝없는 좌절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애초에 행복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면, 그래서 가지지 않았다면 이런 불행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는 무엇과도 관계하지 않겠다고. 나는 평생 괜찮아지면 안 되는 죄인이라고.      


자신은 기본적인 가족관계조차 결함이 있는 불쌍한 사람이고, 그런 자신을 드러내면 나의 불행과 약점을 보이게 될 테니 아무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선택한 방법은 주변과 선을 그어 밀어내고, 아무와도 관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 모두에게서 도망쳤고, 그 후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우연히 식당에 이르기 전까지, 그는 욕망이 거세되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배고파질 텐데도 먹는 이유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것인데 굳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이며, 삶의 의의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는 예기치 못한 죽음에도 인간은 편안하게 영면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직 살아있는 한 그 어떤 실패와 좌절도 결국 통과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식사도 인생과 같다. 단순히 열량을 보충한다는 결과에 집착하는 것은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포만감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는 과정이다. 비록 서투른 솜씨에도 정성을 다한 요리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이유도, 김정순의 미각을 찾게 한 정순애 식당의 비결도 모두 ‘담뿍 담은 사랑’에 있었다. 식사라는 것은 몸의 열량보다도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 때문에 어차피 배고파질 테지만 삼시 세끼를 충실히 먹어야 하고, 누군가와 만났을 때 “식사했어?”, “다음에 밥 한 끼 하자”고 인사하는 것이며, 초면의 어색함을 식사를 통해 해소하기도 한다. 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식사가 하루하루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며, 이는 김정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잊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망각 덕분에 괴로운 기억을 딛고 일어나, 이윽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연인과의 이별처럼 정말 사무치는 기억은 망각의 힘을 빌어도 영원히 잊을 수는 없다. 다만 무뎌져 가고 덮어져 가며, 이별이란 종착점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따라서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는 잊으려고 무던히 애쓰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무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로울지 모른다.     


진정한 망각이란 없다는 사실이 김정순에게는 비극이었을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그가 맛을 잠깐 잃어버렸듯이, 행복 또한 영영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순애 식당을 찾아간 것도, 그곳에서 맛을 되찾고 신사랑이라는 사랑스러운 연인과 정 많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모두 우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우연한 만남이 행복을 체념한 그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눠줬다.     


처음에는 되살아난 행복이 낯설었지만, 맛과 식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김정순은 사그라든 욕망이 다시 피어나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가 나락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라는 궁극의 조미료와 약간의 기다림도 주효했지만, 가장 핵심은 더는 좌절하지 않고 행복해지려는 욕망이었다. 아무리 손닿을 거리에 행복이 있더라도, 일단은 손을 뻗는 것이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콩나물 같은 인간정순     


순하고 친숙함을 주는 그의 모습은 마치 주변에 흔한 콩나물과 같다. 비록 시들시들한 콩나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독자는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끼곤 한다. 나아가, 평범하지만 갑갑한 속을 풀 때는 이만한 것이 없는 콩나물처럼, 김정순 또한 신사랑을 만나 우리에게 극한의 행복을 선사한다.      

자그마한 콩이 발아하여 무럭무럭 줄기를 뻗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랑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면 콩은 이전에는 없던 아스파라긴산을 생성해내고, 콩나물이라는 귀중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 하늘로 날아가는 새와 같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로운 새처럼 마음껏 행복을 누리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일러준다.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행복을 갈구해야 하며, “아무거나 주세요” 같은 어정쩡한 자세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나아가, 혼자보다는 소중한 사람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만… 온기를 나눠 받고 싶을 뿐이야." - 9화
"미각이 돌아오고 있고 상태가 호전되어 간다.
즉, 수연이를 잊어가고 있다는 건가?" - 28화
"그곳에 가는 게 네 온기를 떠올리게 해줘서…였지만
지금은 그게 너를 잊게 만드니까." - 30화
'그 간식들을 어떤 기분으로 사 들고 온 건지…
이 일렁이는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 알아버렸다.
난… 이 사람이 신경 쓰이고… 생각나고… 궁금했어….
그리고 이젠 안쓰러워서 어쩌질 못하겠는… 이 마음이.'

"이제 여기도 집이에요." - 45화     
"누나… 안아줘?"

"응 안아줄까?"

"아니 지후가 안아줄게…."

"응… 고마워." - 60화     
"당신 눈엔 누굴 데리고 와도 마음에 안 차겠지만, 당신 맘에 애틋한 사람이면 좋겠네.
애틋한 감정은 아무한테나 들지 않거든~" - 외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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