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살이 찐 적은 딱 3번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준비할 때, 대학교 4학년 임용 준비할 때, 그리고 지금. 그냥 찐 것도 아니고 몸무게 최고치 경신이다. 살이 찌니 예전에 입던 옷이 끼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 같다.
살이 찐 이유는 우선 난임 휴직을 내고 일을 쉬니 활동량이 적어져서도 있지만, 호르몬제를 투약하는 것이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배란 직후에 여성들은 보통 몸이 무거워지는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데, 그 이유가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이라고 한다. 프로게스테론은 자궁 내벽을 튼튼하고 두껍게 유지하여 잘 착상할 수 있게 돕고, 임신이 되면 임신 상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마운 호르몬이다. 그래서 이식 후에 고함량의 프로게스테론을 처방받게 되는데, 이 때문인지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고 난 뒤론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이식하고 나선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활동적인 걸 하지 않는 데다가, 잠도 오는 대로 다 자서 낮잠을 여러 번 잔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과정을 10개월 거친 결과 나는 인생 최고치의 몸무게를 찍게 되었다.
임신을 해서 내 배 속에 아기가 자리 잡아서 살이 찌는 것이라면 감사히 받아들일 일이었지만, 거듭된 실패에 나한테 남은 건 살 뿐이니 억울할 수밖에. 특히 복부 쪽에 살이 많이 붙어서 바지를 살 때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간 걸 찾게 되었다. 딱 붙는 스키니 진이나 짧은 치마는 입을 일도 없고, 입지도 못하게 되었다. 예전에 한창 운동할 당시 배가 다 드러나 보이는 예쁜 운동복도 많이 사두었는데, 요즘은 긴 팔, 긴 바지 운동복만 돌려 입는다.
뱃살이 쪄서 좋은 건 딱 한 가지! 배에 주사를 맞을 때다. 난임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대부분의 자가주사약들은 배에 놓는 것들인데, 주사 바늘이 얇기는 하지만, 은근 따끔하기 때문에 배에 살이 없다는 걸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배에 주사를 놓는 건 남편 담당.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주사를 맞을 때 아주 의연한 편이지만, 도저히 내 배에 주사를 놓는 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주사약도 다 들어가 있고 바늘도 얇은 주사계의 순한 맛 ‘오비드렐’을 놓을 때 피를 본 이후로는 주사 놓는 건 무조건 남편한테 맡겼다.
주사 맞을 시간에 맞춰 울리는 알람. 남편이 배꼽 주위의 뱃살을 한 꼬집 잡아서 주삿바늘을 천천히 꽂는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남편은 병원 간호사 선생님보다 주사를 덜 아프게 놓게 되었다. 그래도 주사약이 끈적한 액체일 경우 놓고 나면 배가 뭉근히 아픈 경우가 있어 아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안타까워할 때가 많다. 그럴 땐 내가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이럴 때 뱃살이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난임 생활을 하며 변해가는 내 몸을 보면서 슬퍼질 때가 종종 있다. 이건 아무리 좋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불쑥불쑥 솟아난다. 그럴 땐 오히려 뱃살을 어루만지면서 아기가 찾아오면 튼튼한 보호막이 되어줘 속삭인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 요즘은 아예 몸을 따뜻하게 하는 용도로 복대를 차고 있는데, 그 복대 모양이 웃는 토끼이다. 뱃살도 가리고, 이걸 보며 웃기도 하고 일석이조다. 몸매도 날씬하게 유지하면서 아이도 건강하게 갖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냥 아기 낳고 날씬해지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