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원짜리 수업이 이상해!

스무살

by 도무지

테스트가 마치고

각 학생에게 맞는 수업 시간표가 짜여졌다.


나는 수업이든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든

항상 내 이름을 알려줘야만 했다.


나의 이름은 ‘ZION’이었다.

제대로 발음하면 ‘시온’이지만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이온’, ‘지온’, ‘자이언’

불리어지는 대로 내 이름이 변해가고 뒤엉켜졌다.

그래서 결국 모두의 편의를 위해, ‘자이언’으로 정했다.


대부분의 수업은 1:1이었고

그룹 수업은 2개 있었다.


수업의 진행 방식은 이상했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가지고 공부하지도,

그곳에서 별도로 책을 주지도 않았다.


무려 몇 백만 원을 투자해서 온 어학연수가 아니던가?

그럼 뭘 했냐고?



A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팝송을 선택하게 한 뒤

팝송을 듣고 받아쓰기,

그리고 따라 부르게 연습을 시켰다.



B 선생님당시 한국의 유명 K-POP 아이돌 ‘엑소’에 관한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나는 전혀 관심 없던 엑소의 사진을 함께 봐야 하는 건 수업시간에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한국 아이돌에 관한 내용을 싹- 훑은 후에는

한국과 필리핀 문화의 차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B 선생님의 최애는 ‘디오’였는데,

학생 중에서 디오를 닮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장안의 화제처럼 선생님들께 인기를 샀고

본인의 이름 대신 ‘디오’라고 불렸다.


C 선생님은 키가 매우 작은 단발머리의 소녀 같은 선생님이었다.

그녀와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와 함께 밖에 놀러 나간 날이었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을 하던 중

나는 예쁜 치마를 발견했다.

거울에 비춰보며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는데

옆에 그녀가 다가와 같이 봐주는 것이다.


그녀가 키가 작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신거울로 명확히 우리 둘의 차이를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 키를 반토막 낸 것처럼 작았던 그녀에게

같은 예쁜 치마를 가져다 댔더니

원피스가 되어버리는 기적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둘은 빵- 터져서 깔깔거리고 웃는 바람에

그 옷이 과연 치마였는지, 원피스였는지

확인도 미처 하지 못 하고 나왔다.

과연 내가 컸던 것일까, 그녀가 작았던 것일까.


아 참, C선생님과는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게 된 경우였다.


D 선생님토론을 하는 그룹 수업을 담당했다.

토론하는 팀은 3:3으로 나눠져 있었고

우리 팀에는 일본인이 없었지만,

상대팀에는 일본인이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세서

게임에서 지는 걸 정말 싫어하기도 했지만,

괜히 ‘상대팀’이라는 경쟁구도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질 수 없다는 의지가 불타기도 했다.


첫 수업 때는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몰라서 졌지만

이후의 모든 수업은 백전백승을 기록했다.


나는 그 어떤 수업보다 토론 수업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급기야 그 일본인 친구는 내게 한 번을 져주지 않는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일본인 중에서는 가장 친했던 친구였는데,

한 번 져줄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하고

연락처도 알지 못해 그리움만 가득하다.

우리 토모, 잘 지내니?


E 선생님의 그룹 수업은 나를 포함해 여자 4명에서 진행됐다.

우리는 여자들끼리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네 자매마냥 수다 떨기 바빴다.


나는 학원 내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였는데,

E 선생님은 나를 항상 베이비라고 불렀다.


내가 어린 탓에 순수함을 감추지 못하자

심술궂은 장난도 많이 쳤지만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편지 속에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F 선생님은 나를 너무 잘 챙겨준 나머지,

내가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필리핀 엄마가 현지인으로서 동네를 구경시켜준다며 함께 놀러 갔다.

필리핀에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린아이들이 동냥하러 많이 다니는데

그날은 어른들까지 고약하게 내게 돈을 요구했다.


엄마는 필리핀은 하얀 피부가 부자를 상징하는 기준으로 많이 본다고 말해줬다.

나는 한국인 중에서도 유독 피부가 하얀 편이어서

더 사람들이 들러붙은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라고 했고

놀랍게도 중국인인 척을 하자 나를 붙잡지 않았다.

신기했던 경험이었다.


갑자기 엄마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직업을 변경하게 되었다며

나를 본인의 친동생에게 맡기고는 사라졌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면 전기밥솥을 선물하겠노라 말했는데

나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약속 녹음까지 따낸 핸드폰 속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추억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나를 떠났을 때에도,

내가 필리핀을 떠나 한국에 왔을 때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가 한국으로 여행 왔을 때에는

이번엔 내가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한복도 입어보고 다과도 먹으며

사진도 왕창 찍는 즐거운 시간을 선물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날들을 잊지 못한다,

이들 덕분에 행복했던 단 두 달의 시간.


행복을 알게 해 주었다면

교육의 가르침보다 더 값진 것을

준 시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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