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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e there.

by 초동급부
[나야]

삼철이에게.

피곤한 중에도 너에게 편지를 쓰고 하루를 정리해야 할 거 같애. 엄마랑 얘기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 안방에서. 깨우지도 않으셨더라.

나 잠꾸러기인 가봐. 엎드려서 고개만 끄덕이다 어느새 꿈속에서 너를 만났어. 정확히 표현하자면 네 편질 받은 거지. 사서함으로 와 있더라구. 두툼한 봉투에 전에 네가 건네주었던 편지 겉모양 그대로. 꿈속에서였지만 참 반가웠어. 방으로 들어와서 겉봉을 뜯고 막 읽으려는 순간 알람소리에 깨 버렸어. 내방보다 1시간 30분 빠른 알람. 새벽 5시. 그제야 안방에서 잠이든 걸 알고 쭐래 쭐래 내 방으로 와서 다시 잠을 잤다. 자면서두 너한테 편지 써야 한단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날이 새 버렸지. 허탈하고, 허무하고. 5시에 깼을 땐 1시간 30분 남았다고 좋아했는데… 진짜 일어나기 싫은 거 있지. 예전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우쒸, 나이 먹는 게 이래서 무서운가 봐… 시집가긴 글렀다. 이렇게 못 일어나면 아침에 신랑 밥 굶기고 출근시키고 나 땜에 신랑도 늦고. 그런 게으른 신부가 되면 안 되잖아. 역시, 난, 파이팅! 독신이야. 여기서 또 하나를 찾았어. 내가 독신일 수밖에 없는 이유 에고, 비참하다.

오늘은 일진이 안 좋은가 봐. 실수연발이야. 집에서두 회사에서두. 이럴 땐 살기 싫다.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일 때, 난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아무도 몰라줄 때.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러기에 사람인 거지… 자기들은 실수 안 하나 뭐. 치~ 피~ 지금은 웃으면서 네게 얘기하지만 이럴 땐 나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어. 내가 사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그냥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살고 싶은 거 있지. 강이나 바라보고, 산이나 오르고, 그렇게 옛날 사람들처럼… 희망사항이지만…

이젠 널 보러 갈 시간이 3일 남았다.
얼른 보고 싶어.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좋겠어. 너는? 너는 아니지.
너무 내 얘기만 했다. 너두 힘들 텐데… 너 하구 나하구 조금만 참자. 분명 웃으며 얘기할 날이 올 거야. 꼬옥 근데 아마도 난 그때. 때려치웠다고 하겠지? 조만간에… 후훗.
잘자. 오늘도 여전히 보고 싶다. 안녕.

1998. 11. 3.

P. S. I’ll be there.



꿈 속 나의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읽지 못하고 잠에서 깨게 한 이른 알람시계가 못내 야속하다.


아내는 아침잠이 참 많다. 독신을 부르짖었으나 시집은 갔고 신랑인 나는 다행히 아침을 거의 먹지 않아 지각하는 일은 없다. 어린 나이에 일찍 취업을 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그녀이다. 취업 초기, 이런저런 이유로 혼날 때마다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도 마음이 아팠었다. 이날도 비슷한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예정한 면회가 3일 후로 다가와 조금은 쉽게 털어내는 느낌이다.


I'll be there.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했던 머라이어케리의 대표곡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듣고 가사도 찾아보았다. 지금 들어도 참 좋다. 가사를 보니 이 또한 아내와 내 이야기 같기도 한 것이...


나도 직장생활을 한다. 상사도 있고 부하직원도 있다.

싫은 소리를 전혀 듣지 않을 수는 없 하지 않기도 어렵다. 사회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은경이가 혼나는 건 열받는다.



I'll be there, I'll be there, whenever you need me, I'll be there

I'll be there, I'll be there, just call my name, I'll be there...



노랫말처럼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준 나의 유일한 이름이다.





개인적 사정으로,

본 연재를 주 수요일, 일요일 2회에서

일요일 1회로 단축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양의 축소가 내실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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