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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 May 21. 2021

독일에 와서 난 참 많이 변했다.

길치의 변모

 5월이  좋다. 뜨거운 여름이 오기  준비라도 하듯 강렬한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 마치 겨울로 돌아가는  서늘하다 못해 추운 날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5월에는 근로자의 , 예수 승천일, 성령 강림절  여러 공휴일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길게는 이틀까지 지겨운 수업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업을 하지 않는 날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히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동안의 여행기를 모아놓은 사진첩을 열어보는 편인데 현재 떠나지 못하는 것의 아쉬움이 사그라든다. 사진 동영상을 보면 당시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혼자 떠났던 여행 그중에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면서 보았던 언젠가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흔적들, 스산함이 느껴졌기에 어쩐지 모를 소름 돋았던 기억.

혹은  피아니스트가 공원에서 기다란 손가락으로 치는 선율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맞춰 움직이는  같았던 기억.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 마치 그곳은 세상과 동떨어져있는 판타지 세계 속이라도 되는  옆사람이 자연스럽게 마법을    같았던 기억. 바다 옆에 길게 뻗은 야자수 사이를 걸으면서 느꼈던 이국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느낀 기억. 어느  노인의 기타 소리에 맞춰 여러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것을 보았을  느꼈던 자유로움.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여행을 같이 떠났기에 이러한 기억들을 공유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리워졌다.  


문득 혼자 여행을 떠나고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들 전에는 어렵게 느껴지곤 했었다.  심각한 길치였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혼자 훌쩍 다녀온다는 국내 여행도 쉽사리 가지 못했다. 지도에만 몸을 의지해서 어디를 찾아가고 지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면 헤맬 시간까지 계산해서 나오는  일상이었고 지도에 거의 다다랐는데 건물을  찾아서 친구들이 마중 나와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크고 복잡한 코엑스와 같은 쇼핑센터에만 가면 이러한 증상을 더욱 심해져서 내가 나온 곳이 어디였는지도 헷갈리는 방향치까지 더해지곤 했었다.  상태가 이러하니 친구와 동행할  지도는 항상 친구 몫이었고  묵묵히 항상 친구를 따랐을 뿐이었다. 친구도 위치를 헷갈려할 때면 예의상 지도를 보면서 같이 고민하곤 했었다.


하지만 독일행을 결정하면서 이런 류의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  잘되겠지.  찾겠지' 하고 생각했다. 외국어로 길을 보고 다른 교통 시스템을 이해하고 길을 찾아가는 것은 여태껏 다른 이의 몫이었기 때문에 당시 난  고민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고등학교 친구가 마중 나온다고 하니 어려울  없이 도착해서도 친구만  따라가면 됐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짐을   문득 생각했다. 만약 친구가 마중 나오지 않았더라면 공항에서부터 2번의 기차 환승을 하고 집까지 무사히   있었을까. 아마 독일에 도착한 다음날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일부러라도 지도를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래야 남에게 의지를 하지 않고 이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지도를  본다. 보다 보니까 건물의 지형을 눈에 익어서 지도를 계속 붙들고 있지 않아도 가고자 하는 장소를 찾아갈  있게 되었다. 언니와 스페인 여행을 떠났을  지도는 나의 몫이었지만   없이 여행할  있었다. 혼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고, 혼자 여행하다 보니까 길러진 소중한 능력이었다.


그러면서 되돌아보았다. 흔히 못한다고 한계 짓고 남들에게 맡겨버렸던 일들. 길찾기 뿐 아니라 요리도 해당될 수 있고 알바도 글쓰기도 해당될 수 있다. 남들보다 체득 속도가 느려 서툴렀던 것들은 지금 와서 보니까 못하는 게 아니었고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익숙지 않은 것들은 익숙해지도록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면 자연히 터득되었다. 다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점이 있겠지만.


독일에 와서 혼자 삶을 꾸리면서 알게  청소, 빨래, 요리들에 대한 팁들, 익숙 않은 독일의 시스템을 알아보려고  번이나 검색을 하면서 습득한 검색 실력, 여러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고자 하니 늘었던 사진 찍기 실력, 말이  통했던  사람들의 표정으로 소통했던 과거의 습관으로 만들어진 눈치,   생활비의 지출을 철저하게 기록하면서 다져진 검소한 소비습관들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생각들도 많이 성숙해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아빠가 이해가 되게 되었고 부모님의 울타리가 그리워졌다. 가족들이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항상 '늦되다'라는 말을 들었던 내가 이제야 삶에 대해 알아가는 건지 아니면 유학을 통해 한층 성장한 건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어쩔 때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삶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서야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에 대해 감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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