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파리바게뜨 빵집에서
주말 알바를 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카운터에서 계산하기와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빵 진열하기였다.
조금 전 계산을 마치고 나갔던 젊은 부부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카운터에 서 있는 나에게 영수증과
지폐를 내밀며 말한다.
“돈을 더 거슬러주셨네요. 다시 드릴게요.”
알고 보니 내가 계산을 잘못해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천 원 더 남겨드렸다.
그 젊은 부부는 큰 액수가 아님에도
돈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빵집으로 온 것이다.
그들은 “혹시 계산 실수가 나중에
알바생인 당신에게 피해가 될까 봐요”라고
말하면서 떠났다.
선하고 수수한 인상을 가진 젊은 부부의
이 작은 행동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재산, 지위,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해
양심과 맞바꾼 사건들이 사회에 자주 일어난다.
속임수와 거짓말로 자신과 타인을 속여가며
저지르는 악덕과 범죄는 끝내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고 부패시킨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주인공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
소망한다.
‘자기는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는 대신
초상화만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그 소망이 진짜로 이루어진다.
도리언이 타락하고 악행을 저지를수록
초상화는 거칠고 흉측하게 변한다.
이 초상화가 상징하는 것은
도리안 그레이의 양심이다.
다음은 소설 속에서 홀워드가 도리언에게
했던 말 중 일부다.
“죄악이란 저지르는 사람의 얼굴에
흔적을 남기는 법이야.
숨길 수가 없어.
사람들은 몰래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해.
못된 인간이 악덕을 저지르면 입가의 주름에,
축 처진 눈꺼풀에, 심지어 손 모양에도
그게 선연히 나타나지.”
우리는 모두 도리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아는 한 가지 본질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인간은 저마다 내면에 선과 악을
복잡하게 품고 있다.
또 무수한 감각과 성질을 품고 있는
다중적인 생명체이다.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우리는 도리안처럼
수많은 갈등과 망설임에 봉착한다.
나(욕구), 타인, 사회, 운명은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뒤흔든다.
양심을 나의 중앙에 놓아야 한다.
자기 내부의 양심을 꺼뜨리면 안 된다.
우리는 인생의 관계망을 통해
수많은 대상과 접촉하면서 살아간다.
내 삶의 장을 규정하고 조직하는 대상은
자기 양심에 따라 걸러진다.
나와 세상을 인간답게 채우는 것은
양심이라는 속성이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섭리 중
하나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또 다른 일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등학생 때 솜사탕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나무젓가락을 기계에 넣자마자 솜사탕 실이
조금씩 달라붙는다.
솜사탕 실에 또 다른 솜사탕 실이 감긴다.
순식간에 풍선처럼 커진다.
실처럼 가느다란 원인과 결과가
무한히 순환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도 버거울 만큼
운명의 산은 불어난다.
악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악을 행하면 결과가 바로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살면서 자신이 뿌렸던 악의 씨앗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악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행한 이의 삶을 계속 따라다닌다.
어느 날 갑자기 큰 불로 번져있다.
자신의 행동에 의해 스스로 불에 타버리는
고통을 당한다.
하늘로, 바다로, 동굴로 도망치더라도
자기 운명의 그물에 줄곧 걸린다.
작은 쌀알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쌀독을 채우듯이,
작은 악 하나하나가 쌓이면 내 안은 독소로
가득 찬다.
인생에 악의 열매만 주렁주렁 열린다.
인간의 본성은 사악함을 어느 정도까지는
유지하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면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악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나의 선한 생각과 행동은 운명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든다.
정당한 일이라도 나쁜 의도와 의지가 결합되면
끝에 가서 완전한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중해져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진실을 좇아가면
인생은 단순해지고 명료해지고 편안해진다.
타락한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이끌고 산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악독한 행동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쏘는
화살과 같다.
악한 의도를 품고 시작한 일은 더 악한 것으로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법이다.
우리는 세계와 늘 연결되어 있다.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살면서 내가 했던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내 운명의 수첩에
기록된다.
그 기록은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죽음을 앞둔 인생의 마지막 순간
그 수첩에 쓰인 내용들을 다시 훑어보면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결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