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월 Oct 30. 2023

편의점 나비

 나는 편의점 고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편의점에서 사는 건 아니고 근처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바닥 삼고 하늘을 천장 삼아 살고 있다. 편의점 대장으로 보이는 인간이 비가 올 때는 젖지 않도록 나무 냄새가 나는 ‘집’도 만들어줬지만 나는 하늘이 보이는 게 더 좋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인간들이 사는 건물이 많지는 않지만, 이 편의점에는 ‘차’라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10개 정도는 멈춰있을 수 있게 했고, 인간들이 앉아서 쉬는 공간도 잔뜩 만들어서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올 때쯤이면 인간들로 가득 차는 편의점이다.


 나는 고양이 사이에서도 꽤 잘생긴 편으로 유명했는데 윤기가 흐르는 황금색 털에 곧은 수염, 그리고 긴 꼬리는 고양이뿐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반응이 좋은 편이다. 비록 몇 해 전 갑자기 나타난 인간 무리를 만난 이후로 귀가 조금 짧아졌지만 그래도 나는 잘생겼다.


 낮에는 어두운 연기를 뿜는 근처 건물에서 가끔 인간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낮은 나에게 휴식 시간과도 같다. 볕 좋은 자리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잠에서 깨어나면 가끔 편의점 앞을 지나치는 인간들과 차를 관찰한다. 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인간과 비슷한 차들이 지나간다. 어쩌다 가끔 낯선 차와 낯선 인간이 오는 낮을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을 경계한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다. 다만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기분 나쁜 투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불이 채 꺼지지 않은 하얀 막대를 내 근처로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민첩성은 그 역한 냄새가 나는 하얀 막대를 피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노을이 시작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든데(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더 알아듣기 힘들게 노래하듯 말하고 아주 가끔은 편의점에 들어가고 나오다가 휘청거리는 인간도 많지만 그래도 그 인간 중 일부는 맛이 좋은 생선 캔을 1~2개씩 나에게 주기도 한다. 보통 생선 향이 나는 긴 막대기 같은 간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생선 캔을 먹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인간들이 여러 번 말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편의점 대장이 나를 위한 음식들을 편의점 안에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그들은 ‘장사수완”이 좋다고 덧붙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대장이 오는 날에도 생선 캔을 먹을 수 있다 보니 내 귀는 늘 편의점을 향해 있다.


 편의점에 모이는 인간들은 다양하다. 연기가 펄펄 나는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어린 인간도 있고 초록색 병에서 우유 같은 걸 따라먹는 인간도 있고(한 번은 그 인간이 나에게 그걸 내밀었는데 냄새를 맡고 도망갔다.) 여럿이 몰려와서 나를 보느라 혼자 동떨어지는 인간도 있다. 대부분 인간은 자기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치우고 가지만, 생각보다 자주 어지럽힌 상태로 떠나버리는 인간들도 있다. 내가 편의점에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편의점을 약간은 집처럼 생각하고 있다 보니 그런 인간들을 보면 ‘아우우우’하고 소리치게 된다. 그러면 대장의 부하가 나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를 치운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수고했어’ (인간의 귀엔 ‘삐이’라고 들리는 듯하지만)라는 말을 하며 그 인간의 다리에 얼굴을 가져다 비비면 씩- 웃고는 내 등을 쓰다듬다가 이내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대장이랑 부하는 나를 ‘나비야’라고 부르고 다른 인간들은 ‘노랑아’라던가 ‘냐옹아’라던가 ‘치즈’라던가 여러 이름으로 날 부른다. 나도 내 이름을 모르지만 나는 그냥 ‘나’다.


