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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ug 08. 2023


첫.

처음, 첫 번째, 맨 앞을 나타내는 관형사. 

학창 시절, 달리기 외에 좀처럼 내 것이 되지 않았던 단어, 꼴찌로 태어나 서열에서도 가질 수 없었던 단어다. 여러 '첫' 이야깃거리가 많았을 텐데 기억을 짜 보아도 떠오르는 게 없다. 성인이 되어서야 하나둘씩 내 것이라 여기게 된 단어다. 첫 미팅, 첫 아르바이트, 첫 월급, 첫아이. 그건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나눠야 할 것도 아니어서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나만의 단어였다. 그러나 싱그러운 새싹처럼 솟아나던 '첫'도 나이를 먹어가며 서서히 희석되어 가고 더 이상 새로운 것 없는 나날에 묻힌 단어가 되어 갔다. 기억에서나 건져 올려야 할 단어, 별 희망 없다고 느낀 단어를 아들이 가져다주었다.


아들이 첫 출근을 했다.

작년 4월에 필기시험을 치고 체력 검사에 이어 면접까지 마치고 7월 말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진 제법 똘똘한 줄 알았던 녀석이 중학교 가면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곳까지 내려간 바닥권 성적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어갔다. 인문계 고등학교 원서도 각서 같은 선생님과의 면담 후에야 쓸 수 있었다. 내가 교무실을 나오며 답답한 안도의 한숨을 내쉰데 반해, 학창 시절 제법 똑똑했다던 남편은 납득 안 되는 이 상황을 '수모'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해에 미달되는 바람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했던 바람도 헛된 기대였다. 저라고 왜 각오와 다짐이 없었겠냐만 치고 올라가기엔 제 힘도 내 뒷받침도 부족했을 테다. 3년 내내 동상이몽했고, 대학 원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저 같으면 대한이 대학 안 보냅니다."

또 한 번 담임 선생님 앞에서 수모를 겪었다. 담임의 말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보낼 테니, 니 새끼는 보내지 마라'

끓어오른 말이 입술까지 마중 나왔지만, 꿀꺽 삼키며 돌아왔다.

남편도 기술을 익히거나 자격증을 준비하라며 대학 진학에 회의적이었다. 수능 치고 줄곧 얼음 왕국 같은 겨울을 보내고서 3월 입학 때가 되어서야 남편은 전문대학 입학을 허락했다. OT 참석도 못 하고 엉겁결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것도, 배울 의욕도 없었던 녀석이다. 군대에 가서야 아들은 처음으로 고독과 사색의 시간을 가졌을 테다. 잔소리 없는 곳에서 비로소 제 삶을 관조했을 것이다. 제대하며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기도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을 테니 제법 시간 걸릴 거라 여겼다. 기대하지 않은 부모라서 억울했을까? 각오하고 달려들더니 한 번에 합격했다. 

지난주, 5개월간의 긴 연수를 마치고 졸업했다. 연수 기간에도 몇 차례의 체력과 필기시험을 치고 그 성적순으로 발령을 낸다. 감사하게도 좋은 위치에 배정받아 지하철 내리면 코앞에 근무지가 있다. 낮에는 땀 흘리고 훈련하고 밤엔 졸음 쫓으며 공부하느라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안 봤지만 훤하다.

연수원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복귀했다. 집에서 출퇴근해도 되는 거리다. 일주일 동안 제복을 입고 가야 된단다. 탄탄한 몸이 제복으로 숨겨지지 않는다. 남편이 얼굴을 줬다면 나는 몸을 줬다. 가슴은 지 애미보다 돋보이고 긴 다리와 긴 팔도 나를 닮았다. 남편이 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도 져 줄 수 없는 한 가지다. 거울을 보며 외모를 점검하는 녀석에게서 미세한 긴장이 읽힌다. 잔소리보다 "멋지다"란 말로 첫 출근을 배웅했다.


스물한 살 겨울, 유치원에 첫 실습 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마산 합성동에 있는 병설 유치원이었다. 실습 나간다고 처음으로 정장을 한 벌 샀다. 엄마는 처음으로 딸에게 번듯한 옷 한 벌을 해 주고 싶었었는지 지금도 많은 돈 30만 원을 주셨다. 그 돈을 들고 사촌 언니랑 '카르트니트'에 가 100% 모직 투피스 한 벌을 샀다. 유일하게 지금도 갖고 있는 청춘의 증거다. 허리가 약간 졸리긴 하지만 지난겨울에도 코트 안에 입었었다. 처음으로 어색한 옷을 입고 출근하던 그날 아침 버스 안의 내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의 영상을 보듯 남아있다. 낯선 도시의 버스 안. 하차할 곳도 신경 써야 하고 새 옷도 신경 쓰이고 출근해서 만날 선생님들과 아이들까지.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모습. 의지할 데라곤 동그란 버스 손잡이밖에 없어서 그것을 희망이라도 되는 양 움켜쥐고 가던 어린 내 모습이 첫 출근하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보인다.


첫사랑처럼 멀어진 단어 '첫'이다. 지금 경험하는 일들은 새로울 것도 낯선 것도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유물처럼 오래됐다고 여겼던 단어를 거의 3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처음으로 주민등록상 나이가 변경된 해다. 실컷 달려와 오십 칸을 채웠더니 다시 두 칸을 뺏어가 색다른 처음을 선사한다. '첫'은 무감각했을 뿐 하루하루 매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 하루 첫 시작, 첫 끼니, 첫 글, 첫 기도... 무수한 처음에 소홀했다. 오늘은 살아온 날 중에 가장 오래된 날이지만, 남은 날 중에 첫날이다. 이보다 더 젊을 수 없는 물리적인 나이와 건강이, 성냥불 같은 희망으로 타오른다. 그래, 모든 이 순간이 처음이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줄 모르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니 깨우치는 자만이 '첫'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다. 글벗 중 한 명이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감사를 감사인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오늘 나에게 오는 무수한 '첫'을 보자기 활짝 펼쳐 놓고 거두어들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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