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토해내기 전 까지는
일요일과 월요일,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 주고 많이 교감했다. 보통 남들에겐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일테지만 아이가 병원에 다니는 동안 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 되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집안일을 하고 14시까지 병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우 두 번이었지만 어느 정도 막히는 것에 적응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늘 빠르게 움직이는 버릇이 있다 보니 예약시간보다 30분에서 60분 먼저 도착했고, 병원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빠른 접수와 치료를 도와줬다.
치료가 끝난 뒤 나오는 아이는 여전히 기운이 없지만, 지난 1, 2회의 치료와 비교하면 꽤 괜찮아 보였다. 이틀 동안 푹 쉰 거는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꽉 막힌 한강도로를 지났지만, 일찍 치료를 시작한 덕에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금식이었다. 치료 8시간 전까지 금식을 해야 하는데 14시 예약이다 보니 새벽 6시 이후로 아이는 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아침으로 예약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꽉 차 있다 보니 오후 시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치료 종료 후에도 바로 물을 섭취할 수 없다. 마취가 깬 후 3시간이 지나야 물부터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서 아이의 첫 식사시간은 너무나 늦을 수밖에 없었다. 7시가 넘어야 물을 조금 먹고 밥을 먹는다. 밥도 잘 먹지 않아서 속도 타들어간다. 특식을 주면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특식도 불가능하고 맛없는 소화기 처방식 사료를 먹여야 한다. 원래 먹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12kg 정도였는데, 아픈 이후로 8.4kg까지 빠졌다. 조금씩 증량이 되어가고는 있지만 일반 프렌치불도그에 비하면 너무나도 마른 몸이 되어버린 아이를 보니 그저 가슴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수요일, 4회 차 치료도 역시 14시 예약이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집안일을 하고 학교 공부를 조금 하다가 병원에 갔다. 아이의 치료를 대기하는 동안 특별한 것이 없는, 평소와 같은 하루였지만 심장이 이상하게 벌렁벌렁거렸다. 두근거림을 넘어서서 불안한 마음이 커지면서 통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우울증 약도 분명히 챙겨 먹고 나왔고, 오는 동안 아이의 컨디션도 괜찮았는데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는 평소에도 꽤나 촉이 좋은 편이고, 주변에서는 돗자리 깔았냐고 물어볼 정도로 예상하는 것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불안감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기다렸다. 무겁게 챙겨 온 책은 그저 내 손에 들려있다가 다시 가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던 3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나왔다. 이전 치료 후 나오던 아이의 모습과 딱히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아 걱정을 한시름 덜고 집으로 출발했다. 여전히 꽉 막힌 올림픽 대로에서 조수석 카시트에 앉아있는 아이를 봤는데, 순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이를 예상한 거였을까? 불안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너무 놀랐지만, 내가 놀라면 아이도 놀랄 테고 우선 운전 중이라는 사실에 집중했다. 정말 꽉 막혀서 1cm도 움직이지 않는 올림픽 대로가 반갑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브레이크에 홀드를 걸고 아이의 피를 닦았다. 시리를 불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병원 전화번호를 저장한 과거의 나에게 감사했다. 보통 늘 검색해서 전화를 하는 사람인데, 긴급 상황을 대비해 미리 생각해 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아이가 피를 토했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빨간 피를 토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겠다. 집에 가서도 아이를 잘 지켜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보다 더 아이를 신경 쓰며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휴지를 지퍼백에 담았다. 덩어리 같은 것들도 일부 보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물어보는 것이 정확할 거라 생각했다. 수면 마취를 할 때 입 안에 넣는 호스 때문에 목이 긁힌 건 아니었을까? 부작용 중에 췌장염이 있는데 췌장염이 생긴 건 아닐까 등등.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리해서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선택이 옳지 않았던 걸까. 그냥 아이와 많이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다가 그렇게 아이를 보내는 게 맞았던 걸까.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반려동물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빨간 피를 토한 건 처음이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다음날 5회 차 치료는 오전 10시라는 점. 병원에 가는 게 이렇게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었다. 혹시나 아이가 밤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