 다양한 인간들이 모이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지만 반복되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살금살금 다가가 인간이 음식을 먹는 곳 밑에 자리를 잡고 귀를 쫑긋 세운다.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높은 건물들이 잔뜩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도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그 고양이는 작은 새끼 고양이인 듯한데 인간들에게 잘 다가오지 않고 음식을 줘도 도망간다고 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인간들을 경계한 적이 있다.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나무가 휑해지고 하얀 게 온 세상을 덮는 걸 5번 정도 보고 나니 (그게 ‘눈’이라는 건 편의점에 온 후로 알게 됐다) 생각보다 친절한 인간들이 많았고, 나쁜 인간과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 아기 고양이가 걱정이 됐다. 내가 오지랖이 넓은 고양이는 아니지만 종종 흉포한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 걸 본 기억이 떠올라서 여러 번 이 아기의 이야기를 들을 이후로 밤잠을 이루는 게 힘들었다. 인간들의 말에 의하면 아기는 ‘턱시도’라는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인간을 잘 따르지 않는데 옷을 입고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다음 날,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흐렸다. 내 걸음은 굉장히 빠른 편이라 아기가 있다는 곳에 단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까맣고 하얀 아기를 보기는 했는데 옷 같은 건 입고 있지 않았다. 물어보러 다가가니 털과 꼬리를 세우고 발톱을 꺼냈다. 처음 보는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를 알고 있냐’고 물었다. 계속해서 발톱을 넣지 않던 아기는 ‘누구냐’는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그래봤자 아기라 그저 귀여웠다. ‘인간들이 턱시도 입은 고양이를 걱정하던데 나도 걱정이 돼서’라고 말하자 그제야 털을 조금씩 가라앉히며 ‘턱시도가 뭔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나한테 턱시도라고 했어’라고 말했다. 아마 인간들은 이 아기의 모습이 옷을 입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기는 생각보다 쉽게 나에게 경계를 풀었고 똑같은 옷을 입은 어린 인간 몇 명이 꼬리를 잡아당기거나 수염을 뽑으려고 한다거나 작은 돌들을 던진 적이 있어서 인간이 무섭다고 말했다. 아기에게 몇 번의 세상을 만났냐고 물어보니 3번의 변화를 만났고 아직 하얀 세상은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너무나도 어린 아기였다. 아기가 있는 편의점의 대장은 먹을 걸 주지도 않고 빗자루를 휘두르며 ‘꺼져!’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예전엔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물이나 밥을 종종 먹고는 했는데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던 다른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했고 그 주변에서 인간들이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찾지 않았다고 했다.


 아기가 걱정이 된 나는 내가 사는 편의점으로 함께 가자고 얘기했다. 나도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경험해 봤기에 곧 다가올 하얀 세상이 아기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기가 될 거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우선 가보자고 반복해 말하는 나를 못 이기는 척 따라왔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앞에 흐르는 물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오늘 아기를 데리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장의 부하가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비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내 옆에 아기를 보더니 “친구를 데려왔네? 잠깐만 기다려!”라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생선 캔 하나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한 입, 아기에게 한 입 줬다. 아기는 내가 먹을 때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다가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안심한 듯 이내 혀를 내밀어 생선을 핥아먹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약간의 인간들이 편의점에 왔다. 이런 날에는 인간들이 ‘비가 오니 센티하네’라 말하며 나에게 더 많은 생선이나 간식 따위를 주는 날이기도 했다. 자주 오던 인간들은 아기를 보고 “노랑이가 친구를 데려왔구나”라던가 “턱시도를 입은 아기네!” 같은 이야기를 하며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줬다. 오늘 내가 ‘턱시도’라고 불리는 이 아기를 데리고 온 일은 정말 잘한 일 같았다.


 밤새 내리던 비가 날이 밝고도 계속되더니 연기 나는 건물의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가 다시 우르르 돌아갈 때쯤 그치기 시작했다. 아기는 내 덕에 젖지 않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그날 밤, 편의점 대장이 와서 아기를 보고는 “중성화가 아직 안 된 아깽이네.”라고 말했다. 나를 처음 봤던 날 대장이 “너는 중성화가 된 아이구나.”라고 말했었는데 중성화가 무슨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대장은 내일 아기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장은 좋은 인간이라 괜찮다고 아기에게 말해줬다. 비가 내린 탓인지 날이 쌀쌀해 아기와 함께 집에서 잠을 청했다.


