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나는 2달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내가 속했던 반은 스파르타 반으로,
주말에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평일은 학원에 내내 감옥처럼 갇혀서 공부만 해야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는 주말에만 나갈 수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주말에 항상 단체로 바닷가에 놀러 갔다.
선생님 중에서 저렴하게 리조트를 대신 예약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매번 다른 곳으로 방방곡곡 놀러 다녔다.
나도 물론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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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유는
한 번 갈 때마다 20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언니는 몇 년 전 나보다 먼저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때 언니는 엄마에게 늘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사람들 다 여행 가는데 내가 어떻게 안 가!!’
‘또?!! 어휴… 알았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매번 돈을 부쳤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는데’라는 말에
엄마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다.
전화를 끊고 혼잣말로 하는 이야기를
나는 선택권 없이 늘 옆에서 들어야만 했다.
‘돈도 없는데 왜 계속 부쳐달라고 하는 거야!‘
‘이체 수수료도 비싼데 매주 부쳐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어학연수에 왔을 때는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엄마의 속을 아는 마당에
나 좋자고 돈을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의 집착 때문이었다.
내가 다른 남자들과 말을 섞는 것,
사진을 찍는 것조차 거부했던 남자친구는
그들과 밖에서 노는 일이 있으면 화부터 내곤 했다.
집에 돌아오라고 한 뒤,
학원을 바탕으로 본인이 시키는 포즈를 취한 뒤에
인증샷을 보내는 것이 나의 미션일 때도 많았다.
‘첫 번째 손가락이랑 두 번째 손가락으로 브이하고 사진 찍어서 보내.’
우리 부모님도 내게 꽤나 집착이 심한 탓에
나는 이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리고 곧이곧대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내가 해외에 와 있는 동안
그는 뒤에서 다른 여자들과 놀러 다닌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에 음주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내 입에 술을 대도록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이 술게임을 할 때면
나는 분위기를 맞추다가 슬쩍 빠지거나
홀로 마사지를 받으러 가곤 했다.
ㅡ
그렇게 내가 여행도, 술자리도 끼지 않으니
막내라는 이유로, 나름대로 예쁘다는 이유로
많이 받았던 관심 속에서
점점 잊혀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숙소를 떠난 날도
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그곳을 떠나야만 했지만.
그래도 이때 참 고마웠던 오빠가 있다면,
우리 아빠와 이름이 같았던 사람이다.
내가 항상 아빠라고 부르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내가 오빠한테 자리를 함께 피해 달라는 요청을 할 때면 항상 스스럼없이 나와주었다.
어둑한 밤에 나를 안전하게 숙소에 데려다주고는
오빠는 다시 술자리에 참석해 노는 게 다반사였지만,
내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ㅡ
나는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즈음에나
되어서야 한 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리조트에 가서 묵는 숙소, 처음 해보는 호핑투어 등
너무 행복했다.
내게는 첫 해외여행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호핑투어를 할 때,
나는 너무 신난 나머지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는 보트에게서
멀-리 떨어질 때까지 수영을 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따라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수영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보트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 여기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릴 리가 만무했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급히 보트를 향해 수영하기 시작했는데, 숨이 차서 심장이 두근 거리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숨이 차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에 올 때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금세 왔는데 돌아갈 때는 천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다행히 보트가 나를 발견하고 찾으러 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물고기들의 밥이 될 뻔했다.
ㅡ
저녁에는 사람들이 술파티를 벌일 때,
옆에서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천을 깔고 마사지를 받았고
그때의 분위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신나는 목소리,
시원한 마사지의 촉감,
검은 하늘 위에 밝게 비춰오는 리조트의 잔잔한 불빛,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바닷가에서 넘실거리며 흘러오는 바다향까지.
사람들이 집에 가서 잠을 잘 때도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혼자 바다에 나와
<너의 모든 순간 - 성시경>을 들으며
널찍한 그네에 앉아 그 순간을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게 아쉬울 만큼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이 좋은 걸 사람들은 매주하고 있었다니 싶으면서도
내게는 단 한 번인 추억이라
더 깊이 박혀있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마지막 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