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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율 whalemoon Jul 01. 2024

2024년 상반기 포기한 것과 시작한 것

인생은 돌고 도는 거야

오늘을 기점으로 2024년 하반기가 시작됐다. 올해는 유난히 시간이 빨리 간 느낌이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디에서 봤는데 기억할 일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엔 친구들과 놀았던 일, 가족과 여행을 갔던 일처럼 기억을 할 특별한 일들이 많은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바쁜 현실에 치이고 집,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기억할 일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10대는 물론이고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주말이면 무언가를 하기 바빴는데 지금 주말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쉬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내 기억에 남는 건 당연히 없고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 12월쯤, 시댁 외가에 일이 터졌다. 시댁 외가 조카, 그러니까 남편과 같은 항렬인 식구에게 문제가 생겼다. 정확히는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호칭을 선호하지 않아서 A라 칭하겠다. A는 박사학위까지 갖고 있는 엘리트다. 다만 공부만 열심히 한 탓에 사회생활이 부족했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것만 하고 자란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혼자 일을 하며 회사 생활을 했던 A는 회사의 대표로부터 가스라이팅과 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집안이 뒤집어졌다. 나는 법을 전공했고, 여러 고소를 진행했던 적도 있어서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일에 대한 조언자가 되었다. 사건의 내용을 정리하고, 자료들을 준비하고 고소장 작업을 돕고 있던 차였다. 어머님이 리딩방 사기에 당했다. 평소에 주식을 조금씩 하고 계셨는데 유튜브에 올라온 주식 공부방 링크를 보고 들어갔다가 1억 정도 사기를 당한 상태였다. 사기를 인지하지도 못하셨고 나에게 투자하라고 하셨다가 이상해서 파고 들어가 보니 너무나도 명백한 리딩방 사기였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대소사에 관여를 하는 입장이었기에, A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하던 상황이었고, 힘들게 일을 하시는 상황에서 다정한 말을 건네며 투자를 유도하는 그들에게 홀딱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어머니를 만나 사기임을 인지시켜드리고 바로 변호사를 찾았다. 해당 사기 집단을 집단고소 한다는 변호사 사무실이 있어 어머니를 모시고 양재에 갔다. 내가 찾아낸 정보들을 보여주고 집단 고소, 개인 고소, 혹은 직접 고소를 진행할지 등을 결정해야 했다.


시댁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2개다. 작은 문제도 아니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법적인 문제. 당시에 나는 오랜 꿈이었던 연극을 하고 있었다. 3월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 연습을 나가 4-5시간씩 연습을 했다. 주연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었고 대본도 다 외우고 동선을 잡아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족에게 닥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연극을 하면서 돈도 꽤 들어갔기 때문에 결국 연극을 포기했다. 아쉬웠지만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A의 문제는 기존에 알던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어머니의 문제는 직접 고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증거들을 모으고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사업자들을 찾아 정리를 하고, 사기꾼들이 만들어둔 여러 홈페이지들을 찾고, 고소장을 썼다. 문장으로 표현하니 굉장히 짧아 보이지만 2달 정도 시간이 들어갔다. 심지어 올해 1월에 새로운 회사도 들어갔던 상황이었고 대학교도 다시 들어가기로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잠을 줄여가고 주말에 일을 하면서 고소장을 준비했다. 워낙 피해자가 많은 사건이기에 고소장 접수 후 이관이 되었고 지금은 여전히 대기 중이다. 사기당한 돈 중, 술수를 꾀어내어 약 6천만 원 정도는 돌려받아 피해 금액은 4천만 원 정도로 줄었지만 어머님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바쁜 회사에 스트레스를 받아 퇴사를 했고 3월부터는 학교 공부를 다시 했다. 사실 기존에 다니던 학교를 다시 복학할까 고민했지만, 이번에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과거의 꿈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7살부터 법조인이 되고 싶었다. 여러 이유로 다른 꿈으로 바꿨었지만 다시 법조인의 꿈을 꿨다.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타 학교 법학과로 편입을 했고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는 거의 만점이 나왔는데 기말고사 기간에는 강아지 병원으로 인해 정상적인 공부를 하지 못해 살짝 망했다. 뭐 주말이나 새벽에 공부를 했으면 됐는데 그렇지 못한 내 잘못인 건 잘 알고 있다.


업무 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강아지에 대한 걱정, 치료비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다시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 등으로 인해 우울증이 다시 시작됐다. ADHD약인 콘서타도 효과가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이 쉬는 날 겨우 찾아간 병원에 콘서타 증량을 요청했지만, 지금 내 상태는 우울증도 심하고 공황장애도 슬금슬금 나타나는 상황이었기에 우울증 약만 추가로 처방받았다.


꾸준히 글을 쓰던 모임이 있었으나, 정신없는 현실로 그 모임도 그만뒀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다시 시작했다). 재택근무나 반려견과 동반해서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지만 내 나이와 내 경력에 맞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한 뒤 3-4시간 정도라도 일을 하려고 주방, 서빙 등을 모두 찾아봤지만 하나같이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강아지는 24시간 케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많아지는 나이와 쌓이기만 한 경력이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올해 상반기에 연극을 비롯한 일부 취미들을 접었고(시간과 체력이 도무지 따라주지를 못했다) 미래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아쉬운 것도 있고 새로 시작함에 있어 힘든 것도 있지만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으리라. 학교의 성적표를 최종적으로 받았을 때 6과목 중 B+ 1개와 A+ 5개를 받았다. 다행히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도(B+는 아쉽지만) 좋은 성적을 받은 내가 조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하반기 시작이 된 7월부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했던 일과는 다른 일이지만 아이의 병원비와 생활비에 보탬이 될 정도로는 벌 수 있어서 하기로 결정을 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것을 포기할 테고 약간의 것을 시작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인생은, 희망은 돌고 도니까 뭐든 다 해낼 수 있지 않을까? 40대가 되면 더 풍부한 감정으로 연극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A의 일과 어머님의 일이 모두 해결되고 나면 다들 웃는 얼굴로 그때를 회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내 남은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비록 나는 다시 우울증 약을 매일 아침 먹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더 단단해질 수 있겠지. 사람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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