 햇빛이 눈 부셔 눈을 뜨고 세수를 했다. 그러다 뭔가 허전해서 둘러보니 아기가 없었다. 나는 집을 나와 아기를 찾아다니고 소리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대장이 어제 아기를 데리고 어디 간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다시 세수하고 일광욕을 즐겼다. 잠시 뒤 대장이 돌아왔는데 나를 보고는 “까망이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까망이는 아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대장이 왜 나한테 아기의 위치를 묻는지 의아했다. 대장이 데리고 간 게 아니었나? 대장에게 “아기 어디 갔어?”라고 다시 물었다. 그의 귀에는 “미오우!!!” 라고 들렸겠지만, 그는 용케 알아듣고 지금 막 편의점에 도착했다며, 아기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 떴을 때 아기를 찾아다녔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일광욕을 즐긴 내가 나쁜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불량 고양이를 만난 건 아닌지, 차에 부딪힌 건 아닌지 걱정하며 대장과 부하와 한참을 찾아다녔다. 아기가 나비나 잠자리 같은 걸 따라갔다가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그에게 익숙한 공간인 높은 건물들이 있는 편의점을 향해 달렸다. 대장은 “나비야!”라고 소리치며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지만 나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 편의점 옆 풀숲 사이에서 아기를 발견했다. 다친 곳이 있거나 두려움에 떨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안심이 됐지만, 한편으론 말없이 사라진 아기에게 화가 나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아기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도 좋고 그 편의점도 좋고 대장이랑 부하도 좋은 인간인 것 같지만 나는 거기에서 살 수 없어. 말도 없이 돌아와서 미안해.”

 “이유가 뭐야? 여기에서는 혼나기만 하고 넌 아직 흰 세상을 만나기엔 어려!”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인간이 있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내가 젖어버릴까 봐 걱정하며 우산을 들고 오는 인간이 있어. 비가 오던 날 나를 찾아다녔을 거야. 여기가 거기보다 별로일지 모르지만, 그 어린 인간을 걱정시킬 순 없어.”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분명 아기는 인간을 경계한다고 했는데 인간을, 그것도 ‘어린 인간’을 걱정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을 설득했지만, 아기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참을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다치지 말라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 나한테 오라고 얘기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편의점에 도착한 나를 본 대장은 안심의 눈빛과 함께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까망이’를 찾았지만 축 처지는 내 꼬리를 보고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미안해”라고 읊조린 뒤 돌아갔다.


 그 후 음식들을 들고 종종 까망이를 만나러 갔다. 까망이는 내가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이제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배고프면 본인이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까망이가 계속 걱정됐지만 까망이는 ‘어린 인간’이 음식을 주고 있다며 ‘내’가 준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어린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해 슬퍼할 거라고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이상한 인간을 만났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는데 나를 보고는 슬픈 눈을 했다. “우리 모모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너! 모모 보고 싶다!”라며 나를 계속해서 “모모야”라고 불렀다. 아마 인간과 함께 살던 고양이의 이름인 것 같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여러 개 꺼내 나에게 줬다. 다 먹어버리려다가 까망이가 생각나 내일 가져다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 간식을 준 인간의 무릎에 올라가 마음껏 나를 쓰다듬을 수 있도록 해줬다.


 날이 밝자마자 간식을 들고 까망이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까망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입에 물고 있던 간식을 흘린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까망이를 찾아다녔다. 까망이를 찾는 내 목소리에 높은 건물들 사이의 편의점 인간이 나와 “이제 좀 조용해지나 했더니 넌 뭐야! 꺼져!” 하며 빗자루를 휘둘렀다. 빗자루를 피해 잠시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까망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까망이를 찾을 수 없었다.


