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44
한보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한보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보라
제목: 보라 빛 주먹
“주먹 하나로, 세상을 지배하는 거야.”
보라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별했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아이들 보다 더 남자들이 즐기는 놀이를 즐겨했다.
“때려!”
그래서 보통의 동네 골목대장은 ‘남자’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보라가 사는 지역은 보라가 골목대장으로 추대되었다.
보라가 사는 골목만 아니라 보라가 살던 지역의 골목들을 일명 대통합을 해버리는 보라였다.
“형님!”
그렇게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보라는 ‘큰형님’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가끔, 큰 형님이 아니라 누님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일어나긴 했지만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보라가 그나마 여자로 태어나 이 정도인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보라는 주먹으로 동네를 휘어잡고,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목소리로 아이들의 짱이 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천사 같은 미소와 악마 같은 주먹으로 다시 학교의 짱이 되었다.
그런 초등학교 짱인 된 보라에게 쓴 맛을 보여준다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선배들이 찾아왔다.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이었다. 이미 중학교 1학년 선배는 보라 맛 주먹을 맛본 적이 있어서 보라 앞에 나서지는 않았다.
“야. 니가 강보라야?”
“강보라는 누꼬. 나는 정보라다.”
보라는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른 자신을 찾아온 체급조차 다른 중학교 선배에게 전혀 쫄지 않았다.
“정보라? 오. 예쁘게 생겼네. 너 내 여친이나 해라. 무슨 여자애가 학교짱이야. 짱은.”
“뒤질래?”
보라는 그렇게 자신의 매운 주먹 맛을 중학교 짱에게도 보여줬고, 고작 초등학교 때 초등-중학교를 펑정하는 전무후문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여리여리한 여자 아이가 그런 대 업적을 세운 것은 비록 정사라에는 기록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의 입소문으로 야사의 전설이 되어 기록에 남았다.
그런 보라가 주먹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해서 였다.
아버지의 가족이 멀고도 험해서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서울로 전근을 가야했고, 가족 모두가 이동하기로 결정된 것이었다.
“나는 못 간다!”
보라는 영지 관리자가 자신의 영토를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결사 항전했지만, 아무리 보라의 주먹 맛이 쓰고 강해도 가족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럼 니 혼자 여기 살아라. 참고로 이 집도 팔거니까. 다른 가족들 오면 잘 설득해보고.”
부모님의 말은 장난인 적 이 없었다. 어쩌면 강한 보라가 탄생할 수 있었던 그 만큼 강한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진짜. 못간다고!”
“그래. 오지마라. 니 여기 남아라. 나중에 온다하면 그때 때려 죽이뿐다?”
“…”
저게 엄마야? 엄마 맞아? 보라는 분명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먹만 강하고 빠르게 내려칠 수 있는 보라는 아니었다.
싸움에도 어떻게 주먹을 날리냐. 다리를 뻗느냐. 피할 줄 결정하는 감각이 중요했다. 그런 초인에 가까운 보라의 감각이 여기서 더 이상 개겨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엄청나게 보냈다.
보라는 그대로 쓰러졌다. 부모님은 퍼뜩 일어나서 밥이나 쳐 묵고 잠이 나 자라. 앞으로 혼자 살려면 더 건강 해져야 한다고 말을 했다.
하는 수 없었고, 보라는 그렇게 영지를 지키는 일에 대해서 결사항전을 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게 보라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보라가 평정한 골목들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끝나게 된 보라 감정기였다.
눈물을 머금고 떠났던 고향. 그리고 도착한 서울이었다. 전학수속을 밟으러 학교를 갔지만 보라는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몰래 자퇴라도 하고싶었다. 그러나 아직 미성년자인 보라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나의 세상이 무너졌어.”
보라는 그렇게 잔뜩 침울한 표정으로 귀가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전학을 와서 정도 없는 집이었다.
전에 있었던 마당도 사라졌다. 집은 원래 크게 살았고 비슷한 크기의 집이었다. 다섯 가족이 각각 방 하나씩을 가져도 됐다. 다만 부모님은 같이 자고, 남매만 3개의 방에 나눠 살았다.
어렸을 때 기르던 강아지와 고양이도 함께였지만, 그동안 자신의 주먹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없어서 아쉬웠다.
특히 때리는 맛이 좋았던 친구가 사라져서 아쉬웠다. 그렇다고 불량학생처럼 약한 친구를 괴롭힌 보라는 아니었다.
정정당당하게 언제나 챔피언 룰로 싸웠다. 물론 이건 도전자가 2번째일 때 부터였고, 첫싸움은 개싸움이었다. 개싸움에서도 이긴 보라는 룰을 가진 싸움에선 절대적이었다. 가끔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내일 없는 미친놈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보라는 한단계성장해서 두 번 다시 개기지 못할 정도의 두려움을 주며 언제나 승리했다.
“기 죽지마 정보라. 이대로 끝 아니야. 여기서 시작인거야!”
보라는 그렇게 여기서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불량서클이라는 다른 모임이 있었지, 골목 골목 모이는 동네 애들은 없었다.
가끔 있어도 헤쳐 모여 수준이지 끼리끼리의 모임은 아니었다. 보라가 살던 동네에서야 이사가 많지 않았는데 서울은 몇 달 만에 이사를 하는 아이들이 흔했다. 그래서 이런 문화가 된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보라가 기웃거리기 시작한 건 체육관이었다. 보라가 평정했던 동네에도 태권도장이라던지, 검도도장이라던지 이런 게 있긴 했지만 정말로 큰 규모를 가진 체육관은 없었다.
