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고를 당했는데 행복하다뇨?

스무살

by 도무지

교통사고가 난 후,

아빠와 언니가 입원한 병원은

사고 난 곳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기본적인 검사와 사고 정리가 된 이후에는

집과 엄마의 매장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아빠와 언니는 둘 다 6인 병실을 사용했고,

유감스럽게도 다른 층에 배치되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병원이나 엄마의 매장으로 갔다.


평상시에는 아빠가 퇴근하면 매장에 가서

엄마를 도왔었는데,

이제 그 역할을 내가 하게 된 것이다.


병원으로 가면,

언니와 아빠를 만나기 위해

어느 층부터 먼저 갈까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언니와 아빠는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야 할 고민은

’과연 오늘은 어느 층에서 둘이 있을 것인가‘였다.


양자택일 중 잘못된 선택으로 허탕을 치면

괜히 로또에서 숫자 하나 차이로

당첨되지 못한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아빠와 언니를 만나면

그들의 손에는 늘 먹을 것이 들려있었다.


음식에 진심인 나는

오늘은 어떤 음식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병원을 갔던 적도 있다.


내가 음식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아빠 회사 직원이 가져다주셨다는 대답이 끊이질 않았다.


아빠가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찾아온 것도 있겠지만,

그동안 아빠가 사내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언니와 아빠는 크게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병원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환자들을 위해

휠체어 전용 비상계단이 있었다.


아빠는 언니를 만나러 갈 때

휠체어 전용 비상계단을 주로 이용했는데,

휠체어를 잘 컨트롤하지 못해서

의자에서 떨어져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그렇게 번번이 사고가 나면서도,

아빠와 언니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병원복을 입고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아빠의 말이 있다.

“나는 첫째랑 병원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


나는 생각했다.

‘사고가 나서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어떻게 그게 가장 행복했을 수 있지?‘


‘회사에 출근을 안 해서 행복했던 건가?’


‘나랑 함께 보낸 시간은 행복한 적이 없던 건가?’


아빠는 지금도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면

언니와 둘이 병원 생활을 하며 동고동락을 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휠체어에 타고 병원 앞 팥빙수를 먹던 그 여름을.


그런데 이제는 저 말의 의미를

지레 짐작하여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었을 것 같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오래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주어질까 ‘


아빠는 가장으로서 출근을 피할 수 없었기에,

누구보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그 몇 달이

아빠에게는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사고 이후로 아빠는

언니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큰 미안함을 가진 듯,

언니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할 때

용납하지 못하더라도 수용하려고 한다.


이전 같았으면 고래고래 화를 냈어야 하는 일도,

큰 한숨으로 대체하거나

몇 마디로 말을 그친다.


나한테도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순간 짜증이 일더라도

두 모습 다 아빠의 사랑임을 알기에

나 또한 아빠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다.


나는 가족의 사고 사건도 그렇고

운전을 할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면허를 취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족 중에 아빠 외에 운전할 사람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더 늦으면 못 딸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2022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 참 많이 무서웠다.


당연히 초반에는 익숙하지 않아,

운전을 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가끔 있었다.


그런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아빠를 생각하곤 한다.

뒷좌석에 앉아있을 언니도 함께 떠올리며

이제는 내가 가족을 지켜줘야지라고 다짐한다.


나도 교통사고는 남의 일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교통사고는 내가 아무리 안전 운전을 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날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유증은 둘째 치고, 수술로 인한 흉터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니까.


아빠가 미울 때, 엄마가 미울 때, 언니가 미울 때

나는 생각한다.


‘아빠와 언니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으니 참자.’

‘엄마가 일찍 차에서 내려 다치지 않았으니 참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교통사고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문철 TV만 봐도 알 것이다.

교통사고는 정말 많이, 어떠한 순간에도 일어난다.


그러니 옆에 있는 가족이 건강함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고마워하며

미워도 사랑하자.


사실 가족이 병실에 있는 그 기간은

나도 엄마도 정말 힘들었다.


엄마는 병원, 매장, 집을 오갔고

나는 거기에 더해 학교까지 다녀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힘든 얘기는 별로 담고 싶지 않다.


가족의 아픈 추억이

아빠에게는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면,

나 또한 아프게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엄마는 모르는,

아빠와 언니의 은밀한 병원 스토리를

사랑 가득하게만 적어보고 싶었다.


여러분도 바로 직전의 글과 이 글을 읽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겠지만

우리 가족이 더 돈독해지고 끈끈해진,

또 다른 행복한 이야기였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이전 10화90% 확률로 죽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