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대학생도 학생이기에 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찾아온다.
여름방학은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면,
겨울방학은 학교에서 실습을 다녀오는 것으로 과제를 내주었다.
실습을 갈 수 있는 곳은 항공사, 호텔, 여행사 등이었다.
동기와 같은 회사로 정해지더라도 각기 다른 부서로 찢어져야만 했다.
항공사는 공항으로 출퇴근해야 하는데, 우리 집과 거리가 멀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여행사는 왠지 재미도 없을 것 같고, 멋이 나지 않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호텔, 나는 많은 부서들 중에서 오피스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희망사항과는 달리 F&B 부서에 지정되었다.
F&B란 FOOD and BEVERAGE의 약자로 식음료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나는 일일 아르바이트로,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F&B를 경험한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지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와 실습생은 대우나 하는 업무가 다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나 혼자만의 바람에 불과했다.
정장처럼 불편한 유니폼과 260mm인 내 발에 맞지도 않은 삐딱 구두를 착용하고는
하루종일 마네킹처럼 서서 9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로 일해야만 했다.
또한 호텔의 식음료 부서는 조식, 중식, 석식을 다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직원은 스케줄 근무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근무하는 시간이 바뀌었는데, 그 시간을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당연히 휴무를 결정하는 것 또한 내 권한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는 호텔에 함께 배정받은 친한 동기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도 나처럼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같은 시간에 일하는 동기가 있으면 서로 손을 꼭 붙잡고 으쌰으쌰 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같은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동기는 오피스에서 편하게 앉아 일했다.
지친 내 몸과 다리와는 달리, 그 동기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호텔을 오갔다.
그 친구를 어쩌다 만난 후, 내가 일하는 환경으로 돌아오면 나 자신이 너무 안쓰러웠다.
ㅡ
나는 당시 사회생활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었다.
스무 살이 무슨 사회 경험이 있다고 어찌 눈치껏 모든 걸 잘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사실 나는 그곳에서 미움을 샀다.
어떤 미움을 받았는지 잠시 얘기해 보자면,
크리스마스에 나는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일해야만 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동기들과 스케줄을 바꾸고 싶어도 바꿔줄 리가 만무했다.
나였어도 바꿔주지 않았을 테니까.
또한 호텔 내의 카페로 심부름을 갔는데 어쩐 일인지
선배가 내가 원하는 음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감사하다는 말과 동시에 원하는 음료를 말씀드렸다.
'음료 가지고 가서 몰래 천천히 마셔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음료를 가지고 가려는 나를 보고 선배는
'지금 여기서 다 마시고 가야지, 빨리 원샷하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음료를 빨리 마시지 못한다.
커피를 사도 하루종일 마실 정도로 천천히 마시는 편이다.
그렇다고 선배가 기껏 만들어주신 음료를 다 못 마신다고 버릴 수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들이켰다.
그리고 실습이 끝나는 마지막날의 일이었다.
직급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장 높은 직급을 지닌 사람이
내 실습 인증 서류에 사인을 하며 소리쳤다.
'너 같은 애는 실습생으로 쓰기도 싫어!'
나는 이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무얼 잘못해서 미움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10년이 지난 터라 그때 기억이 생생하지도 않을뿐더러,
원래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기도 하고
내가 실수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을 수도 있을 터.
그래도 내 이야기이니 변명을 해보자면,
일할 때 손님한테 실수를 하거나 접시를 깨는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항상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요즘엔 '조용한 퇴사'가 유행이라지만, 내게는 아직도 해당 사항이 없는 단어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내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한 적도 없었다.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가 가지 않았음에도, 겁이 나서 차마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또한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따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싫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내가 가진 의문이 해결되었다.
다른 동기들은 주말에 쉬는데 나만 자꾸 주말에 스케줄이 나오는 이유,
왜 자꾸 선배들이 나한테 못되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ㅡ
참 고달픈 실습 생활이었다.
집과 호텔을 오가며 지하철에서 많이도 울었다.
한 번은 집에서 출근하기 싫다며 엄마 앞에서 운 적도 있었다.
엄마는 우는 내 모습에 마음이 아팠는지
'그러니까 학창 시절 때 공부를 열심히 했었어야지!!!'라고 소리 지르기만 했다.
글쎄, 이때를 회상하면서 든 생각은 '사회초년생에게 조금 더 관대할 수는 없었을까?'였다.
'괴롭히기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었다면 고치지 않았을까?'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리 궁핍한 순간이 오더라도, 호텔에는 절대로 취업하지 말아야겠다고.
ㅡ
모든 호텔이 이러지도, 모든 실습생이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나는 이때 호텔과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이런 실습을 통해, 본인이 호텔과 천직이라고 생각한 친구도 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일을 한다.
그러니 나로 인해 편견이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노파심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