“우와.”
보라는 집에 얼른 들어가기 싫어서 다른 동네로 발걸음을 해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체육관을 발견한 것이었다.
“권투를 발로도 하네?”
“권투 아니고. 종합격투기.”
체육관에 한쪽 측면에 마련된 메달과 상장과 우승 컵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는 보라였다. 그런 보라 뒤로 체육관에 관련된 인물이 보라의 뒤에 섰다.
보라는 천천히 뒤돌아봤는데. 때 마침 창가의 빗줄기가 마치 그를 위해 들어온 것처럼 온 몸을 휘감아 비추고 있었다.
반짝 반짝거렸다. 자기 앞에 있는 트로피들보다 훨씬 빛나는 그였다. 보라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그를 보고 숨이 멎었다.
싸움에 질 거 같은 순간에도 이런 긴장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져 본적이 없어서 진다는 느낌은 모르겠지만, 아마 게임에 정말로 진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어...”
입도 얼어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너는 누구냐고 당돌하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쌈 좀 하냐고, 이 체육관 짱이 너냐 이런 말도 생각이 났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가 보라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오뚝한 코와 자로 잰 듯이 만들어진 얼굴이 더 가려진 달의 뒷면과 같은 수수께끼로 가득 찬 다른 면도 보이기 시작했다.
‘잘 생겼다.’
잘한다. 잘했다. 등 잘이라는 말은 자주 쓰였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본 보라는 이럴 때야 말로 ‘잘’ 이라는 단어를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본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너무나 잘 생긴 그였다.
약간 어색해 보이는 보이지 않는 면에서 왼쪽 모서리쪽에 반창꼬까지도 귀여운 잇템처럼 보일정도로 잘 어울렸다.
“넌 처음 보는데? 오늘 새로 왔어? 신입인가?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우리 학교 교복도 아니고.”
교복은 아직 사지 않았다. 내일 교복을 맞추러 가는 날이었다. 보라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보지 못했다.
만약에 평소에 멜로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라도 몇 개 챙겨봤으면 이럴 쌔 써먹을 말이 있었을까 싶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 어떻게 든 붙잡아 놓고 싶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에 전학 왔어.”
“아. 며칠전에 전해왔다는 얘가 너구나.”
그도 보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보라가 그를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보라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보라가 여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새로운 여신이 너지?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강보라?”
“어…? 아니 강보라가 아니고 정보라야.”
“정보라? 그래. 얘들이 여신이라고 할 만하네. 아니. 이 말은 그냥. 예쁘다고.”
그 녀석의 말에 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라 자기만 그를 잘 생겼다고 생각 한 게 아니라 그도 보라를 잘 생겼다라고 생각한 것이었으니까. 잠깐만. 그도 나를 잘?!
보라의 두 볼이 붉어졌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심장의 소리가 들렸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면서 몸을 몰아칠 때야 나던소리였다.
쿵. 쿵. 쿵.
“너 근데 괜찮아?”
보라가 얼굴을 붉히자 그가 보라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보라의 심장이 한 번 더 쿵쾅거렸다.
“잠깐. 잠깐만.”
보라는 이사를 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올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우리학교 학생이구나? 그러면. 선배야?”
보라가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그도 깜짝 놀랐다.
“아. 나. 나는 우리학교. 너랑 동갑이야. 정보라. 우리학교 전교 부회장. 류환이라고 해.”
류환은 자기소개를 하며 보라를 살폈다. 보라가 붉어진 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싸움꾼끼리 주먹을 맞대면, 서로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보라가 주먹을 내밀었다.
파이트가 있기 직전 선수들이 하는 자세였다.
류환이 놀란 모습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자신도 주먹을 마주했다.
두 주먹이 맞았다.
그제야 보라는 아뿔싸, 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주먹을 맞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하고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보라였다.
그러다 손만 잡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안고, 뽀뽀도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정작 두 사람이 마주친 건 손바닥도, 입술도 아닌 꽉 쥔 주먹이었다.
주먹을 마주한 류환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류환의 입장에서는 예쁘장하게 생긴 보라가 자신을 좋아해서 찾아온 다른 친구들처럼 ‘치어리더’라던지 그냥 응원을 위해 찾아온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가끔 스무살을 넘어서 운동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누나들은 있었어도,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하는 여자애들은 부모가 강제로 보내는 거 아니면 거의 없었으니까.
여기는 각종 체육대회에서 수상권을 하는 여러 선수가 있었다.
물론 보라 나이대의 프로 선수를 지망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보라의 외모를 보고는 편견에 사로잡힌 류환은 보라가 절대로 직접 주먹을 휘두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주먹을 마주하자마자 알아차렸다.
‘얘는, 진짜다.’
“너. 진짜구나.”
체육관 관장의 아들로서. 수많은 주먹을 마주했다. 그런데 보라만큼 엄청난 주먹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주먹을 마주하자마자 보라의 주먹 맛을 본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게 됐다. 류환은 자기도 보라와 붙으면 필 패한다는 걸 고작 주먹 하나 맞대고 알아차렸다.
‘괴물이다.’
류환은 보라에게 보이지 않게 자기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내렸다. 아버지도 좋아할 것이었다.
‘영입해야해’
류환은 곧장 보라를 체육관으로 영입하기 위한 생각을 짜냈다.
그렇게 두사람은 계속 주먹을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약간은 다른 시선이었다.
얼굴을 붉힌 보라와, 그런 보라를 바라보는 류환이었다.
두 사람 다, 붉어진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창가를 비추는 햇빛은 어느새 노을을 향해 달려가 노을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