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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율 whalemoon Jul 01. 2024

[반려견 투병일기 02] 병원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

최소 하루에 6시간

방사선 치료를 결정했다. 고선량이니 저선량이니 하는 것들을 결정하고 몇 회차를 받을지도 결정해야 한다. 비용도 시간도 아이에 대한 리스크도 모두 오롯이 내 선택에 의해 결정이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이의 방사선 치료를 결정하려 할 때 도움을 얻던 카페에서 나에게 누군가 저 말을 했다. 리스크란 비용과 부작용이고, 리턴은 건강해진 아이의 모습.


나는 아니 우리는 12회 저선량 치료를 결정했다. 방사선 치료에만 1천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비싼’ 치료였지만 해당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마취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다행히 최근 MRI, CT 촬영 시 너무나도 건강하게 일어나 주었기에, 그리고 고선량보다는 저선량이 안전하다고 하기에(물론 이는 병원마다, 의사마다 모두 차이가 있을 테지) 힘든 결정을 내렸다.


지난번 글을 작성하고 바로 수영장이 딸린 펜션을 가려했지만, 촬영 후 나온 아이의 머리는 네모난 땜빵이 3개가 있고 방사선을 쏠 부분을 수성펜으로 표시한 상태였다. 수영장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치료가 끝날 때까지 목욕도 불가능했다. 건강하게 나왔지만, 비몽사몽인 아이를 안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최선이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첫 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던 금요일. 집에서 병원까지 차가 막히지 않을 때는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동부간선도로나 올림픽대로 등등 한강을 가로질러야 하는 길은 막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새벽이나 늦은 밤이 아닌 이상 매번 막히는 이 길을 11번을 더 가야 한다. 여유 있게 출발해서 예약 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도착했다. 잠시 대기한 후에 아이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마취하는 시간부터 방사선 치료받고 마취에서 깨는 시간까지, 병원에서는 약 3시간 정도 대기를 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보호자는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잠시 나가서 볼일을 보거나 하는 것 같았다. 힘든 치료를 결정한 이상 모든 보호자의 마음은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방사선 치료라는 게 부작용도 있고, 마취의 경우 역시 못 깨어나거나 호흡이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잠깐의 부재도 두려운 마음이었다. 혹시나 터벅터벅 걸어 나가 서점에 들렀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내 정신이 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갑자기 공황장애가 올 수 있기 때문에(하지만 난 큰일에 강한 편이긴 하다) 나가지 않기로 했다. 학교 공부를 해야 했지만 첫 치료라 얼마나 대기를 해야 할지, 병원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전자책을 들고 갔고 대기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었으나, 인기척을 느끼고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헤드폰을 살짝 빼기를 반복했다. 다른 아이들의 치료 과정도 나에게는 다 정보가 될 것이고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3시간을 기다리면서 책 한 권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보통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2시간 내로 읽는 사람인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을 보다 핸드폰을 만지다가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정신없이 3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그날 무슨 유튜브 촬영이 있는지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첫 진료 날 대기실은 정말 별로였다. 남의 아가를 말도 없이 만지고 보호자에게 자기는 괜찮다고 말하는 이상한 사람도 만났다. 앞으로 치료하는 동안 난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가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안겨 아이가 나왔다. 무사히 내 품에 돌아와 줘서 병원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감사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5월이었지만 올해 5월은 5월 같지 않게 꽤 뜨거웠기에 차에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었다. 5분 정도 차를 시원하게 만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올림픽 대로는 병원에 갈 때보다도 더 막혔다. 5차선 도로에서 4차선을 타고 쭉 달리는데, 4차선만 꽉 막혀 마치 주차장 같았다. 서울에 차를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올림픽대로를 탈 일도 없었고, 밤늦은 시간에만 그 길로 다니던 나는 답답함에 심장이 턱턱 막히는 느낌까지 들었다. 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편하게 눕히고 싶고, 나도 지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첫 치료인데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 막막한 올림픽대로를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금요일 오후 5시 한강 도로변은 정말 최악이었다.


어찌어찌 남편의 퇴근 시간 엇비슷하게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은 아이가 자다가 발작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잠을 설쳤고 다행히 무사하게 하루를 마쳤다.


뻥 뚫린 도로를 3시간 운전하는 것과, 꽉 막힌 도로를 3시간 운전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나는 운전을 좋아해서 하루에 7시간 반 정도 운전하는 경우도 있는데(이 이야기는 조만간 나올 예정) 주차장과 흡사한 한강 도로를 왕복 3시간 운전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사람 병원처럼 소독약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불편한 병원 의자에 앉아 마음을 졸이며 3시간을 기다리는 일 역시 너무나도 힘들었다. 사람이면 아프다, 괜찮단 말이라도 하지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보고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나는 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집에 있어서 ADHD 약을 잘 먹지 않고 있었는데 아이랑 병원에 다닐 때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었다. 그래야 내 정신이 온전할 것 같았다.


이제 첫 치료가 끝났을 뿐인데 이미 10번 정도 받은 것처럼 나는 지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할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더 온전한 정신이 되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작은 일에는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 큰일이 닥치면 누구보다도 차분했고 신중했다. 그리고 강해졌다. 마치 대장간에서 달궈지고 두들겨지는 게 작은 일들이라면, 찬물로 냉각시키고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건 큰일인 것처럼. 이미 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나에게는 앞으로 11번의 추가 치료와 기말고사가 남아있었고 사소한 것은 생각할 틈도 걱정할 틈도 없었다며 스스로를 달구고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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