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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 Apr 28. 2021

어쩌다 오게 된 유학

왜 난 지금 여기 있는 걸까.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했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오게 된 케이스인 것 같다. 난 원래 아카데믹한 사람이 다기보다는 몸 쓰는 일을 선호하고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전혀 즐기지 않았었다. 고삼 때도 수면 시간이 밤 열 시를 넘기지 않아서 '너는 뭐가 될래'라는 말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공부로 대학을 갈 계획이 아니긴 했지만. 차라리 난 진득하게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하는 서비스 직종이 더 잘 맞았다. 휴학했었을 때 잠깐 했던 에버랜드 알바는 단순히 일이 재밌기 때문에 서울에서 용인까지 매일 통근했으니 말이다. 단순히 돈만 생각했더라면 정말 비효율적인 알바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을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더니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해외에서 가족들 없이 혼자 살고 있다. 부모님도 아마 이건 전혀 상상 못 하셨을 것이다. 유학은 인생에서 아마 한 번쯤은 해보면 나쁘지 않을 경험이라길래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한국어로도 배울 수 있는 과목을 독일어로 배우고 있다.  이렇게 엑스트라로 시간과 돈을 들여 유학 중이지만 딱히 길이 정해진 건 없다. 이 인턴하고 저 인턴도 하고 세후 몇천 되는 회사에 들어갈 거라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고 졸업하기 위해 공부한다.


사실 처음에는 유학 생각보다는 워홀 비자를 가지고 한 일 년 지내면서 외국 생활을 즐겨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국했었다. 엄마한테도 "일 년 이따 봐!"라는 말을 남긴 채 출국하였다. 당시 나는 유럽의 꿈에 젖어있었다. 한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지냈었기에 공항에 딱 도착하자마자 나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 가득에 말도 안 통하는 나라가 신기했었다.


어학원 수업을 시작하면서 친구들도 생기고 점점 이 환경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모님의 감시 아래 밤 외출이랑 가지 못했던 클럽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가족이 없어 외롭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그때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이 휴가만 생기면 한국에 들어갔다 오는 게 이해도 안 되었고 차라리 주변 유럽 국을 여행하지는 왜 한국까지 멀리 가고 싶어 할까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첫 일 년에 동안 느꼈던 자유로움, 속박의 굴레를 벗어난 듯 행복했던 기억들은 독일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삶은 어학원 친구랑 나누던 독일어 레벨로 따라잡기에 터무니없었다. 전에 느꼈던 새로운 언어를 쓰는데 즐거움, 외국인 친구들과 나눴던 다양한 문화들 이런 것보다는 진짜 독일 생활, 문화에 적응을 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읊어지는 독일어, 수준 높은 텍스트를 읽어야 하거나, 10장짜리의 소논문의 작성은 당시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마치 게임에서 첫 단계를 통과했으니 바로 보스 몬을 잡으라는 거와 다름이 없었다. 어학원 때와 다르게 놀러 갈 시간 또한 없을뿐더러 사소한 모든 것들 예를 들어 강의를 듣거나 친구랑 잡담을 나누는 게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점점 한국에 가고 싶었고 한국 예능을 보면서 알아듣지 못한 서러움을 잠깐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첫 학기는 누구보다 많이 독일 문화에 젖어들었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때이기도 하다. 주변 독일인 친구들 중에 '나 혼자만 다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나도 그들 중에 하나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당연히 지금은 포기한 상태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난 그들과 똑같아질 필요 없이 난 '나'로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발 동동 구르면서 살았을까.


한국과 다른 언어, 문화를 가진 내가 짧은 시간 경험한 독일은 어떤 면으로 딱 맞는 부분도 있었고 아닌 부분도 있다. 평생을 이 한 나라에서 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이리저리 부딪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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