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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Jun 16. 2022

지긋지긋한 생일 징크스

생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에겐 지독하게 따라붙는 생일 징크스가 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기억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생일날마다 좋지 않은 일들이 늘 생겼고, 남들은 행복해하는 생일날 마냥 웃을 수 없는 내 처지가 불쌍할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인데, 생일이니까, 행복한 날이었으면 좋겠으니까, 그래서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라고 계속해서 나를 위로했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평소에도 속상하고 눈물 터지고 화가 날 일들을 생일 전날이나 생일 당일에 너무나도 많이 겪어왔다. 오롯이 스스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보다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개명을 하고 첫 생일이다. 오늘.

사주 같은 걸 딱히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이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도 괜찮다는 이름으로 바꾼 뒤 꽤나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들을 보고 옆사람을 출근시키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꽤나 괜찮았다. 저녁 식사로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면서 바쁘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11시쯤,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재작년 9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도 잘 끝나고 항암도 잘하고 계셨는데 1년이 좀 지나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해서 건강하던 체격도 작아지셨고 머리도 하얗게 변하고 많이 빠지셨다. 식사를 잘하지 못하시고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셨다. 황달이 다시 나타나고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을 다시 다니시다가 최근 입원을 하셨는데 연명치료 이야기나 자식들을 많이 보라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3-6개월.

물론 이 숫자는 변동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짧고 짧은 기간을 통보받았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1인실로 옮겨서 가족들 면회할 것을 권하는 병원. 암환자라 심폐소생술도 어렵다는 병원.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 하시니 당장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아 계실 때 모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할 거고 내년 5월쯤으로 예상했던 결혼식도 앞당겨야 한다.


마치 운수 좋은 날처럼, 평소보다 많이 온 생일 축하 연락도 유난히 잘 풀려나가던 일도 저 숫자 하나에 다 무너져 내렸다. 지금도 머리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당장 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해 줄 수단을 찾다가 바쁘단 이유로 6개월간 글 한자 남기지 않은 이 공간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라는 인사들은,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시간 보내라는 인사들은 마치 영화나 소설 속 클리셰처럼 그렇게 남게 되었다. 가족들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 또한 울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머릿속을 가다듬으며 적어도 오늘 남은 8시간 정도라도 또 다른 태풍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평소에 받아도 어려운 이 난관을, 생일이라는 날에 겪게 되니 그냥 내년부터 내 생일은 없어도 괜찮겠다 싶어졌다. 내 생일에 이런 나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그냥 365일 말고 364일로 살았으면 좋겠다.


부디 1년 중 남은 날들은 내게 괜찮은 날이 되기를.


그리고 그래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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