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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율 whalemoon Jul 08. 2024

[반려견 투병일기 03] 이게 옳은 선택일까?

병원에 있으면 소머즈 귀가 되는 것 같다

두 번째 치료를 위해 토요일,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갔다. 남편은 보통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지만 한 달에 한번 쉬는 날이었고 누군가, 특히 내가 나를 제외하고 가장 믿는 사람과 병원을 방문한다는 건 꽤 도움이 됐다.


병원에 방문하기 전, 정신과를 먼저 다녀왔다. 아이의 병원 예약 시간은 오후였고 ADHD약을 다 먹어버린 데다가 증량도 필요할 것 같았다. 꽤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에는 대기 환자가 많았다. 멍하니 차례를 기다리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별일 없었어요?”라고 묻는 선생님에게 최근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회사를 그만둔 이야기, 아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이야기, 학교에 복학한 이야기 등등. 5-1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누고 콘서타 증량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 우울증이 다시 심해진 것 같고, 공황장애도 최근에 증상이 있었는데 여기서 콘서타의 양을 늘리면 공황장애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당분간 우울증 약과 콘서타를 복용하고 안정제, 수면제를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대충 점심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 한강변의 도로는 역시나 엄청나게 막혔다. 나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데 다들 어디를 가는 건지,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괜히 심술이 났다. 나도 아이와 놀러 가는 길이면 좋을 텐데 우리는 위험한 치료를 받으러 꽉 막힌 도로를 슬금슬금 기어나가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보호자와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가 다른 보호자에게 가서 애교를 부렸고, 그 보호자와 간단한 이야기. 어디가 아프냐, 치료는 몇 회 차냐 같은 사람들 병원에서도 쉽게 나눌 법 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 아이 역시 우리 아이와 같은 뇌질환이었고 우연스럽게 둘 다 2회 차 치료를 받는 날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15회, 우리는 12회라는 점.


아이가 치료에 들어간 뒤 남편과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책을 읽었다. 난 무언가를 읽거나 쓰면서 안정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남편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번에 비해 불안감이 덜해서인지 꽤 읽어 내려갔다. 처방받아 복용한 우울증 약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남편이 안정의 효과일 거라고 믿었다.


아이가 나오기 30분 전쯤, 아까 대화하던 보호자를 찾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고 귀가 열렸다. 아이가 마취에서 잘 깨지 않는다며, 치료 방법을 바꾸거나 미루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보호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듣고 있는 나와 남편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서로를 위로하며 최고로 불안한 30분을 기다렸다. 시간이 너무 흐르지 않았고 또다시 우리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약 30분 후, 간호사에게 안겨 아이가 나왔다. 그 순간 속으로 100번은 외친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약 80만 원의 병원비를 결제하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던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고 역시나 미친 듯이 차가 막혔다. 남편이 뒤에서 아이를 잔뜩 만져주고 사랑해 주고 나는 운전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집에 도착한 뒤 아이 마취가 완전히 깨길 기다리며 저녁을 먹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저렴하게 구매한 유모차를 드디어 첫 개시하는 날이었다. 마취 후 산책을 하게 되면 뇌압이 높아질 수도 있고 아이가 힘들어 할 수도 있어서 그때를 대비하여 구매한 유모차였다. 다행히도 아이는 유모차에 잘 적응을 해주었고, 남편과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30분 정도의 산책을 마쳤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아이의 치료가 쉬는 날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그리고 오롯이 쉴 수 있는 이틀의 시간. 이 시간 동안 아이의 안정을 위해 많이 쉬고 산책을 다녀오며 마음을 다잡는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비해 건강해진 것 같은 아이를 보며(물론 스테로이드가 작용해서일 테지만) 그래도 이 선택을 하길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다음 치료에서도 아이가 무사하게 깨어날 수 있기를, 단 하루라도 내 곁에 있기를, 못다 준 사랑을 더 줄 수 있기를. 믿는 신도 없는 주제에 바란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기도를 하며 아이를 쓰다듬고 그렇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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