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확률로 죽었어야 했는데…

스무살

by 도무지

어느 일요일이었다.

교회를 가기 전, 조조영화를 보려고 부리나케 아침에 뛰쳐나간 날이었다.


그날은 조금 이상했다.

나는 평소에 영화를 볼 때

단 한 번도 핸드폰을 꺼본 적이 없었다.

무음이나 진동으로 설정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은 꼭 핸드폰을 꺼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이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워낙 손에서 떼어 본 적이 없으니 느껴지는 불안감쯤 일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뭐지 이 싸한 기분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떠나기도 전에 한 일은

핸드폰부터 켜는 일이었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쏟아지는 수십 통의 전화와 카톡, 그리고 문자들.

엄마와 이모였다.


“무지야 지금 빨리 집에 와.

아빠랑 언니 교통사고 났대. “


나는 놀람을 금치 못하고 당장 영화관에서 빠져나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덜덜 떨리는 몸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버스는 왜 이리도 천천히 가는지,

거북이가 토끼와의 달리기 경주에서 승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혹시 몰라 짐을 바리바리 쌌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갔다.

엄마는 버스 중간즈음 왼편 의자에 앉고

나는 서 있었다.


“엄마, 아빠랑 언니 많이 다쳤대?”

“몰라. 아닌 거 같아. 언니한테 전화 왔었는데 목소리가 멀쩡했어.“


엄마는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언니가 워낙 장난기가 많잖니.

처음에 전화 왔을 때 언니가 교회 가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장난치지 말라고 전화를 확 끊어버렸는데

다시 전화와 서는 계속 진짜라는 말을 반복하더라고.”


나는 엄마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려고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치, 언니가 양치기소녀 같긴 하지 ㅋㅋ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만하네~

전화까지 할 정도면 별일 아닌 거 같다~“


엄마와 나는 병원 코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이때부터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서로의 심장소리는 쿵쾅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함께 기도했다.


병원 응급실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던 건 언니였다.


휠체어에 몸을 기댄 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보다 아빠가 더 많이 다쳤어. 아빠한테 가 봐.”


생각보다 언니의 상태가 심각했고

내 심장은 이전보다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또 다른 휠체어에 앉아 있던 아빠를 발견했다.

두 부녀는 모두 온몸을 피로 물들인 상태였다.


나는 아빠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이게 뭐야!!! 몸이 이게 뭐냐고!!!!”


아빠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찢어진 혀로 어눌하게 말했다.

“그때 네가 안 타 있었어서 다행이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장애인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도 우는 나를 볼 수 없도록 하려면

장애인 화장실 밖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빠와 언니는 멀쩡히 살아있었지만

나는 마음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실컷 다 울지도 못했는데

혹시나 그런 나를 걱정할까 봐,

그리고 빨리 곁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버리고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내가 가족을 지켜야 해.”

고작 스무살 밖에 안된 나의 큰 결심이었다.

주먹을 꽉 쥐고 가족에게 다시 다가갔다.


이 잠깐 사이에 우리집과 늘 꼭 붙어살던 이모가 와 있었다.

이모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언니랑 아빠 앞에서 절대 울면 안 돼. 알았지?”

“네 안 울게요.”


이모와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이제는 정말 울 수 없었다.


교통사고의 경위는 이러했다.


나를 제외한 엄마, 아빠, 언니가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언니는 교회를 늘상 거부해 왔고

매번 마찰이 있는 아빠와 단 둘이 가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엄마는 가게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날은 단체가 있어서 아침에 교회를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언니를 데려가기 위해 작당모의를 했다.


우선 차를 타고 다 같이 가는 척을 하다가,

엄마가 중간에 차에서 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났다.


30대 초반의 여자가

아침까지 술을 먹고 운전을 했고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에서 오던 우리 가족의 차량을 박은 것이다.


우리 차는 두어 번 휘휘 돌더니 전복되었다.

거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였던 것이다.


언니와 아빠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가족처럼 교회에 가던 차량들이 멈춰 신고를 하고 기도까지 해주고 갔다고 한다.


경찰은 90% 확률로 사망했을 만큼

큰 사고였다고 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면서.

이만큼 다친 건 정말 다행이라면서.


우리 차가 당시 엄청 튼튼한 차였다.

무쏘 스포츠 차.

곧 폐차할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떠난 것이다.


사고를 낸 차량은 우리 차보다 더 심각했다.

우리 가족은 응급실은 벗어났지만

그 여자는 아직 응급실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차는 그 여자의 차량도 아니었다.

그 여자의 엄마 명의로 된 차였다.

보험도 들어 있지 않은.


그리고 그녀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본인의 인생을 한탄하며,

그 아침까지 술을 퍼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분명 잘못은 그 여자에게 있는데,

우리 가족은 그 여자를 탓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때로는 내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지만 않았어도…

그 사고를 피해 갈 수 있었을 텐데…“


아빠는 사고 현장을 신나게 재현하면서도

기승전결 꼭 마지막에 하는 말은 같았다.

“네가 그 차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우리 첫째는 많이 다쳐서 어떡하지.“


언니는 진정 장난꾸러기가 맞았다.

“야 내가 사고 났을 때, 사람들이 와서 몸을 빼내는데

눈앞에 떨어진 틴트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다니까?“

온몸에 피범벅이 된 상황에서도 저런 생각을 하다니

역시 남다른 우리 언니였다.


나 또한 그런 가족의 곁을 지키는 것만 생각했다.

‘그 여자를 찾아가 목덜미를 잡고 반쯤 죽여놓았어야했는데…’와 같은 생각은 지금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땐 가족 외에 그런 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날 이후,


아빠는 운전과 멀어졌다.

출퇴근을 위해 차를 타야 했지만

심각한 방어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운전 속도가 느려

뒤에서 아무리 빵빵 거려도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빠는 차의 가격이 얼마가 되든

무조건 튼튼하고 안전하게 세팅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그에게 안전 외에는 중요한 게 없었다.


엄마는 언니와 나의 장난 전화에 끊임없이 속았다.

혹여나 들이닥칠 늑대를 대비해

항상 경비 태세를 취하는 것이 엄마의 최선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내 축 처진 목소리를 들을 때면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는다.


언니는 차만 타면 그 자리가 어디든 안전벨트부터 하라고 한다.

혹시라도 내가 불편해서 풀 때면

“엄마!!! 도무지 안전벨트 안 해!!!

얘 좀 봐!!! 다치고 싶나봐!!!“

라며 소리소리를 지르곤 한다.


그리고 언니는 평상시 자세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차에서 만큼은 꼿꼿이 앉아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나는 두 번 다시 영화를 볼 때 핸드폰을 끄지 않았다.

아니 영화관 자체를 가지 않았다.


이유를 이제야 찾았다.

내가 왜 영화관을 1년에 1번 갈까 말까 했는지,

영화가 시작되면 심장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영화 상영 도중 왜 계속 핸드폰을 보는지.


그 여자는 잘 살고 있으려나.

원망 한 번 못 해봤는데,

여기서만큼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평생 본인이 살인을 저지를 뻔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 가족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나는 눈 감는 날까지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러니 당신도 눈 감는 날까지 사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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