 터벅터벅 편의점으로 돌아와 집에 들어갔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까망이를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쁜 인간이 까망이를 때렸나, 역시 억지로라도 데리고 왔어야 했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편의점 부하가 나에게 와서 음식을 줬지만,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는 나를 보고 부하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까망이만 생각하며 보냈다.


 날이 쌀쌀함을 넘어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까망이가 너무 걱정됐다. 그때 똑같은 옷을 입은 어린 소녀 몇 명이 들어왔다. 재잘거리는 소리에 흘깃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의 입에서 ‘턱시도 고양이’라는 이야기가 나와 잽싸게 아이들 곁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파트 단지의 턱시도 고양이’가 ‘누군가’를 간택했다 했다. “다행이다”라는 대답이 들렸다. 잘 모르겠지만 ‘다행’이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내가 멀리 산책을 다녀온 날에 대장과 부하가 나를 보고 늘 “다행이다”라고 이야기했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그 후로 한동안 까망이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나를 너무 걱정하는 대장과 부하를 생각해, 그리고 ‘다행’이 된 까망이를 생각해 다시 전과 비슷한 나날로 돌아기기로 했다. 올해는 유난히 춥다며 집 안에 몽실몽실한 것을 잔뜩 넣어줘서 공간이 조금 좁아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따뜻해 기분이 꽤 괜찮아졌다.


 하얀 세상이 끝나고 초록색 풀들이 올라올 때쯤, 대장은 나를 데리고 끔찍한 곳에 갔다. 나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를 데리고 오는 곳이다. 뾰족한 걸로 내 몸을 쑤시는 데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날 대장은 나에게 멋진 음식을 주곤 한다. 이곳의 냄새도 좋지 않아 인상을 잔뜩 쓰고 들어갔는데 익숙한 냄새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대장이 먼저 “까망아?”라고 소리쳤다. 대장의 시선이 머문 곳에 까망이가 있었다. 분명 까망이었다.


 계절을 한 20번쯤 만나봤을 법한 어린 인간과 어른 인간이 있었다. 까망이는 어린 인간에게 안겨있다가 고개를 들고서 나와 대장을 바라봤다. 대장은 나를 까망이 곁에 내려줬고 내가 까망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대장도 인간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린 인간은 까망이가 전에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던 그 인간이었다. 비가 내리면 어른 인간의 손을 잡고 까망이를 찾아왔고 어른 인간은 한숨을 쉬면서도 함께 까망이 곁에서 머물러주곤 했었다고 했다. 날이 점점 추워지던 어느 날, 어른 인간 두 명과 어린 인간이 와서 까망이에게 “같이 살자”라고 말했고, 까망이는 그날부터 그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집에 갈 때 ‘웅-’ 소리를 내는 작은 박스 같은 것을 타고 한참을 갔는데, 집 밖으로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내가 있는 편의점도 보여서 내 생각을 많이 했다며 내 눈을 마주했다. “다행”이었다. 까망이는 좋은 인간들을 만나서 따뜻한 곳에서 음식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못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어린 인간이 “까미야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했다. 나와 까망이는 헤어지기 싫었지만 대장이 다가와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으니까 인사하자”고 했고 우린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그 후로 종종, 어린 인간과 어른 인간 둘은 이제는 까미가 된 까망이를 데리고 내가 있는 편의점에 왔다. 생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줄 때도 있고 날개 달린 무언가를 가져와 한참을 까망이와 나와 함께 놀아주기도 했다. 까망이와 어린 인간은 자기와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어른 인간 둘이 “그건 안 돼. 나비는 편의점 주인이 가족이잖아.”라고 말했다. 가족이 뭔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까망이가 좋지만, 그래도 대장과 부하와 함께 이 편의점에 오래오래 있고 싶다. ‘나비’가 되어.



-



 본 글은 공동작가 출판을 위해 작성했었으나 원고 미달로 출간되지 않아 눈물을 뒤로한 채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시나리오를 위한 스토리들은 많이 써봤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로 써본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겠어요. 다른 단편이나 중장 편들도 준비 중인데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